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틴 스콜세지 Martin Scorsese

누군가가 저보고 마틴 스콜세지를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전 습관적으로 좋아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제가 그의 영화들을 정말 좋아한 적은 별로 없었다는 걸 알게 되지요.

물론 [성난 황소]나 [좋은 친구들], [비열한 거리]는 정말 훌륭한 영화들이며, 볼 때마다 흥분이 됩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제가 좋아하는 부류의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그의 영화 속에 나오는 와이즈 가이들과 불편한 폭력들은 제가 편하게 볼만한 대상들은 아닙니다. 제가 좋아하며 자주 보는 스콜세지의 영화들은 [순수의 시대]나 [앨리스는 더 이상 이곳에 살지 않는다]와 같이 그의 주류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작품들입니다.

스콜세지는 위대한 감독이지만, 전 오히려 영화광인 스콜세지를 좋아합니다. 그는 영화광으로서도 위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쿠엔틴 타란티노처럼 위악적이지도 않고, 고다르처럼 위선적이지도 않으며, 코엔 형제처럼 무섭지도 않습니다. 그는 삶과 예술의 균형을 잡을 줄 알며 장르 자폐증에 빠지는 일도 없고 지나치게 예술 지향적도, 컬트 지향적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을 알고 있고 거기에 솔직하며 그 광맥에서 잔뜩 보물을 끄집어냅니다.

제가 스콜세지를 좋아한다면 그의 영화 때문이 아니라 그의 취향 때문입니다. 그는 저의 취향에 상당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니까요. 제가 파웰과 프레스버그, 발 루튼, 빈센트 미넬리, 해머 영화의 진가를 발견한 것도 순전히 스콜세지 덕입니다. 이것만 해도 전 고마워 죽겠어요.

영화 탄생 백주년 다큐멘터리로 제작된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이야기]는 스콜세지의 영화광으로서의 측면이 가장 잘 부각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백주년 기념이라는 공식적인 행사를 위해 기획되었지만, 영화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입니다. 그는 무성 영화 시대부터 그가 영화를 찍기 시작했던 1970년대까지, 그가 좋아하며 영향을 받았던 헐리웃 영화들과 감독들을 소개합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이나 윌리엄 와일러와 같은 거장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수많은 B급 영화들이 그 빈 자리를 차지하지요.

이런 영화들의 클립들을 보면서 스콜세지의 개인적인 취향과 경험을 더듬어보는 것은 분명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우리는 [백주의 결투]를 보면서 "왜 저 여자는 악당을 사랑할까?"하며 궁금해하는 어린 시절의 스콜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이주일]이나 [볼드 앤 뷰티풀]과 같은 영화를 통해 그의 영화예술가로서 느끼는 고뇌를 짐작할 수도 있고요. [캣피플]이나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와 같은 숨은 걸작들을 다시 발견하는 재미도 있죠.

그렇다고 그가 정말로 개인적으로만 노는 건 아닙니다. 그는 나름대로 또 하나의 영화사를 꾸미고 있습니다. 그는 이 다큐멘터리로 그가 사랑하는 이 작은 영화들에 어느 정도 공식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특히 [캣 피플]을 [시민 케인]과 동격인 작품으로 평가할 때는요.

우리가 그의 평가에 모두 동의해야 할까요?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의 평가를 모두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은 정말 없겠지만) 영화는 여전히 진득한 건더기를 남기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굉장한 구경거리이고, 그 구경거리만큼이나 스콜세지의 논평이 재미있으며 또 그 모든 것을 합친 것만큼이나 굉장한 정보 탱크입니다. 여러분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보건, 4시간이라는 긴 상영 시간을 그대로 낭비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99/11/05)

DJUNA

기타등등

1. 스콜세지는 이 영화의 콤패니언 북도 냈습니다. 다큐멘터리보다 내용이 더 풍부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희귀한 사진들을 잔뜩 수록하고 있어서 그 나름대로 좋은 자료입니다.

2. 필름스에는 자료가 없지만, 이 작품은 캐치원과 채널 Q를 통해 방영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