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더글러스 서크 Douglas Sirk

주연
제인 와이먼....캐리 스코트
Jane Wyman....Cary Scott
록 허드슨....론 커비
Rock Hudson....Ron Kirby
아그네스 무어헤드....사라 워렌
Agnes Moorehead....Sara Warren
콘라드 나이젤....하비
Conrad Nagel....Harvey
버지니아 그레이....알리다 앤더슨
Virginia Grey....Alida Anderson
글로리어 탈보트....케이 스코트
Gloria Talbott....Kay Scott
윌리엄 레이놀즈....네드 스코트
William Reynolds....Ned Scott
찰스 드레이크....믹 앤더슨
Charles Drake....Mick Anderson
헤이든 로크....헤네시 박사
Hayden Rorke....Dr. Hennessy
자클린 드위트....모나 플래시
Jacqueline deWit....Mona Plash

론과 캐리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의 매력은 무척 단순하고 솔직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양파처럼 겹겹의 의미와 감상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줄거리만 따진다면 이 영화는 비교적 소박하고 전통적입니다. 평온한 삶을 살던 여자 주인공이 다른 세계에 소속된 남자 주인공을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둘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만류 때문에 둘의 사랑은 위기에 처하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정보를 준다면, 이 영화의 여자 주인공 캐리는 대학생 남매를 두고 있는 상류사회 출신의 과부이고 남자 주인공 론은 괜히 소로 흉내를 내며 끝도 없이 멋있는 척하는 15살 연하의 근육질 정원사입니다.

다음 해에 나온 [바람에 쓴 편지]와는 달리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은 직설적인 로맨스처럼 보입니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캐리의 기쁨과 고통을 진지하게 다룹니다. 주변 사람들은 종종 희화화되긴 하지만 [바람에 쓴 편지]처럼 주인공들까지 매정한 이중 농담의 대상으로 다루지는 않죠.

영화는 진지한 사회 비판을 다루고 있기도 합니다. 이 역시 별다른 위장을 뒤집어 쓰지 않고 직접적으로 다루어지죠. 캐리와 론이 겪는 수난은 미국 중상류층 사회의 폐쇄성과 여성들에 대한 성적 억압에 기반하고 있으니까요. 이 영화 로맨스는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없었고 죽은 남편의 소유물에 불과했던 한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육체를 쟁취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서크는 이 영화를 할리우드 멜로드라마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순수한 감정은 장르 공식에 따라 과장됩니다. 일종의 오페라화가 되는 거죠. 이 선에서도 이야기는 여전히 진지하지만 과장된 감정과 극단적인 설정, 이를 장식하는 거창한 시각적 스타일 때문에 이야기의 심각함은 고유의 흥겨움을 부여받습니다. 물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돌덩어리 같은 록 허드슨의 뻣뻣하게 잘생긴 모습 역시 이런 이야기가 주는 싼 쾌락의 일부이기도 하죠.

이것으로 끝이냐고요? 아뇨, 영화는 조금 더 나아갑니다. 전에도 말했듯, 서크는 선천적인 멜로드라마티스트이면서도 그 장르의 비현실성과 과장성에 눈이 멀지 않은 세련된 예술가였습니다. [바람에 쓴 편지]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에도 그런 이중성이 숨어 있습니다.

아까 제가 한 여성이 자신의 의지와 육체를 쟁취한다느니 어쨌다느니 하며 거창한 소리를 한 걸 기억하세요? 여전히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라는 말이에요.

특히 캐리에게 해방을 가져다주는 론의 캐릭터를 보면 그렇습니다. 영화는 이 인물을 멋있게 꾸미려고 별 짓은 다하지만, 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입체적인 존재가 된 적이 없습니다. 캐리의 아들이 이죽거리면서 말했잖아요. 잘 발달된 근육들을 세트로 모아놓은 것 이상은 아니라고요. 정확한 기술이에요.

더 은밀하게 거슬리는 건 론의 강압성입니다. 이 인물은 갑자기 캐리의 인생에 뛰어들어와 캐리를 사랑한다고 하고는 갑자기 지금까지 그녀가 평생을 통해 쌓아놓은 모든 것들을 버리고 자기와 결혼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캐리가 주저하면 마치 세상에서 가장 위선적인 겁쟁이를 상대하는 것처럼 행동하고요. 도대체 이 친구가 뭔데 캐리에게 이런 식으로 구는 거예요?

이렇게 보다보면, 서크가 캐리의 고통을 진지하게 담으면서도 은근히 설정 자체를 비웃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는 두 연인이 맺어지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캐리는 한 남자의 소유물에서 다른 남자의 소유물로 떨어진 것 이상은 아니니까요. 캐리의 "집에 왔어요"라는 대사가 묘하게 절망적으로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는지. (03/04/14)

DJUNA

기타등등

이 작품은 파스빈더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의 원작입니다. 작년에는 토드 헤인즈가 자신의 영화 [파 프롬 헤븐]에서 노골적으로 모방하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