드라큘라 Dracula (1931)

2010.02.06 20:51

DJUNA 조회 수:58464

감독: Tod Browning 출연: Bela Lugosi, Helen Chandler, David Manners, Dwight Frye, Edward Van Sloan, Herbert Bunston, Frances Dade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해는 1922년이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유명한 무르나우의 무성 영화 [노스페라투]였죠. [노스페라투]는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 있는 걸작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드라큘라]의 이미지를 제공한 작품은 아니었습니다. 드라큘라 할 때 막스 슈렉이 연기한 대머리 괴물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죠. 사실 개봉 당시 슈렉의 흡혈귀 이름은 드라큘라도 아니었습니다. 올록 백작이었죠.

두번째 나온 영화가 바로 오늘 우리가 다룰 유니버설 호러 영화 [드라큘라]였습니다. 진정한 [드라큘라] 장르의 시작이 바로 이 작품이었죠. 우리가 드라큘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의 거의 대부분이 이 영화에서 나왔습니다. 검은 망또와 연미복, 트랜실바니아 악센트, 공격적인 섹스 어필과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 영화가 보여준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 이후에 나온 영화들은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 영화와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전 [드라큘라] 영화들과 전혀 다른 작품인 코폴라의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도 그렇습니다. 코폴라 영화의 파격적인 이미지들 중 일부는 벨라 루고시의 [드라큘라]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일 가능성이 큽니다. 대결할 수는 있었어도 잊을 수는 없었던 것이죠.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고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브램 스토커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라기 보다는 브로드웨이에서 히트한 [드라큘라] 연극을 각색한 것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드라큘라]는 최악의 시기에 나온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영화가 2년만 먼저 나왔어도 이 작품은 훨씬 영화적으로 근사한 대작 무성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만약 이 영화가 2년만 더 나중에 나왔어도 세련된 유성 영화 테크닉과 대자본이 결합된 괜찮은 호러 영화가 나왔을 겁니다. 하지만 29년의 대공황 때문에 예산은 바짝 줄어들 수밖에 없었고, 유니버설 사람들이 택한 방식은 연극을 충실하게 각색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과는? 에헴... 그렇게까지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연극을 충실히 따르다보니 통속적인 실내극을 촬영한 녹화 기록처럼 되어 버렸거든요. 이런 뻣뻣한 각색에 당시까지만 해도 서툴기 짝이 없던 유성 영화 테크닉과 아직 연극 투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한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가 더해졌으니 더욱 희극적이죠. 요새 관객들에게 [드라큘라]는 거의 코미디처럼 보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무서워했던 영화였지만 솔직히 호러 영화의 힘도 떨어지는 편이죠. 특히 결말은 약합니다. 드라큘라가 죽는 장면도 제대로 보여주지 않으니까요.

그러나 [드라큘라]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이 많은 영화입니다. 우선 벨라 루고시의 존재를 잊을 수 없죠. 루고시의 드라큘라는 사디스틱하고 거창한 괴물입니다. 그의 장엄한 "밤의 아이들의 노래 소리요" 대사를 들어보세요. "나는 마시지 않소... 와인은."에서 '와인은' 이전에 놓여지는 음침한 빈 공간을 보세요. 십자가를 볼 때 망또로 얼굴을 가리는 그 야수와 같은 동작을 보세요. 네, 요새 사람들에게는 좀 과장되어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인상적인 드라큘라임은 분명하죠.

독일에서 할리우드로 건너온 칼 프로인트의 촬영 역시 다소 뻣뻣한 연극적 각색을 구원해줍니다. 순전히 촬영의 힘으로 선 장면들도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드라큘라의 관에 서서히 접근해가는 트래킹 숏이겠죠. 프로인트가 이 영화에서 도입한 표현주의식 촬영과 조명은 뒤의 유니버설 호러 영화에 막강한 영향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드라큘라]는 가장 유명한 유니버설 호러 영화지만 가장 훌륭한 유니버설 호러 영화는 아닙니다. 이 영화에는 [프랑켄슈타인] 시리즈나 [오페라의 유령]과 같은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고전의 무게는 없습니다. [드라큘라]는 앞으로도 영화사에 남아 후대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겠지만, 이 영화의 가치는 자체의 질보다 후대에 끼친 영향에 있다고 해야 할 겁니다. (01/01/16)

★★★

기타등등

1.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현대'입니다. 다시 말해 20년대 후반이나 30년대 초란 말이죠. 하지만 종종 시대착오적인 장면들이 사이사이에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20년대 후반에 그런 식의 범선들이 돌아다녔을 것 같지는 않아요.

2. 이 영화에는 영화 음악이 없습니다. 도입부에 나오는 [백조의 호수]와 음악회 장면에 나오는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음악이 전부죠. 몇 년 전 유니버설 사는 크로노스 현악 사중주단이 연주한 필립 글래스의 새 영화음악을 깐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완벽한 무성영화적 침묵이 제공하는 으스스한 느낌이 상당히 사라진 건 사실이지만 글래스의 음악이 들어간 버전도 나름대로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3. 당시만 해도 외국어 더빙 개념이 없었던 때라, 유니버설 사에서는 다른 감독과 배우들을 동원해서 스페인어 버전을 거의 동시에 만들었습니다. 이 작품 역시 몇 년 전에 다시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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