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잭 스나이더 Zack Snyder

주연
제라드 버틀러....레오니다스 왕
Gerard Butler....King Leonidas
레나 헤디....고르고 왕비
Lena Headey....Queen Gorgo
도미닉 웨스트....테론
Dominic West....Theron
데이빗 웬햄....딜리오스
David Wenham....Dilios
빈센트 리건....대위
Vincent Regan....Captain
마이클 파스벤더....스텔리오스
Michael Fassbender....Stelios
톰 위즈덤....아스티노스
Tom Wisdom....Astinos
앤드루 플레빈....닥소스
Andrew Pleavin....Daxos
앤드루 티어난....에피알테스
Andrew Tiernan....Ephialtes
로드리고 산토로....크세르크세스
Rodrigo Santoro....Xerxes

레오니다스왕

[300]이라는 영화에서 관객들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건 남자배우들의 근육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이게 단순히 건장한 근육이 아니라는 거죠. 할리우드 전문가들의 조언 하에 하루에 열 몇 시간 동안 죽어라 운동을 하고 배곪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보조식품을 먹어대야 겨우 몇 주 동안 유지될 수 있는 그런 몸입니다. 그 영화에 출연했던 배우들 중 영화 속에 나오는 몸을 지금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게다가 그들은 수염과 머리칼만 빼고 몸에 난 털을 몽땅 밀었어요. 현대 보디 빌더처럼요. 아니,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대리석 조각상처럼요'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죠. 영화 속에 나오는 이들의 육체는 피와 살이 담긴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 추상적인 꿈이고 이상입니다.

이들이 뛰고 고함지르고 학살하는 무대 역시 그들의 근육만큼이나 비현실적입니다. 적어도 배우들의 근육은 한동안이나마 카메라 앞에서 존재했지만 이 세계는 처음부터 거의 존재한 적이 없었죠. 대부분 블루 스크린이나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은 뒤 나중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입혔으니까요. 곧 사라질 풍선처럼 위태로운 근육을 가진 남자들이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위에서 보이지 않는 괴물들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던 겁니다.

결국 [300]의 드라마는 평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영화의 캐릭터들 중 진짜 인간적인 갈등을 겪는 사람들은 대부분 주변인들이에요. 고르고 왕비나 곱사등이 에피알테스 같은 사람들요.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레오니다스왕과 300명의 전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습니다. 결코 제대로 된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아니죠. 이들의 이야기는 단 한 가지 목표에 맞습니다. 선전물요. [300]은 굉장히 순수한 선전물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슨 선전물일까요? 이게 대답하기가 좀 그렇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건 노골적인 서구 우월주의와 막연한 인종주의입니다. 하지만 잭 스나이더가 프랭크 밀러의 원작을 각색하면서 이런 '주의'들을 의식적으로 찾아 강조했을 가능성은 거의 또는 전혀 없습니다. 에피알테스와 관련된 에피소드는 오히려 그 반대를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여기에 정치적인 상징이나 비유를 찾기 시작하면 더 혼란스럽습니다. 예를 들어 이 이야기는 현대 이라크 정세와 어색하게 연결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온전한 정신을 가진 할리우드 감독이 레오니다스왕과 조지 부시 주니어를 일대일로 연결하고 싶어 했을까요? 그것도 요새 분위기에서? 같은 현실에 대한 정반대의 비유도 가능하지만 이 역시 그렇게 잘 먹히지 않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에 대한 우화로 보는 것도 먹히지 않습니다. 일단 스파르타라는 국가가 그렇게까지 모범으로 삼을만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지 않습니까? 이란 사람들은 이것을 미국인들의 정면 도전이라고 보겠지만... 솔직히 이란과 페르시아를 연결할 줄 아는 미국인들은 몇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럼 뭡니까? 전 그냥 [300]이 방향없는 선전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굉장히 극적인 역사적 사건을 선전물의 스타일로 치장해 피끓는 오락물로 만든 거죠. 여기서 선전 행위는 일종의 특수효과입니다. 남자 배우들의 가슴 근육과 블루 스크린 위에 덧씌워진 CG 대리석 건물들처럼요. 문제는 이런 스타일이 만든 사람들의 의도나 의지를 쉽게 넘어선다는 거겠죠. [300]과 같은 영화들이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자극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이 선전 특수효과를 지워내면 [300]은 결함이 많은 영화입니다. 스타일은 인상적이지만 영화 한 편을 지탱할 정도는 아니죠. 액션 묘사도 좋긴 하지만 보기만큼 창의적이지는 않고 짜임새 있게 드라마와 연결되어 있지도 않습니다. 각 신 안에서는 흥미진진하지만 전체 드라마 흐름 안에서 보면 균형이 그렇게 고르지가 않아요.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은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걸 억지로 지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스필버그의 블록버스터들에서 특수효과를 지우자고 말하는 것과 같죠. [300]에서 선전물 특수효과는 영화의 일부이고 그것도 아주 효과적인 부분입니다. 여전히 부작용이나 함의를 찾아내는 시도를 할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게 먹히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07/03/20)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를 보기 몇 시간 전에 전 DVD로 헨델의 [세르세]를 봤죠. 나긋나긋한 18세기 귀족으로 나오는 앤 머레이를 보다가 황금색 팬티를 입은 로드리고 산토로를 접하니까... 아, 적응이 안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