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리치 Michael Ritchie

주연
마틴 쇼트....머레이
Martin Short....Murray
마라 윌슨....아나벨 그리닝
Mara Wilson....Anabel Greening
로버트 파스토렐리....올리버 그리닝
Robert Pastorelli....Oliver Greening
캐슬린 터너....클라우디아
Kathleen Turner....Claudia
아만다 플러머....부츠
Amanda Plummer....Boots
프랜시스 카프라....찰리 그리닝
Francis Capra....Charlie Greening
루비 디....호텐스
Ruby Dee....Hortense
테리 가....레나
Teri Garr....Rena
앨런 캠벨....토니 세이블
Alan Campbell....Tony Sable
조나단 해데이리....로드 리처드
Jonathan Hadary....Lord Richard
데보라 오델....제리
Deborah Odell....Jeri
래니 플레허티....듀웨인
Lanny Flaherty....Duane

1.

착한 요정 대모들은 [신데렐라] 그림책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살아남아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고 있죠. 심지어 그들은 맨하탄에 지부도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전세계의 모든 요정 대모들이 모여서 집회도 가지고요.

물론 세월이 변했으니 모두가 옛날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남자들도 요정 대모가 될 수 있는 거죠. 우리의 주인공 머레이가 바로 그런 희귀한 예입니다. 하여간 머레이는 아버지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주연 배우가 되길 바라는 어린 소녀 아나벨의 소원을 들어주려고 하는데, 자격증을 딴 지 겨우 3개월밖에 안되는 이 풋나기는 소원을 들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일을 더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게다가 하필이면 사악한 전직 요정 대모인 마녀 클라우디아가 요정 대모들의 마술 지팡이들을 모두 훔쳐서...

2.

[요술장이 아나벨]은 현대판 동화 fairy tale입니다. 동화라는 뻔한 단어 다음에 그만큼이나 뻔한 fairy tale이라는 토를 단 건, fairy tale이라는 단어가 생각보다 번역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요술장이 아나벨]은 [신데렐라]와 같은 옛 동화들을 현대판으로 업데이트 시킨 작품도 아니고, 현대를 무대로 한 일반적인 초현실적 동화도 아닙니다. 현대를 무대로 한 구식 fairy tale인 거죠. 영화는 마녀, 요정 대모, 소원 성취, 백설공주의 빨간 사과와 같은 친근한 코드들을 그대로 끌어와서 현대를 무대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이 무기로 내세우는 것은 그 시대착오적인 느낌입니다. 구식 동화와 현대 배경은 같이 있기만 해도 뭔가를 만들어내니까요. 그건 19세기나 현대를 무대로 한 셰익스피어 작품을 보는 느낌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마이클 리치는 이 대조를 일부러 강조하는 대신 자연스럽게 이 둘을 결합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요술장이 아나벨]의 무대인 맨하탄은 20세기 말의 첨단 도시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보다 예스럽고 동화적인 공간이죠. 영화의 대부분은 센트럴 파크에서 일어나고, 아나벨의 아빠 올리버는 마차를 끄는 마부이며 (그래서 구식 실크햇과 프록코트를 입고 있답니다,) 소망 성취의 무대가 되는 곳도 찰스 디킨즈 원작의 뮤지컬 [두 도시]를 준비하는 극장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매우 뉴욕적이면서도 좋은 의미에서 구식이라 시대착오의 날카로운 충돌은 없습니다.

올바른 선택이었어요. 시대착오적 요소는 의식적으로 계속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역시 농담이라 계속 되풀이하면 식상하기 마련이죠. 이런 농담은 초반에 조금 쓰고 잊는 편이 좋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객들에게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말해주는 것일테니까요.

3.

그러나 [요술장이 아나벨]은 마땅히 도달했어야 할 선까지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지나치게 슬랩스틱 코미디와 구식 동화 플롯에 의존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특히 코미디 부분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영화에서 코미디의 기둥으로 삼고 있는 것은 마틴 쇼트인데, 내용에 비해 그의 오버 액션이 지나쳐서 종종 영화가 산만해지고 늘어집니다.

구식 동화 플롯에 지나치게 매달린 것 역시 좋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fairy tale이라지만, 그렇다고 정말 순진하게 '옛날 옛적에...'에 매달려야 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백스테이지 드라마를 강화하고 거기에 요정들을 던져 넣었더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요. 마땅히 클라이맥스였어야 했을 마녀 클라우디아와의 싸움에도 충분한 강렬함과 흥분이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너무 안이했던 거죠.

4.

[요술장이 아나벨]을 볼 때 은근히 시선이 가는 것은 영화의 동성애적인 요소입니다. 이 영화에 동성애자 캐릭터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 전체가 그렇게 꾸며져 있거든요.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남자 요정 대모'인 머레이겠지요. 아시겠지만 'a male fairy godmother'라는 표현에는 단순히 성전환 이상의 느낌이 있습니다. 게다가 차이코프스키, 발레, 캐슬린 터너의 요란한 마녀 복장과 같은 다양한 게이 코드들이 빽빽하게 차 있어서 이런 것들을 밟지 않고 영화를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런 식의 어린이 영화는 어쩔 수 없이 게이 컬쳐 안에 통합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건 은밀한 농담이기도 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숙명이기도 했던 거죠. (00/02/22)

DJUNA

기타등등

영화에 나오는 [두 도시]는 진짜 뮤지컬이 아닙니다. 영화를 위해 부분 부분만 쓰여진 가짜 뮤지컬이지요. 지나치게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흉내낸 듯 하긴 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아서 무대에서 한 번 보고 싶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