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길 정거 Gil Junger

주연
줄리아 스타일즈....카타리나 스트래트포드
Julia Stiles....Katarina Stratford
히스 레저....패트릭 베로나
Heath Ledger....Patrick Verona
조셉 고든-레빗....카메론 제임스
Joseph Gordon-Levitt....Cameron James
라리사 올레이닉....비앙카 스트래트포드
Larisa Oleynik....Bianca Stratford
데이빗 크럼홀츠....마이클 에크먼
David Krumholtz....Michael Eckman
앤드류 키건....조이 도너
Andrew Keegan....Joey Donner
수잔 메이 프랫....만델라
Susan May Pratt....Mandella
가브리엘 유니언....채스티티
Gabrielle Union....Chastity
래리 밀러....월터 스트래트포드
Larry Miller....Walter Stratford
다릴 미첼....모건 선생
Daryl Mitchell....Mr. Morgan
앨리슨 재니....퍼키 선생
Allison Janney....Ms. Perky
데이빗 레저....채핀 선생
David Leisure....Mr. Chapin

90년대 말, 틴에이저 영화 제작자들은 꽉 막혀있던 아이디어의 한계를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풀었습니다. 묻혀 있던 고전들을 꺼내 현대 버전으로 업데이트 시키는 것이었죠.

이 유행의 시작은 제인 오스틴의 [엠마]를 90년대 베벌리 힐즈로 무대를 옮긴 에이미 헤커링의 [클루리스]였습니다. 엉뚱한 조합처럼 보이긴 했지만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새로운 유행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클루리스]가 성공하자 수많은 영화들이 이어졌습니다. 라클로의 [위험한 관계]를 번안한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조지 버나드 쇼의 [피그말리온]의 스토리를 빌린 [쉬즈 올 댓], 오델로의 이야기를 옮긴 [O], 물론 그 소문도 요란했던 [로미오 + 줄리엣]도 빼먹을 수 없죠.

이런 시도가 과연 영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요? 글쎄요. 고전 이야기를 업데이트했다고 해서 이 영화들이 어떤 '깊이'를 덤으로 얻은 것은 아닙니다. 아마 일종의 '품위'를 얻었을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과연 타겟 대상인 틴에이저 관객들이 그런 '품위'에 얼마나 영향을 받았을까요? 아마 받기는 받았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고전'에 대해 미신적인 숭앙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들에겐 레트로 패션처럼 일종의 색다른 유행이 아니었을까요?

각설하고 본론으로 돌아가죠.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현대 시애틀로 옮겨 번안한 것입니다. 원작의 무대 파두아(파도바)는 파두아 고등학교가 되었고 카타리나와 비앙카와 같은 캐릭터들은 이름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단지 성은 '스트래트포드(!)'로 바뀌었지요. 페트루치오는 '패트릭 베로나'가 되었고요.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유명한 제목에 비해 그렇게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아닙니다. 첫째, 별로 좋은 작품이 아니고, 둘째, 이 희곡에 묻어있는 남성우월주의가 '정치적으로 공정'해지려고 노력하는 현대인들에게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원작의 주제까지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대신 영화가 또다른 '고등학교 연애담'의 클리셰에 그럴싸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걸 끌어들이지요. 그건 대충 이런 공식입니다. 음흉한 목적을 품은 어떤 남자애가 인기없는 여자애한테 접근하는데, 그러다 그는 여자애를 정말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가면 당연히 남자애의 목적이 밝혀지고 여자애는 상처를 받습니다. 남자애는 어떻게든 여자애에게 다시 접근하려 하고 어쩌구 저쩌구...

그렇게 좋지도 않은 원작에 지겹도록 뻔한 클리셰까지 끼어들었으니 영화가 얼마나 따분할까요.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답니다.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으며 매력적이기까지 하니까요. 이 영화의 진부한 공식과 작위적인 설정에 대해 야무지게 비판을 가했던 로저 이버트는 중간에 짜증난다는 듯 이렇게 외치고 말죠. 'And yet ... gee, the movie is charming.' 저야 이버트처럼 비현실적인 미국 고등학생 연애담 클리셰에 화를 내야 할 필요가 없으니 영화에 훨씬 더 관대해질 수 있죠.

이 영화에는 많은 장점이 있습니다. 카타리나 스트래트포드와 패트릭 베로나는 둘 다 매력적이고 인상적인 주인공들입니다. 특히 카타리나는 흔한 하이틴 코미디의 여자 주인공들과는 너무 달라서 신선한 매력까지 느껴지죠. 이들을 연기한 젊은 두 배우들도 신선하고 훌륭합니다. 히스 레저는 매우 페트루치오처럼 생겼으면서도 동시에 현대 배경에 잘 어울립니다. 거친 '터프 가이' 이미지 속에 숨어사는 보통 아이를 그럴싸하게 꾸며내기도 하고요. 멋지게 냉소적이면서도 지적이고 가끔 적절하게 진실되기까지 한 줄리아 스타일즈는 앞으로 크게 자랄 배우입니다. 이 둘은 잘 어울리고 앙상블도 근사하답니다.

스토리가 구식 클리셰와 [말괄량이 길들이기] 사이에 끼어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점이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척 뻔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애당초부터 스토리의 독창성 따위를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니, 그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닐 겁니다. 대사들은 종종 재치있고 흥미로우며, 중세 이야기를 현대에 끼워맞추는 방식 몇 가지도 잘 되어 있으니까요. 자칫하면 '페미니스트 길들이기'로 끝날 수 있는 줄거리지만 비교적 매끄럽게 위험을 제거한 편입니다. 결말이 좀 약하긴 하지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고요.

심지어 전 이 영화가 원작인 [말괄량이 길들이기]보다 나은 작품이라고까지 주장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영화는 원작이 가진 '거장의 터치' 같은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전 원작보다 훨씬 즐겁게 보았고 정말 많이 웃었답니다. 원작을 보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00/03/05)

DJUNA

기타등등

1. 이 영화는 줄리아 스타일즈가 연달아 출연한 세 편의 셰익스피어 영화 중 하나입니다. 다른 두 개는 [햄릿]과 [O]죠.

2. 이 영화의 원제 [10 Things I Hate About You]는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원제 [Taming Of The Shrew]의 발음을 흉내낸 것이라더군요.

3. 영화를 보면서 [다리아]가 자꾸 떠오르더군요. 하지만 아무래도 퀸이 비앙카보다 몇 수 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