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파이크 존스 Spike Jonze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찰리 카우프먼/도날드 카우프먼
Nicolas Cage....Charlie Kaufman/Donald Kaufman
메릴 스트립....수잔 올리언
Meryl Streep....Susan Orlean
크리스 쿠퍼....존 라로쉬
Chris Cooper....John Laroche
틸다 스윈튼....발레리
Tilda Swinton....Valerie
카라 세이모어....아멜리아
Cara Seymour.... Amelia
주디 그리어....앨리스
Judy Greer....Alice
매기 길랜홀....캐롤라인
Maggie Gyllenhaal....Caroline
브라이언 콕스....로버트 맥키
Brian Cox....Robert McKee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찰리 카우프먼

사실 1. 수잔 올리언이라는 [뉴요커]지의 기자가 존 라로쉬라는 괴짜 난초 수집가에 대한 기사를 썼습니다. 올리언은 이 기사에 살을 덧붙여 [난초 도둑]이라는 책을 발표했지요.

사실 2. [난초 도둑]이 유명해지자, 영화사에서는 판권을 샀고 [존 말코비치 되기]의 작가인 찰리 카우프먼에게 각색을 맡겼습니다.

사실 3. 찰리 카우프먼의 각색 작업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좋은 책이었지만 도대체 영화로 옮길 내용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4. 한동안 끙끙대던 찰리 카우프먼은 [난초 도둑]을 각색하는 대신 [난초 도둑]을 각색하느라 끙끙거리는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여기까지가 [어댑테이션]이라는 영화의 각본이 나오기까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이것은 [어댑테이션]이라는 영화의 줄거리이기도 해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말입니다.

[어댑테이션]은 어떻게 보면 사과와 변명으로 구성된 영화입니다. 찰리 카우프먼은 이 영화의 각본을 통해 수잔 올리언과 영화 제작자에게 자기가 왜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나 변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냐고요? 한마디로 그는 남의 작품을 각색하기엔 자기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구석에 앉아 [존 말코비치 되기]같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나 만들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 진지한 논픽션을 단도직입적으로 각색해야 했으니 말 다했죠. [어댑테이션]은 마땅히 바깥의 작가와 상호 작용이 필수적이어야 할 각색 작업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지만 정작 내용 자체는 굉장히 자폐적입니다.

네, 이 영화에는 굉장히 많은 실존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연기한 찰리 카우프먼,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수잔 올리언, 크리스 쿠퍼가 연기한 존 라로쉬, 브라이언 콕스가 연기하는 로버트 맥키는 모두 실존인물들입니다. 스파이크 존스, 캐서린 키너, 존 말코비치는 자기 자신으로 등장하고 있고요.

그러나 이 영화에서 그들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실존 인물의 마스크를 뒤집어 쓴 카우프먼 자신입니다. 심지어 찰리 카우프먼도 찰리 카우프먼의 가면을 뒤집어 쓴 찰리 카우프먼이지요. [어댑테이션]을 감상하는 건 마치 찰리 카우프먼이라는 작가의 뇌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를 구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작품의 다중인격적인 광기의 가장 구체적인 표식은 영화가 공동 각본가라고 선전하는 찰리 카우프먼의 쌍둥이 동생 도널드입니다. 네, 쌍둥이 동생의 설정 자체가 인격 분열의 흔적입니다. 하지만 더 있어요. 지나치게 예민하고 지적인 형 찰리와 달리 평범하고 생각없는 도널드는 로버트 맥키의 시나리오 강의를 들으며 [3]이라는 제목의 스릴러 각본을 완성해 백만 달러에 팔아 넘깁니다. 그런데 바로 그 뻔할 뻔자 스릴러의 내용이 희생자, 범인, 형사 모두가 동일인물인 다중인격자에 대한 것이었지요.

찰리는 당연히 그 각본에 어처구니 없어 합니다. 하지만 도널드의 각본은 조금 노골적인 것이 다를 뿐 한 사람의 두뇌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점에서 찰리의 [어댑테이션]과 기본적으로 같습니다. [3]은 [어댑테이션]을 위한 안내서쯤 되지요.

후반부에 이르르면 찰리는 도널드에게 항복해버립니다. 진짜 찰리와 영화 속의 찰리 모두가요. [어댑테이션]의 각본은 [3]을 팔아 의기양양해진 도널드가 형 찰리를 돕기 위해 뉴욕으로 올라오면서부터 도널드화됩니다. 로버트 맥키도 자랑스러워할 공식적이고 통속적인 스릴러가 되는 것이죠. 그가 계속 놀려대던 도널드와 맥키의 영토에서 찰리가 각본을 완성할 종착지를 찾는다는 아이러니가 무시되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하여간 영화는 흥겹습니다. [어댑테이션]의 변명이 먹히는 것도 바로 그 흥겨움 때문이지요. 사실과 픽션을 오가는 카우프먼의 미로 짜기는 [존 말코비치 되기] 때와는 또다른 매력을 풍깁니다. 거창한 캐리커쳐와 진지한 드라마 캐릭터를 오가는 멋진 배우들의 호연 역시 무시할 수 없고요. 특히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쌍둥이를 연기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모습엔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었던 꽉 짜여진 느낌은 없습니다. 처음부터 변명으로 쓰여진 각본이라는 게 문제였을까요? 하긴 도널드라는 인물 자체가 변명을 위해 만든 허수아비잖아요. 도널드화 된 영화의 후반부도 충분히 이야기할 거리가 많고 흥미롭지만 제 우뇌를 완벽하게 만족시킬 만한 그 딱 맞는 느낌은 제공해주지 못하고요. 이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후반부를 물고 늘어지니 제 탓만은 아닐 겁니다. [어댑테이션]은 여전히 멋진 영화지만 이 임시 방편의 탄생담에서 완벽하게 빠져나온 작품은 아닙니다. (03/04/28)

DJUNA

기타등등

1. 쿠키가 있으니 끝까지 보시길.

2. 메릴 스트립처럼 평범하게 나이를 먹은 50대 아줌마가 당연히 성적 욕구의 대상이 되고 그 자신도 자신의 욕망을 그만큼이나 자연스럽게 펼치는 걸 보면서 괜히 흐뭇해졌답니다. 이 영화에서 스트립의 캐릭터는 10년전 그 사람이 출연한 다른 영화들에서보다 한 명의 여성으로서 훨씬 나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