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지 어페어 A Village Affair (1994) * * 1/2

감독
모이라 암스트롱 Moira Armstrong

주연
소피 워드....앨리스 조던
Sophie Ward....Alice Jordan
케리 폭스....클로다 언윈
Kerry Fox....Clodagh Unwin
나다니엘 파커....마틴 조던
Nathaniel Parker....Martin Jordan
제레미 노덤....안소니 조던
Jeremy Northam....Anthony Jordan
클레어 블룸....세실리 조던
Claire Bloom....Cecily Jordan
마이클 고어....레이프 언윈 경
Michael Gough....Sir Ralph Unwin
키라 나이틀리....나타샤 조던
Kiera Knightley....Natasha Jordan

1.

피트콤의 전형적인 영국의 작은 시골 동네에 변호사 가족이 이사 옵니다. 동네 사람들한테 이 집안의 안주인 앨리스 조던은 아주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젊고 아름다우며, 돈 잘 벌어다주는 남편과 귀여운 세 아이들 그리고 마을에서 가장 근사한 집을 차지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깔끔하고 완벽한 외양 속에서 앨리스의 내면은 서서히 메말라가고 있었습니다.

완벽하지만 이 지루한 삶 속에서 미이라처럼 비틀려가던 앨리스의 세계는 얼마 전에 미국에서 돌아온 그 동네 귀족의 딸인 클로다를 만나면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클로다가 조던 부부와 얽혀 삼각관계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하자 동네 사람들의 입도 함께 시끄러워지는데...

2.

[빌리지 어페어]의 원작은 영국 작가 조애너 트롤로프가 쓴 동명의 소설입니다. 트롤로프는 영국 시골 동네를 무대로 하는 멜로드라마가 전문인 작가인데, 아직 그 사람 작품들을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그렇게 읽을 생각도 들지는 않고요. 모이라 암스트롱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국 각색물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이 영화의 원작이 영화와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흰 영화만으로 충분해요.

[빌리지 어페어]는 낡은 그릇에 새 소재를 담아 내놓으며 그 어긋나는 느낌을 즐기고 있습니다. 슬쩍 보면 참 전형적으로 보이죠? 무대는 어딘가 미스 마플이라도 숨어 있을 것 같은 완벽한 영국의 시골 마을입니다. 내용도 시골 동네 소설용 '동네 스캔들'이고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클로다와 바람을 피우는 사람은 변호사 남편 마틴이 아니라 앨리스입니다. 여기서부터 영화는 '동네 스캔들 스토리'를 짓궂게 흔들어댑니다. 스캔들을 반찬 대신 먹고 살았던 동네 사람들이지만 '동성애'는 차마 감당할 수 없는 거예요! :-)

결코 웃음거리만은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의 충격은 곧바로 작은 동네 특유의 매정한 따돌림으로 이어지고 앨리스는 이 상황 속에서 처절한 선택을 해야 하니까요. 그 선택이 그렇게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요. 사실 저희는 이 어정쩡한 결말에 불만이 많습니다.

3.

동성애라는 새 요소를 끌어들이고 있긴 하지만, [빌리지 어페어]가 하는 이야기는 여전히 고전적입니다. 갑갑한 결혼 생활에 숨막혀 하던 가정 주부가 바람 피운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는 말은 못하시겠죠. 그리고 [빌리지 어페어]는 이 틀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습니다.

동성애라는 새로운 소재가 첨가된 만큼, 동네 사람들의 호모포비아와 같은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긴 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가장 매끄러운 부분은 불륜에 딸려오는 죄의식, 책임감과 감정의 대립과 같은 전형적인 불륜 드라마의 소재들입니다. 동성애를 맘 잡고 다룰 때는 어딘지 모르게 거칠어져 버려요. 아마 그 시골 동네가 너무나도 예스러워서 미묘한 갈등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결과 영화의 균형이 흔들립니다. 캐릭터부터 그래요. 이 영화에서 앨리스는 상당히 깊이 있고 믿음직스럽게 묘사되고 있지만 클로다는 아주 거칠어요. 그건 앨리스가 동성애에 빠지는 것만 제외하면 아주 고전적인 캐릭터지만 클로다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후반부의 대책없는 멜로드라마나 방향을 잡지 못한 앨리스의 선택 역시 새로운 소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결과 발생한 것들입니다. 캐릭터의 갈등도 충분히 구체화되지 않았고요.

보통 때는 늘 먹히는 모이라 암스트롱의 안전한 연출도 이 영화에서는 방해가 됩니다. 스토리에 좀 더 충분한 열정을 부여했으면 좋았을텐데 선정성에 빠지는 게 겁이 났는지 늘 주저하기만 하거든요.

4.

앨리스 역의 소피 워드는 좋습니다. 섬세하고 공감가요. 클로다 역의 케리 폭스는, 배우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캐릭터가 약하고 종종 지나치게 멜로드라마틱해지는 대사 때문에 그렇게 와닿지가 않는군요.

나다니엘 파커는 그럴싸합니다. 얼핏봐도 멀끔하고 둔하고 지루하고 눈치없어 보여요. 제레미 노덤이 이 영화의 악역인 안소니역을 맡았는데, 지금까지 저희가 본 노덤의 캐릭터 중 가장 밥맛없는 인물입니다.

이제는 많이 나이를 먹은 클레어 블룸이 앨리스의 시어머니로 잠시 나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역은 아니었지만 다시 봐서 반갑더군요. 잘하기도 했고요. (99/09/22)

D&P


기타등등

[빌리지 어페어]는 꽤 예언적인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가 나오고 2년인가 지난 뒤에, 앨리스를 연기했던 소피 워드가 정말로 커밍 아웃을 해버렸거든요. 당시 상황은 정말 [빌리지 어페어]와 비슷했습니다. 단지 결말만은 달라요. 소피 워드는 지금 남편을 떠나 미국인 여자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