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프랑스와 오종 François Ozon

주연
다니엘 다리외....어머니
Danielle Darrieux....Mamy
카트린느 드뇌브....가비
Catherine Deneuve....Gaby
이자벨 위페르....오귀스틴느
Isabelle Huppert....Augustine
엠마뉘엘 베아르....루이즈
Emmanuelle Béart....Louise
파니 아르당....피에레트
Fanny Ardant....Pierrette
비르지니 르도양....쉬종
Virginie Ledoyen....Suzon
뤼디빈느 사니에....카트린느
Ludivine Sagnier....Catherine
피르민느 리샤르....마담 샤넬
Firmine Richard....Madame Chanel
도미니크 라무르....마르셀
Dominique Lamure....Marcel

용의자들

크리스마스. 눈보라로 고립된 부르주아 가족의 저택. 자기 침실 안에서 등에 칼이 박힌 시체로 발견된 남자.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서로를 의심하는 여덟 명의 여자들. 로베르 토마의 60년대 희곡을 각색한 프랑스와 오종의 최신작 [8명의 여인들]은 설정부터 [쥐덫]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같은 크리스티 소설들의 패러디처럼 보입니다. 줄거리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반신반의하던 관객들도 완벽한 50년대 디자이너 명품들로 무장한 여덟 명의 배우들이 마치 더글러스 서크나 빈센트 미넬리의 영화들에나 나올 법한 깨끗하고 인공적인 세트와 조명 속으로 걸어들어오기 시작하면 이 영화가 '사실성'이나 '진지함'을 추구하는 작품이 아니라는 걸 짐작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가 '뮤지컬'이라는 사실을 눈치챘을까요? 네, 이 영화에 나오는 여덟 명의 여자 배우들은 모두 한 번씩 춤추고 노래할 기회를 얻습니다. "Here it is at last, the first Agatha Christie musical"이라고 로저 이버트는 말했지요.

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기원은 크리스티가 아니라 조지 큐커의 영화 [여인들]입니다. 오종은 원래 프랑스 버전 [여인들]을 만들려다가 판권 때문에 포기하고 로베르 토마의 희곡을 대타로 삼은 것이니까요. 배우들의 이름과 캐릭터를 상징하는 꽃을 같이 내보내는 오프닝 크레딧을 보세요. 배우/캐릭터를 캐릭터를 상징하는 동물들과 함께 내보낸 [여인들]의 오프닝 크레딧을 살짝 변형한 것입니다. 물론 가끔 등만 보여주는 희생자 마르셀을 제외하면 모든 캐릭터들이 여자라는 기본 설정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누가 마르셀을 죽인 걸까요? 알게 뭐예요. 이 영화를 보면서 '진범이 누굴까?'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이 영화에서 살인사건은 절대로 해결해야 할 숙제가 아닙니다. 여덟 명의 여자 주인공들을 엄청 멜로드라마틱하고 과장된 설정으로 밀어넣은 뒤, 상대방의 머리를 잡아 뜯고 팔을 물고 고함치고 키스하고 애무하고 욕하고 애원하고 음모를 꾸미게 하는 도구에 불과하지요. 누가 범인이건 상관없어요. 여덟 명의 캐릭터들은 모두 동기와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이 있는 걸요. 이들 중 한 명에게 책임을 전가시킬 수 있다고 해서 특별히 이야기가 바뀌지는 않는 겁니다.

[여인들]의 전통을 잇는 영화답게, [8명의 여인들]은 엄청난 캐스팅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다리외, 카트린느 드뇌브, 파니 아르당, 이자벨 위페르, 엠마뉘엘 베아르, 비르지니 르도양, 피르민느 리샤르, 뤼디빈느 사니에. 막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배우 사니에부터 전설적인 다리외까지, 프랑스 여자 배우들의 3대가 이 영화 안에 나이테처럼 압축되어 있는 것이죠. 이들은 배우로서보다는 스타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드뇌브나 아르당처럼 자기 기존 이미지를 재활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위페르처럼 정반대의 역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요. 역이 어떤 것이건 모두 학예회에 출연한 학생들처럼 영화를 즐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특히 성마른 노처녀로 나오는 위페르는요. 세상에, 이자벨 위페르한테서 그처럼 노골적이고 뻔뻔스러운 오버 액팅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어느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영화도 전체적으로 학예회와 같습니다. 아니, 인형극 같아요. 홍보 자료에서도 종종 언급되지만, 오종은 어렸을 때 인형가지고 노는 걸 정말로 좋아했다는군요. 그는 이 영화에서 전설적인 여자 배우들을 마치 바비 인형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예쁜 인형들에게 예쁜 옷들 입히고 예쁜 인형의 집 앞에 밀어놓고는 허리를 손으로 잡고 흔들면서 말도 안되는 대사를 읊어대는 것이지요. 물론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뮤지컬이건, 살인 미스터리건, 하는 것 자체가 재미있으니까요.

[8명의 여인들]은 얄팍하고 화려하고 예쁜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호사스럽게 인쇄된 커피 테이블 책을 생각없이 넘기면서 예쁜 그림을 즐기는 기분이 들어요. 이런 편안한 느낌을 가끔씩 뒤집어 엎는 건 거의 보기가 민망할 정도로 노골적인 캠피함인데, 설마 이런 영화에서 그런 재미도 기대 안하셨던 건 아니겠죠? (02/11/06)

DJUNA

기타등등

루이즈가 옛 주인이라며 가비에게 보여주는 사진은 로미 슈나이더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