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호프먼 Michael Hoffman

주연
케빈 클라인....닉 보텀
Kevin Kline....Nick Bottom
미셸 파이퍼....티타니아
Michelle Pfeiffer....Titania
루퍼트 에버레트....오베론
Rupert Everett....Oberon
스탠리 투치....퍽
Stanley Tucci....Puck
칼리스타 플록하트....헬레나
Calista Flockhart....Helena
안나 프리엘....허미아
Anna Friel....Hermia
크리스찬 베일....디미트리어스
Christian Bale....Demetrius
도미닉 웨스트....라이샌더
Dominic West....Lysander
데이빗 스트래세인....티시어스
David Strathairn....Theseus
소피 마르소....히폴리타
Sophie Marceau....Hippolyta
로저 리스....피터 퀸스
Roger Rees....Peter Quince
버나드 힐....이지어스
Bernard Hill....Egeus
빌 어윈....톰 스너트
Bill Irwin....Tom Snout
샘 로크웰.....프랜시스 플루트
Sam Rockwell....Francis Flute
존 세신즈....필로스트레이트
John Sessions....Philostrate
맥스 라이트....스타블링
Max Wright....Starveling
그레고리 바라....스너그
Gregory Jbara....Snug

1.

고증을 지키거나 전통을 따르는 셰익스피어 영화를 만드는 것은 이미 유행에 뒤진 모양입니다. 마이클 호프먼의 [한 여름 밤의 꿈]도 예외는 아닙니다.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후반의 이탈리아. 사방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들려오고 주인공들은 자전거를 타고 다닙니다.

물론 셰익스피어의 대사는 남아 있습니다(전에도 말했지만 그걸 바꾸면 영화는 셰익스피어 영화가 아닙니다.) 하지만 전통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지요. 영화 속의 배우들은 영국식 악센트를 고집하지 않습니다. 미셸 파이퍼나 칼리스타 플록하트와 같은 미국 배우들은 그냥 미국식 영어로 대사를 읊습니다.

호프먼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영국식 악센트를 포기한 최초의 [한 여름 밤의 꿈]이 아닙니다. 이미 몇 십년 전에 헐리웃에서는 막스 라인하르트가 미국식 악센트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시도한 적 있습니다.

시대 변경의 화끈한 장난이 추가된 것을 빼면, 이 영화는 여러모로 라인하르트의 작품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라인하르트의 영화는 그렇게 좋은 평을 받은 작품은 아니었지요. 호프먼의 영화는 어떨까요?

2.

[한 여름 밤의 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지극히 바보같은 스토리가 아니라 숲의 분위기입니다. 분위기가 먼저 완성되고 그 속에 캐릭터들이 녹아들어야 하지요.

당연히 세트의 중요성이 두드러지죠. 호프먼은 루치아나 아리기의 도움을 받아 치네치타의 사운드 스튜디오에 무대가 되는 숲의 세트를 만들었습니다. 하긴 원래부터 야외촬영이 힘든 작품이었지요. 사건의 대부분이 하룻밤 안에 일어나는 영화니까요.

고명하신 아리기 여사의 작품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 여름 밤의 꿈]의 세트는 아름답습니다. 이번에도 아리기한테 또 한 번의 오스카 기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는 마땅히 도달해야 하는 그 꿈결 같은 수준에 결코 이르지를 못합니다. 왜일까요?

감독 책임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트는 잘 만들어졌지만 호프먼은 이 안에서 액션의 유기적 흐름을 이끌어내고 캐릭터들을 동일한 분위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습니다. 세트는 세트일 뿐입니다. 분위기를 이끌어내고 하모니를 창출해내는 것은 그 안에서 사랑하고 싸우는 사람들이 해야하는 일이죠.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게 없습니다.

3.

영화에서 가장 진지하게 느껴지는 부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숲 속 장면이 아니라 마지막 극중극 장면입니다. 보텀 일행이 피라머스와 티스베를 연기하는 장면이죠.

2.35:1의 화면이 무대를 거의 그대로 잡아내고 종종 관객들의 코멘트가 튀어나와서, 이 부분은 어딘지 모르게 [미스테리 사이언스 시어터 3000]식으로 느껴집니다. 호프먼도 카메라를 고정한 뒤 관객들의 머리를 아래에 실루엣으로 처리하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느라 힘들었을 거예요. :-)

하지만 보텀 일당의 이 작은 연극은 훌륭합니다. 다른 부분과는 달리 앙상블이 잘 이루어져 있고 희극과 비극, 폭력과 로맨스가 기가 막히게 잘 어우러져 있습니다. 관객들은 보텀의 오버 액션에 웃다가도 프랜시스 플루트의 갑작스러운 호연에 진지해지기도 합니다. 정말로 '지리한 동시에 간결하며 비극적인 동시에 희극적인' 작품입니다. 모든 게 그 안에 있어요.

4.

호프먼의 영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해석은 보텀의 강화입니다. 우스꽝스러운 어릿광대에 불과했던 인물이 갑자기 심각한 주연으로 뛰어 오른 것이죠. 보텀은 이 영화에서 실질적인 주인공입니다.

이 영화를 먼저 본 많은 사람들은 보텀의 이 '희비극적' 격상에 상당히 당황하더군요. 하지만 전 상당히 좋게 봤습니다. 보텀이 주인공이 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한 여름 밤의 꿈]은 원래 별다른 주인공이 없는 작품입니다. 누군가를 특별히 강조한다고 해서 원래부터 짜임새없는 작품이 더 짜임새가 없어지거나 질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면 그건 보텀이죠. 이 작품에서 가장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인물이니까요.

호프먼의 보텀은 어딘지 모르게 에드 우드와 같은 수준의 예술가입니다. 에드 우드처럼 보텀도 재능없는 삼류 아마튜어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는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그의 심장은 열정과 아이디어, 예술에 대한 사랑으로 끓어오릅니다.

그리고 그는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봅니다. 예술가의 특권인 것이죠. 이 영화에서 티타니아와 보텀의 에피소드는 사랑에 눈 먼 티타니아의 우행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호프먼은 이 이야기를 180도로 돌려놓습니다. 보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그 짧은 로맨스는 에피파니, 비전입니다.

숲에서 겪은 일들을 품에 안고 돌아가는 보텀의 모습은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감동적입니다. 결코 셰익스피어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요.

5.

요즘 헐리웃 셰익스피어 영화들이 흥행 포인트로 내세우는 가장 큰 무기는 캐스팅입니다. 사실 셰익스피어 영화는 이 점에서 상업적으로 꽤 유리하지요. 많은 배우들이 셰익스피어를 연기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 받고 싶어하므로 싼 값으로 양질의 배우들을 긁어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한 여름 밤의 꿈]도 예외는 아닙니다. 미셸 파이퍼, 루퍼트 에버레트, 칼리스타 플록하트, 케빈 클라인, 크리스찬 베일... 영화 여러 편을 만들 수 있는 캐스팅이지요.

결과는 어떨까요? 글쎄요. 이 영화도 헐리웃 셰익스피어 영화가 종종 빠지는 그 어떤 전형성에서 그렇게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이들의 앙상블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악센트의 차이는 배우들을 여러 그룹으로 갈라놓고, 연기력과 적응력의 차이는 좁혀지지 않으며, 결정적으로 모두 어딘지 모르게 따로 놀기 때문에 갈라 쇼를 보는 느낌이에요. 아니,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를 보는 느낌까지 듭니다. 특히 칼리스타 플록하트가 전형적인 '앨리 맥빌' 식 헬레나를 연기할 때는 말이지요.

플록하트를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록하트는 나름대로 잘했으니까요. 헬레나는 정말 어느 정도 앨리 맥빌과 같은 캐릭터일 수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의 새로운 해석이지요. 앨리 맥빌의 이미지에 너무 익숙한 관객들의 선입견도 문제일 겁니다. 다른 배우들이 보여주는 고정된 이미지도 비슷한 이유일 거예요.

결국 감독이 책임져야 하지요. 감독이 캐스팅보다 앙상블에 더 신경을 쓰고 이들을 좀 더 관리했다면 배우들의 이미지가 이렇게 툭툭 튀지는 않았을테니까요.

하지만 몇몇 연기는 아주 좋습니다. 물 만난 듯 매끄러운 오베론을 선보이는 루퍼트 에버레트는 셰익스피어 속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보텀 역의 케빈 클라인 역시 훌륭하고요.

6.

이 영화에 쓰이는 음악은 셋으로 나뉩니다. 멘델스존, 이탈리아 오페라, 그리고 그 사이를 엮는 사이몬 보스웰의 음악.

가장 중요한 건 당연히 멘델스존입니다. [한 여름 밤의 꿈]에서 이 사람의 작품이 빠지면 어떡해요. 이 영화에서도 [한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여러 음악들이 마땅히 쓰여야 할 곳에 쓰이고 있습니다. [녹턴]이 아침 장면까지 이어지는 게 좀 거슬리고 [결혼행진곡]이 무대 장면에 쓰이는 게 당황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할 건 다 한 셈이지요.

그러나 멘델스존의 음악은 어딘지 모르게 예의를 차리는 수준에서 끝나는 듯한 느낌입니다. 오히려 보스웰이 신경을 쓰는 것은 이탈리아 오페라들입니다. 이들은 상당히 공들여 선정된 작품들이죠. 특히 티타니아의 테마처럼 쓰인 [정결한 여신]과 같은 작품들은요.

전체적으로 모든 음악들이 잘 선정되었고 잘 어울립니다. 단지 몇몇 음악들은 너무 의미가 분명해서 관객들에게 스토리를 노골적으로 떠 안기려는 것 같기도 해요. (99/09/23)

DJUNA

기타등등

보텀 일행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무대 뒤를 자세히 보세요. 한 커플이 [오델로]를 연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