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자크 오디아르 Jacques Audiard

주연
타하르 라힘....말리크 엘 제베나
Tahar Rahim....Malik El Djebena
닐스 아레스트룹....세자르 루치아니
Niels Arestrup....César Luciani
아델 벤체리프....리아드
Adel Bencherif....Ryad
히쳄 야쿠비....레예브
Hichem Yacoubi....Reyeb
레다 카텝....조르디
Reda Kateb....Jordi
장-필립 리치....베토리
Jean-Philippe Ricci....Vettori

말리크

'학교'는 교도소를 가리키는 가장 일반적인 은어이고 아마 거의 대부분의 언어에서 이런 의미의 은어를 사용하고 있을 겁니다. 정말로 교도소는 학교 같은 곳입니다. 풋내기 범죄자들이 어디서 선배들을 만나 기술을 배우고 서열을 정하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비용을 대는 건 납세자의 몫이란 말입니다.

[예언자]의 주인공 말리크에게도 교도소는 학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말리크의 교육은 일반 범죄자들의 수준을 월등히 넘어섭니다. 보다보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리크는 엄청나게 똑똑하고 현명하며 집중력과 목표 의식도 대단합니다. 좋은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 받았다면 굉장한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아이가 19년 동안 문맹인 상태로 뒷골목을 떠돌다가 교도소로 들어온 것이죠.

보통 사람들에게 교도소로 들어가는 건 나쁜 일입니다. 말리크에게도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 겪은 큰 일이 교도소 내부를 꽉 쥐고 있는 코르시카 갱들에게 살인을 강요당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관문을 넘어서고 코르시카 갱단 두목 루치아노의 심복이 되면서 그는 드디어 자신을 갈고닦을 기회를 얻습니다. 그는 교도소 학교에서 글을 깨우치고 경제학을 배우고 독학으로 코르시카 방언도 익히면서 교도소의 권력구조와 시스템이 굴러가는 방식을 연구합니다. 제대로 마음잡고 공부하기 위해 필수적인 엄격한 규율과 목표의식을 교도소가 모두 제공해준 것입니다.

말리크의 교도소 생활을 보면 파리아 신부를 만난 에드몽 당테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 파리아 신부는 여러 명입니다. 거의 교도소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가 죽인 레예브는 그에게 목표의식을 제공해줍니다. 루치아노로부터는 권력이 흐르고 운영되는 방식을, 마약상인 집시 조르디에게는 경제학을 배웁니다. 잠시 머물다 출옥한 친구 리아드로부터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물려받습니다. 그러는 동안 주변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경쟁자들이나 적수들 모두 그에게는 스승입니다. 눈만 제대로 뜨고 현명하게 생각하면 모두에게 배울 것이 있습니다. 영화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고 출옥할 무렵, 그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 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교육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현명하게 이용해 자신의 목표를 이루고 복수를 하고 권력을 찬탈하지요.

[예언자]에는 도덕적 판단이 제거되어 있습니다. 감독/작가 장 오디아르는 말리크의 행동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지 않아요. 말리크가 범죄세계로 빠져드는 것은 결국 그가 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노골적인 체제비판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선악 판단이 아니라 성장 과정 그 자체입니다.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날 무렵, 관객들은 성장하는 말리크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다가 우등상 받고 졸업하는 아들을 보는 기분입니다.

게다가 그는 꽤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말리크의 매력 대부분은 거의 초인적인 현명함에서 나옵니다. 그는 자기 홧김에 못 이겨 폭력을 휘두르는 삼류 범죄자 타입이 아닙니다. 지금 위치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 알고, 누군가를 두들겨 패거나 죽이는 것만으로는 제대로 복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지요. 관객들 대부분은 그런 수준에 도달해 있지 않기 때문에 말리크의 성장 과정은 강렬한 대리만족의 쾌감을 제공해줍니다.

영화의 인류학적 관점은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들, 그중 특히 [좋은 친구들]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주인공을 나레이터로 삼으면서도 끝까지 그를 타자화시켰던 스콜세지와는 달리 오디아르는 종종 말리크에게 마음을 활짝 열고 그의 고민과 분노, 쾌락을 공유합니다. 이 장면들은 무척 시적이고 종종 초현실의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말리크는 감옥에 있는 동안 자기가 죽인 레예브의 환영을 보는데, 그 환영은 말리크를 괴롭히는 대신 친구 겸 스승이 되어 조언을 해줍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말리크의 독특하게 자기 중심적인 성격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어울릴 수가 없습니다.

2시간 반 짜리로 다소 긴 편이지만 [예언자]는 전혀 지루할 여지를 주지 않는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오락물로서의 짜임새만 보아도 한 장르의 전범이 될 만합니다. 그보다 더 좋은 건 이 영화가 좋은 교양소설에 필수적인 내용의 풍성함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다룬 깊이있는 전기이기도 하지만 그가 속해있는 사회를 그린 상세한 해부도이기도 하죠. 이런 패키지를 만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09/11/05)

DJUNA

기타등등

유럽 영화제 상영작입니다. 자막이 붙어 있으니 곧 개봉하겠죠. 이번 영화제에서 고른 작품들은 [이렌느]를 제외하면 모두 개봉 예정작이라 조금 손해를 본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