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별점 평가라는 이상한 전통에 대해 불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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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여년 전만 해도 이 나라에서 영화 별점 평가는 아주 희귀했습니다. 영화 평론가였던 정영일이 조선일보의 텔레비전 영화 소개란에 별점을 끼워넣었던 것이 거의 유일한 예였지요. 아마 그것도 레너드 말틴의 별점 평가를 그대로 따왔을 거예요. 적어도 저희는 그렇게 기억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라고 한다면, 저흰 그 당시 말틴의 별점 평가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별 넷'이란 말을 공인된 걸작의 또다른 표현으로 생각했고 별 둘 이하부터는 보지도 않았지요. 당시 저희 '걸작 리스트' 노트를 장식했던 영화들은 대부분 말틴이 별 세 개 반 이상을 준 작품들이었습니다. 바보같은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어요. 저흰 지금도 말틴이 별 셋 이하를 준 뮤지컬 영화를 '적극적으로' 볼 생각이 없답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정상적인 체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을 간단하게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는 그 진실 여부를 떠나 일단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 아돌프 히틀러, 헐리웃 액션 영화 제작자들, 사이비 종말론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큰 인기를 끌 수 있는 거죠.

별점 평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세계 모든 영화의 질을 일곱 단계로 표현해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얼마나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하나요. 머리 속에 커다랗고 아름다운 피라밋이 그려지지 않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렇게 또릿또릿하게 정리되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에 대한 정보가 넘쳐 나는 요즘, 우후죽순처럼 사방에서 다양한 별점 평가가 튀어나오는 것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흰 아직도 이런 별점 평가를 보면 안심부터 됩니다.

그러나 세상은 결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영화도 마찬가지지요. 피라밋은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세요. 그건 환상입니다. 어떤 예술작품들도 그렇게 간단하게 수로 표현될 수 없습니다.

별점 평가가 개인의 주관적 평가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또 별점 평가를 보는 사람들은 그걸 고려에 둡니다. 여러분도 강한섭이 별 넷을 주는 영화와 유지나가 별 넷을 주는 영화가 아주 같지는 않다는 건 아실 거 아니에요. 사실, 그들은 별을 주면서 아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고정된 걸작'이 아닌 영화라면 그 별점 차이는 더 심해지지요 (팁! 고로 평론가의 개성을 확인하고 싶으면 그런 어정쩡한 영화를 고르면 됩니다. [시민 케인]의 평은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평론가의 취향을 안다면 그 주관적 평가는 충분히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 별점이 그 개인한테도 일관성있는 언어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첫번째 '진짜' 문제점입니다. 생각해보세요. 별 셋은 단순히 '별 셋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뜻이 아닙니다. 레너드 말틴의 영화평을 골라볼까요? 그는 데이빗 린의 [라이언의 처녀]와 피터 잭슨의 [데드 얼라이브] 모두에게 별 셋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별들이 의미하는 건 전혀 다릅니다. [라이언의 처녀]에 달린 별 셋은 거장의 비교적 실망스러운 태작이란 뜻이고 [데드 얼라이브]의 별 셋은 '아주 좋은' 스플래터 영화란 뜻이니까요.

말틴의 최하점인 BOMB!도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될 때가 있습니다. 에드 우드의 여러 영화들을 비롯한 수많은 5,60년대 싸구려 영화들에 이 평점이 붙어있을 때, 그 점수는 오히려 애정어린 칭찬이 됩니다. 아주 아주 싸구려고 저질이므로 이런 영화팬들에게는 절대 추천이란 뜻이죠. 물론 그냥 저질이 아닌 흥겨운 저질이란 뜻입니다. 말틴은 그냥 지루하고 나쁜 영화에도 마찬가지로 BOMB!을 주었으니 이게 무슨 뜻인지 알려면 일단 평을 읽어야 합니다.

별점은 그렇게 '객관적인' 평가가 아닙니다. 그것은 평에 종속된 일종의 수사적 표현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별점만으로 그 평론가의 영화에 대한 견해와 감정을 곧장 전해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별점만 읽고 평은 건성으로 넘깁니다.

IMDb와 같은 사이트의 별점이 의미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 때문입니다. IMDb에 실린 [외계에서 온 계획 9]의 별점은 정말로 의미가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다른 별점을 주었는데, 그 각각은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평균은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습니다. 그건 공허한 숫자일 뿐입니다.

2.

그런데도 저희는 별점 평가라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왜? 수사적 표현을 하나 더 붙이는 것도 나쁠 건 없지요. 그리고 별점이라는 걸 달면 저희가 하이텔과 같은 통신망에 올렸던 글들을 그냥 올리면서도 뭔가 차별성을 가할 수 있습니다. 별점을 다는 작업 때문에 쓸 이야기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요.

좋습니다. 규칙을 말씀드리죠. 점수를 주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씨네21]처럼 별 다섯을 만점으로 하는 방법도 있고 IMDb처럼 별 열 개를 만점으로 줄 수도 있습니다. 그 사이의 단계도 종류가 있죠. 별 반 개를 사이에 넣어서 보다 섬세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고 중간단계를 없애고 거칠게 놀 수도 있습니다.

저흰 말틴의 방식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별 넷을 만점으로 하고 최하점은 별 하나 (말틴 식으로 한다면 BOMB)입니다. 별 반 개를 1단위로 할테니 7단계가 됩니다.

아무래도 말틴의 것이 이상적인 것 같습니다. 별 다섯을 사용하면 마지막 별은 늘 낭비가 됩니다. 사실 별 다섯을 주는 잡지에서도 별 셋 반부터 별 넷 반까지의 평점은 의미가 거의 같습니다. '불멸의 고전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주 좋은 영화'라는 뜻이죠. 그런 말은 한 번만 하면 됩니다. 별 넷 평점표에서는 별 셋 반이 그걸 의미합니다.

작품성과 오락성을 나누어 따로 별점을 주는 짓 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도대체 그게 뭡니까? 작품성과 오락성이 과연 그렇게 쉽게 떨어지는 겁니까? 물론 아주 지루한 걸작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의미없이 순수한 재미만 선보이는 작품이라도 그 재미가 아주 뛰어나다면 그 역시 그 영화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요소가 될 겁니다. [사랑은 비를 타고] 같은 영화에 도대체 무슨 철학이 있습니까? 그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순수한 오락 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합니다. 그 오락이 지독하게 훌륭하니까요.

대충 할 말은 다한 것 같네요. 그럼 밖으로 나가서 아무 링크나 건드려 보시기를!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