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롤랜드 에머리히 Roland Emmerich

주연
존 큐삭....잭슨 커티스
John Cusack....Jackson Curtis
아만다 피트....케이트 커티스
Amanda Peet....Kate Curtis
치웨텔 에지오포....에이드리언 헴슬리
Chiwetel Ejiofor....Adrian Helmsley
탠디 뉴튼....로라 윌슨
Thandie Newton....Laura Wilson
올리버 플랫....칼 앤하우저
Oliver Platt....Carl Anheuser
토머스 맥카시....고든 실버먼
Thomas McCarthy....Gordon Silberman
우디 헤럴슨....찰리 프로스트
Woody Harrelson....Charlie Frost
대니 글로버....토머스 윌슨 대통령
Danny Glover....President Thomas Wilson
리암 제임스....노아 커티스
Liam James....Noah Curtis
모건 릴리....릴리 커티스
Morgan Lily....Lilly Curtis
즐라트코 부릭....유리 카르포프
Zlatko Buric....Yuri Karpov

옐로우스톤

롤랜드 에머리히가 [2012]라는 재난 영화를 만든 건 지구가 도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자연현상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제2의 어윈 앨런이라도 되는 양 대자본 재난물 장르에 집착해왔고 그와 동시에 다양한 종류의 뉴에이지 과학에 심취해왔었죠. 2012년 지구 종말론은 그의 그런 취향을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소재입니다.

하지만 이 소재로 어떻게 해야 영화를 만들죠? 2012는 그냥 숫자일 뿐이고 지구가 멸망할 수 있는 길은 수백가지가 넘습니다.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한다고 믿는 사람들도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을 걸요. 에머리히는 숫자만 가지고 일단 잠재 관객들을 자극한 다음 그 다음에 내용을 만들어낼 판이었던 겁니다.

결국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긴 했습니다. 그가 택한 것은 찰스 햅굿의 지각이동설입니다. 그는 그 재난의 이유도 만들어냈는데, 저로서는 완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각본에 따르면 갑자기 태양에서 쏟아지는 중성미자가 지구 내부의 물질과 반응하기 시작했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고 싶고 실제로 주인공인 지질학자도 묻지만 영화는 답변을 하지 않습니다.

하여간 영화는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치웨텔 에지오포가 연기하는 지질학자와 전세계 정부가 앞으로 다가올 재난에서 인류를 살리기 위해 싸우는 과정입니다. 다른 하나는 존 큐삭이 연기하는 잭슨 커티스라는 무명의 SF 작가가 가족들과 함께 재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입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재난 영화의 종합 선물 세트와 같습니다. 지진? 나옵니다. 해일? 나옵니다. 화산? 나옵니다. 침몰하는 배? 나옵니다. 관광 명소 파괴? 나옵니다. 정부의 음모? 나옵니다. 이혼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봉합되는 가족? 나옵니다. 장엄한 연설? 나옵니다. 최대한으로 유치하고 단순하게 뽑아낸 과학 강의? 나옵니다. 개? 나옵니다.

구경거리는 많습니다. 하지만 좀 산만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다양한 종류의 재난이 한꺼번에 쏟아지다보니 도대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답은 알죠. '모든 것'이니까요. 하지만 액션에 집중하려면 단순히 특수효과로 그린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는 것 이상이 필요한 게 아닙니까?

잭슨 커티스의 가족 이야기도 그렇게 잘 만들어졌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일단 이들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운이 좋아요.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대재난을 피해다니는데 그게 다 성공하는 사람들이지요. 물론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재미라고 여기고 즐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전 이들의 가족이 봉합되는 과정이 영 맘에 안 들더군요. 그리고 막판을 보면 아시겠지만 이들은 은근히 민폐 가족입니다. 그래도 자기네들이 엎지른 물을 스스로 닦는 염치는 있지만요.

요새 나오는 미국 블록버스터들이 대부분 그렇듯, 특수효과는 좋습니다. 전 별로 트집잡고 싶은 생각이 없군요. 단지 이 장면들은 아이디어 없이 돈만 잔뜩 바른 듯한 느낌이 납니다. 많은 것들을 보여주지만 관객들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신기함은 없어요. 게다가 전체적으로 액션이 느리고 장황한 편이어서 서스펜스는 약한 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에머리히는 한 발 늦은 것 같습니다. 이미 종말론에 대한 훨씬 좋은 영화가 바로 직전에 만들어졌거든요. [노잉]이 바로 그 영화입니다. [2012]은 어느 기준으로 보아도 [노잉]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하지만 [노잉]은 흥행에 실패했고 [2012]는 성공하겠지요. 세상이란 원래 그런 법이니까. (09/11/03)

DJUNA

기타등등

SF 작가가 주인공인 드문 영화입니다만 영화는 그의 작가로서의 측면보다 리무진 운전사로서의 능력을 더 보여주더군요. 아, 어쩔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