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만희

주연
신성일....허욱
전지연....지연
김수철....친구

(스포일러가 있어요.)

허욱과 지연

지지리 궁상. [휴일]을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표현입니다. 영화가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주인공은 궁상 떠는 것밖에 하는 게 없습니다. 당시 군사정권이 삼류 비평가 노릇을 하며 이 영화에 '개작'을 요구했던 것도 당연해요. 맘에 들 리가 없죠. 보고 나면 기분이 축 늘어지고 우울증이 도지거든요.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난한 두 연인들입니다. 그래도 각자 직업은 있는지 휴일마다 만나긴 하는 모양인데, 다방에 갈 돈도 없어서 길가를 싸돌아다니는 게 데이트의 전부죠. 이 정도만 해도 고달픈데, 그만 여자는 임신까지 해버립니다. 남자는 친구 돈을 훔쳐서 낙태 비용을 간신히 구하지만 여자는 병실에서 죽어버리죠. 남자는 겁쟁이처럼 살롱에서 만난 다른 여자랑 노느라 여자의 임종도 보지 못하고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르죠? 그러나 이 영화엔 [운수 좋은 날]의 아이러니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한 단조로 신세타령만 늘어놓고 있죠. 역시 비슷하게 우울한 영화인 [오발탄]과는 달리 이야기의 폭도 좁고요. 영화는 작정하고 관객들의 우울증을 자극하는 영화입니다. 그 일관성은 영화에 일종의 순수함을 부여하지만 그만큼 영화가 따분해지기도 하죠. 그 따분함은 꽤 진실된 영화적 경험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분함이 따분함이 아닌 다른 것이 되는 건 아닙니다.

영화는 보기 참 좋습니다. 그림처럼 완벽한 미장센의 아름다운 흑백 화면들이 줄줄이 이어지죠. 60년대 말 서울의 그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재료들이 여전히 그 초라함을 간직한 채 아름다운 이미지로 다시 태어나는 거예요. 보면 재미있습니다. 저랑 같이 본 몇몇 사람들은 영화의 스타일 과잉이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가 될 가능성에 대해 언급하던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적어도 그 동안 볼 것 못 볼 것 다 본 현대 관객들에게는요. 오히려 영화의 현대적인 느낌 때문에 내용이 더 가깝게 다가올 수도 있을 걸요.

제가 여기서 가장 불만인 건 주연배우 신성일의 연기입니다. 전 아무리 노력해도 이 배우의 연기에 전적으로 몰입하지 못하겠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궁상을 떠는 건 이해하겠습니다. 그게 영화의 내용이니까요. 하지만 이 배우의 궁상 연기는 절망감과 슬픔 대신 노골적인 자기 연민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세상 무엇보다 '자기가' 슬프고 '자기가' 아픈 게 더 중요한 거예요. 이것 역시 의미있는 캐릭터 분석일 수 있지만 전 이 배우가 그럴만한 객관성을 갖추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05/09/06)

DJUNA

기타등등

사람들이 꽉 찬 봄 시사회실을 보니 낯설고 신기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