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장-피에르 주네 Jean-Pierre Jeunet

주연
오드리 토투....아멜리
Audrey Tautou....Amélie
마티유 카소비츠....니노
Mathieu Kassovitz....Nino
루푸스....라파엘
Rufus....Raphaël
욜랑드 모로....마들렌느
Yolande Moreau....Madeleine
위르뱅 캉셀리에....콜리뇽
Urbain Cancelier....Collignon
이자벨 낭티....조르제트
Isabelle Nanty....Georgette
도미니크 피뇽....조셉
Dominique Pinon....Joseph
세르쥬 메를랭....뒤파엘
Serge Merlin....Dufayel
자멜 드부스....뤼시앵
Jamel Debbouze....Lucien

1.

아멜리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는 흥미로운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작품 모두 괴기스럽기까지 한 우연의 일치와 그 밑에 숨겨진 사물과 사람들의 연관성을 그려내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것이죠.

주네-카로 시절의 영화들이 가진 어두침침한 느낌만 기억하고 있었던 관객들은 [아멜리에]의 밝고 화사한 느낌에 당황했지만, 이 영화는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를 공동 감독한 남자가 차기작으로 낼 만한 작품입니다. 주네는 지금까지 기능적인 역할만 하고 있던 운명(또는 세렌디피티나 싱크로니시티)을 끄집어내 무대 한가운데에 내세웠습니다. [아멜리 풀랑의 환상적인 운명]이라는 제목만 봐도 그렇잖아요.

2.

영화는 아멜리 풀랑이라는 파리의 웨이트리스를 따라갑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은 날 밤, 아멜리는 자기가 몇 년 째 살고 있던 아파트 화장실에 숨겨져 있던 장난감 상자를 발견합니다. 지금은 중년이 된 원래 주인에게 상자를 돌려준 아멜리는 이제 주변 사람들의 인생도 같은 방식으로 개량하기로 마음먹죠. 한동안 작은 기적을 일으키며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어놓던 아멜리는 어느 날 남들이 버린 포토마톤 사진들을 수집하는 니노라는 청년을 만납니다. 아멜리는 사방에 단서를 뿌리며 니노를 유인하지만 정작 자신의 운명은 쉽게 바꾸질 못하죠.

아멜리는 운명의 여신을 파리의 웨이트리스로 변형시킨 듯한 인물입니다. 언제나 눈을 똥그랗게 뜨고 세상을 관찰하며 자기 자신만의 독자적인 판단에 따라 주변 사람들의 운명을 좌지우지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면에 등장하는 법이 없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어떻게 보면 주네는 [아멜리에]를 통해 자기 영화의 매커니즘을 슬쩍 보여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네와 카로의 영화들을 보는 동안, 괴팍한 운명의 여신이 사사건건 간섭하며 이야기를 조종한다는 느낌을 받아보신 적 없나요? [델리카트슨]과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에서도 꼭 아멜리처럼 생긴 운명의 여신이 주인공들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분주하게 뛰어다녔을 것 같지 않아요? 우리가 특정한 우연의 일치를 신기하게 생각하는 건 그런 우연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존재의 의지가 개입되었다고 믿을 때니까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니노를 만난 뒤 아멜리가 겪는 모험을 통해 주네는 다음 단계로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뒤에서만 뛰어다니며 혼자만의 삶을 살아왔던 아멜리에게 그녀만의 삶을 마련해준 것이죠. 저한테는 일종의 감사선물처럼 보인답니다.

3.

[아멜리에]는 무척 예쁜 영화입니다. 걸작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귀여운 영화인지도 모르죠. 주네는 우리가 프랑스적이라고 생각하는 문화적 이미지를 그림엽서처럼 예쁘게 장식해서 관객들에게 선사합니다. 섹스 숍이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와 같은 몇몇 단서들을 빼면 연도도 짐작하기 어려운 아멜리의 세계는 마치 자크 타티의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복고적이고 예스럽습니다.

몇몇 비평가들이 불평했던 것도 그것이었어요. 확실히 어느 사이에 다인종 다민족 국가가 된 현대 프랑스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와는 거리가 멀죠. 그러나 [아멜리에]가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처럼 매서운 사회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건 좀 어리석지 않을까요? 존재하는 모든 영화가 꼭 현실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누가 그러던가요? 그리고 아무리 다민족 사회가 되었다고 해서 아멜리가 사는 동네와 같은 곳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겠죠? 아멜리가 그런 동네에 산다면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부러 동네밖으로 나갈 필요도 없는 거겠고요.

[아멜리에]의 소박한 동화적 비전에 비난을 제기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불편합니다. [아멜리에]가 2시간 동안 제공해주는 행복한 황홀경을 생각해보면 칸느나 자국 평단의 따돌림은 지식인들의 스노비즘처럼 느껴집니다.

4.

[아멜리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드리 토투를 연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마의 휴일]이 오드리 헵번의 영화인 것 만큼이나 [아멜리에]는 오드리 토투의 영화인 걸요. [아멜리에]라는 영화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아멜리를 연기한 오드리 토투의 그 독특한 표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나라 광고 포스터에서는 '내가 평범해 보이나요?'라는 카피를 써 붙였는데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카피도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드리 토투만큼 독특한 외모의 배우를 접하기가 그렇게 쉽겠어요?

토투의 연기는 무척 직설적이고 단순합니다. 그런 단순함이 어린아이처럼 결백한 그 사람의 외모나 아멜리라는 캐릭터와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죠. 결코 말하는 것처럼 쉬운 연기가 아닙니다. 앞으로 그처럼 재미있는 연기는 쉽게 보지 못할 겁니다. 심지어 토투의 차기작에서도 볼 가능성은 많지 않을 거예요.

마티유 카소비츠 역시 상당히 귀엽습니다. 그가 감독한 영화에서 느낄 수 있는 어둡고 폭력적인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오히려 신기할 지경이지요. 그런데도 그가 보여주는 연기는 전혀 가식없이 자연스러워서, 이 친구에 대해 제가 너무 모르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토투와 카소비츠는 매우 주네적인 조연 배우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모두 괜찮은 배우들이고 연기도 훌륭하지만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주네가 창고에 쌓아둔 연기 도구처럼 보입니다. 주네다운 캐스팅이 그만큼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01/10/23)

DJUNA

기타등등

아멜리의 음모를 보고 있노라니 자꾸 [콜드 콤포트 팜]의 플로라가 생각나더군요. 아멜리가 니노를 유인하는 장면은 [둥지]와 비슷하게 느껴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