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유하

주연
주진모....왕
조인성....홍림
송지효....왕후
심지호...승기
여욱환....임보
장지원....보덕
이종구....태사
도용구....기원홍
임주환....한백
송중기....노탁
김춘기....황내관
권태원....조일문

(스포일러 잔뜩!)

왕후와 홍림

파프리카 오래간만.

듀나 방가방가.

파프리카 아, 저 젊은 애가 미래의 왕인가요? 저 꼬마는 미래의 홍림이고? 근데 왕 취향이 참 수상하네요. 입술에 젖도 안 마른 어린 것에게 벌써부터 수작을 걸어요? 그 감정이 어른이 될 때까지 계속 이어지는 거고? 보기가 좀 그렇잖아요.

듀나 저 동네에선 저게 당연시 되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페도필리아와 동성애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것 같아서 보기 안 좋아요.

근데 왕과 왕후는 가공의 인물인 게 확실하죠? 척 봐도 공민왕과 노국공주를 벤치마킹한 티가 나지만. 물론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영화에 나오는 것과는 달리 훨씬 사이가 좋았죠. 하긴 여기서도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닌 거라. 중간에 섹스가 없고 왕이 홍림을 훨씬 더 좋아하는 것뿐이죠.

파프리카 아, 조인성은 여기서 완전히 가시내 같군요. 왜 우리나라에서 퀴어 소재를 다루는 사람들은 동성애를 꼭 성역할의 문제로 접근하려 할까요?

듀나 저 장면을 떠나면 그냥 남자처럼 굴잖아요. 앞뒤도 안 맞고 어설프고... 아, 난 이 영화로 조인성 게이설은 완전히 포기했어요. 주진모 근처에만 가도 긴장해서 뻣뻣하기가 나무토막 같아가지고. 혹시 일부러 저러나?

근데 이게 꼭 조인성 탓만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 이 영화의 연기 지도는 좀 아슬아슬해요. ‘아’와 같은 감탄사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봐도 알 수 있지요.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사극’을 만든다는 자의식에 갇혀 편히 행동하지 못하는 게 보여요.

파프리카 화면이 탁하네요. 조선시대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놓고 온갖 컬러로 도배를 했으면서도 저러면 어쩌나요.

듀나 뭐예요. 지금 송지효에게 노래시키려는 거예요?

파프리카 이 사람들 정말 그러려는 모양이네! 정말 [가시리잇고]를 부르네요. 근데 사운드가 떠요. 부우우웅...

듀나 분위기가 딱 궁중 노래방이군요. 저 때 전통이 지금까지 왔다는 건가?

자객들이 나타나면서 순식간에 액션물로 바뀌는군요. 이 장면은... 액션 안무는 괜찮은데, 흐름이 안 좋아요. 특히 왕이 있는 자리는 일종의 보호막 버블로 덮여 있는 것 같아서 긴장감이 떨어져요. 액션이 늘 몇 템포씩 늦군요.

파프리카 와우, 저 원나라 사신은 몽고어로 말을 하는군요. 이런 건 처음 보네!

듀나 근데, 송지효 여기서 정말 예쁘지 않나요? 저 오동통한 볼살에, 시무룩한 얼굴에, 동글동글한 눈가에 둘러친 너구리 다크 서클이라니! 와, 그리고 확 낮춘 목소리도 은근히 섹시해요! 이런 피상적인 외양에 이렇게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되는데.

파프리카 그만큼 양식화되어서 흉내내거나 놀리기도 쉽지 않겠어요?

듀나 왜 왕은 왕후랑 안 자는 거예요? 게이라서? 그게 이유가 되나? 후사가 없어서 왕권이 위험하다며. 자기만 이런 거 겪는 줄 아나. 그래놓고 같은 게이라고 여기는 홍림을 보내는 건 또 뭐랍니까?

파프리카 이어지는 왕과 홍림의 섹스신은 피곤하네요. 열정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냥 배우들이 의욕에 차 열심히만 하는 것처럼 보여요.

듀나 이어지는 홍림과 왕후의 섹스신의 의미는 분명해요. 다른 남자와만 자봤던 남자가 여자 맛을 보고 동성애를 고친다는 것이죠. 요새는 세상이 좀 바뀌어서 ‘원래 스트레이트로 조금 더 기울어져 있던 바이 남자애가 여자에게 빠진다’로 이해하겠지만, 그렇다고 텍스트 자체가 바뀌는 건 아니죠. 이건 그냥 [셀룰로이드 클로젯]에 넣어도 먹히겠어요.

파프리카 조인성 엉덩이 참 많이도 나오네. 전 엉덩이엔 관심 없어요. 그건 그냥 의지 없는 살덩어리잖아요. 도대체 뭐가 섹시하다고.

듀나 우리에게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고마운 살덩이죠. 근데 정말 많이도 나오는군요. 마지노선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건가. 팬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나치게 많으면 다들 지치는 법.

파프리카 이 영화에 나오는 정치 묘사는 대놓고 현대로 옮겨도 특별히 어색하지 않겠네요. 특히 ‘파병군인들’을 언급하는 부분이 그래요. 뒤에 왕이 친원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하는 장면엔 정치적 감정이 들어가 있어요.

듀나 그러는 동안 왕후와 바람피우는 홍림. 아, 전 얘 싫어요. 믿을 수 없는 바이 캐릭터의 표준처럼 행동하고 있는데다가 타이밍을 못 맞춰요. 바람피우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비밀 유지와 타이밍이거늘!

파프리카 게다가 섹스신도 그냥 그렇네요. 다양한 체위로 열심히 하긴 하는데, 네, 그냥 열심히만 하는 거라고요. 전 감정보다 체위 변화에 더 신경 쓰는 섹스신은 싫어요. 어차피 보여주는 비주얼은 뻔한 걸요. 팔 다리가 서너 개쯤 더 달려 있지 않는 한은.

듀나 홍림의 문제점은 얘가 산만하다는 거예요. 감정이나 동기가 사방에 흩어져 있어요. 산만한 건 복잡한 것과 다르고 복잡한 건 입체적인 것과 다르죠. 왜 다들 이 사실을 까먹고 있는 걸까요. 적어도 후반부 이전까지는 동기와 감정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왕과 홍림을 비교해보라고요. 상대적으로 입체적이고 매력적인 인물은 홍림이 아니라 왕이에요.

파프리카 배우로서도 주진모가 가장 안정된 편이지요. 이성애에 기운 연인을 질투하는 게이 캐릭터는 좀 신물 나긴 하지만. 도대체 홍림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듀나 근데 주진모에게도 [쌍화점] 노래를 시키는 건 좀 그렇군요. 아까보다는 사운드가 덜 뜨긴 하지만. 왜 이 영화는 저렇게 고려가요에 집착하는 건지? 근데 고려가요보다 더 짜증나는 건 갑자기 생뚱맞게 등장하는 요하네스 브람스! 3번 교향곡이 왜 예고도 없이 나오냐고요!

파프리카 드디어 발각되는 홍림. 그나마 왕비가 임신을 해서 목숨을 건지는가 싶었는데, 욕정이 뭔지... 최소한 왕후에겐 자기만의 욕망이라도 있는데, 홍림에겐 그것도 없는 것 같아요. 쓸개 빠진 놈이 이리저리 쓸려다니는 것뿐.

듀나 왕후 역시 너무 단순하게 그려졌어요. 나름 한 나라의 왕후인데, 이 사람이 생각하는 건 생존과 사랑뿐인가요? 이 사람의 정치적 입장은 도대체 뭔가요? 왕과 왕후가 정치적 파트너처럼 보이는 도입부 장면을 보고 후반부 전개를 보면 더욱 아리송해요.

파프리카 결국 왕은 홍림을 거세하는군요. 누군가가 저 장면과 ‘고자라니!’ 사운드를 섞어서 플짤을 만들 것 같아요.

듀나 아, 쩨쩨한 놈. 거세당하기 싫으니 차라리 자길 죽이라고? 저런 비굴함을 이해 못할 건 아니지만 같이 발각된 여자친구 앞에서 저러고 있는 걸 보니 참 안 좋네요. 허세라도 자기 아랫도리보다 여자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제스처 정도는 취해도 되잖아요. 너 멋있어 보이고 싶지 않니?

파프리카 게다가 뒤에 이어지는 민폐를 보세요. 쟤 때문에 애꿎게 죽고 다치고 고문당하는 사람들이 도대체 몇이에요?

근데, 고자 설정이 나오니까 스토리가 많이 코믹해졌어요,

듀나 으악! 왕후가 죽은 거예요?

아니군요. 다행이다. 근데 맥이 풀리네요. 전 이런 식의 기만을 별로 안 좋아해요.

파프리카 후반부로 들어가면서 영화가 많이 산만해지는군요. 심지어 지금까지는 나름 일관성이 있었던 왕도 지금 와선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것 같죠? 욕정도 중요하겠지만 고려의 왕으로서 지켜야 할 임무가 있는 거 아닌가?

듀나 송지효가 맥베스 부인 흉내 내는 거 너무 깜찍하네요. 처음부터 홍림이 이야기를 줄이고 왕과 왕비가 홍림이를 도구로 삼아 정치적 암투극을 벌이는 이야기였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얘는 주인공 역할을 하기엔 실속이 너무 없어요.

파프리카 고려판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

듀나 아, 그것도 괜찮네요.

그 뒤로는 완전 난장판이군요. 서로에게 칼질하는 왕과 홍림이. 섹스 메타포인가요. 적어도 앞에 나왔던 열심열심 섹스신보다는 더 자연스러워요. 적어도 배우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처럼 보여요.

파프리카 홍림이 말하는 것 좀 봐요. 단 한 번도 왕을 사랑한 적이 없다고? 너 같은 놈들이 이러니까 애꿎은 다른 바이들이 욕먹는 거야! 게다가 왜 이렇게 오래 살아? 죽어! 죽어! 죽으라고오오!!!!

듀나 결말은 참으로 도식적. 미치광이 살인마 게이 왕은 죽었고 믿을 수 없는 바이 신하도 죽었어요. 살아남은 건 아기를 임신한 이성애자 여성 캐릭터. 아무리 클리셰를 무시하고 개별 드라마에 집중하려 해도 이렇게 충실하니 어떻게 무시할 수 있을꼬.

파프리카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네요. 생각보다 덜 예뻤고 더 어색했지만, 전 이 정도면 재미있게 봤어요. 클리셰가 눈에 걸리지 않았다면 더 재미있게 봤을 수도 있는데.

듀나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인데, 남자 바이 캐릭터를 공감가게 그린 영화가 거의 없는 것 같지 않아요? 예를 들어... (09/01/02)

D&P

기타등등

왕후가 불공드리는 장면에서 음악이 끊기지 않던가요? 제가 본 극장에서만 그랬는지, 아니면 성급한 재편집의 결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