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폴 와이츠 Paul Weitz
크리스 와이츠 Chris Weitz

주연
제이슨 빅스....짐
Jason Biggs....Jim
크리스 클라인....크리스 "오즈" 오즈트라이처
Chris Klein....Chris "Oz" Ostreicher
토머스 이언 니콜라스....케빈
Thomas Ian Nicholas....Kevin
에디 케이 토머스....핀치
Eddie Kaye Thomas....Finch
유진 레비....짐의 아빠
Eugene Levy....Jim's dad
숀 윌리엄 스코트....스티플러
Seann William Scott....Stifler
미나 수바리....헤더
Mena Suvari....Heather
나타샤 리온....제시카
Natasha Lyonne....Jessica
타라 리드....빅토리아 '비키'
Tara Reid....Victoria 'Vicky'
앨리슨 해니건....미셸
Alyson Hannigan....Michelle
섀넌 엘리자베스....나디아
Shannon Elizabeth....Nadia
제니퍼 쿨리지....스티플러의 엄마
Jennifer Coolidge....Stifler's Mom
크리스 오웬....셔먼
Chris Owen....Sherman

1.

[아메리칸 파이]는 올해 여름 시즌에 헐리웃에 나온 또하나의 '소문과 다른' 영화입니다. 영화제와 시사회를 돌며 이 영화가 뿌린 소문에 따르면 [아메리칸 파이]는 무척이나 자극적이고 저질스러운 영화입니다. 정액과 설사, 자위 행위가 농담의 주요 반찬이라니 말은 다 한 것 같아 보이는군요.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튀어나온 영화는 무척이나 얌전하고 '건전한' 작품이었습니다. 네, 앞에 언급한 질펀한 소재들이 등장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런 소재들이 나오는 코미디라고 '건전'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2.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맞은 네 명의 남자 고등학생들입니다. 아직까지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요새 미국 청소년들의 성적 성숙도를 생각하면 모두 꽤 늦은 편이지요?) 이 친구들은 졸업 무도회날을 마감으로 잡고 그 동안 어떻게든 여자들과 섹스하기로 맹세합니다.

이 영화의 주 액션은 이 필사적인 틴에이저들의 발버둥에서 출발합니다. 그네들은 정말 안하는 게 없습니다. 인터넷으로 여자 친구 자위 행위 장면을 중계하고, 도서관에 몰래 숨겨진 '성전'을 탐독하고, 네, 그리고 애플 파이에 대고 자위 행위를 하고요.

80년대에 유행했던 틴에이저 섹스 코미디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아마도 감독인 폴 와이츠와 각본가 애덤 허츠가 원했던 것도 그런 영화들의 90년대식 업데이트였을 겁니다. 억지로 제목을 붙이자면 '메리' 식 업데이트죠. 금기시 되어 왔던 추잡한 소재들을 일부러 턱 걸어놓고 태평스러운 척하는 그 위악적인 태도를 보세요.

그러나 정작 이 영화가 기둥으로 삼는 캐릭터와 스토리는 온화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긴 졸업 때까지 총각 딱지를 떼지 못한 미국 학생들이 주인공이라니 온화한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메리칸 파이]는 섹스에 몰입하는 틴에이저들에 대한 이야기지만 (그 땐 누군들 안 그러겠습니까) 정작 영화의 절반은 고전적인 학창 로맨스물의 스토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특히 여자 꼬시러 합창부에 들어왔다가 합창단 리더 헤더와 사랑에 빠지는 오즈의 이야기는 50년대 틴에이저 물의 가장 진부한 클리셰를 그대로 따와 90년대로 날짜만 바꾼 것 같습니다 (물론 이 뻣뻣한 장르 클리셰가 진지한 척하며 굴러다니는 걸 보는 건 꽤 재미있고 영화도 바로 그걸 의도하고 있습니다만.)

케빈과 비키의 이야기는 보다 진지합니다. 그렇게 깊이 있는 건 아니고 가끔 '성전'과 오럴 섹스의 코미디가 등장하긴 하지만, 흘러 넘치는 호르몬에 정신을 못차리는 동안에도, 그네들은 적어도 자기네 관계의 한계를 알고 있고 그걸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성과 관련된 노골적인 농담들은 핀치와 (특히) 짐의 몫입니다. 파이에 대고 자위행위를 하고 인터넷으로 중계를 하고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친구들은 대부분 이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만들어내는 노골적인 농담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섹스는 자연스럽고 장식없이, 성실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절정인 섹스 장면들에 이르면 오히려 농담들은 줄어듭니다. 졸업 파티의 섹스가 진지한 관계의 발전 또는 종말의 의미를 지니는 케빈과 비키, 오즈와 헤더 커플은 예쁘기까지 합니다. 짐과 핀치가 엉겁결에 파트너를 건져 막판 코미디를 연출하지 않았다면 영화는 거의 품위있는 작품이 되었겠지요.

이런 영화에는 늘 당연하다는 듯이 끼어들었던 섹시즘의 그늘도 상당히 줄어들었습니다. 대부분은 꽤 성실하게 묘사가 된 여성 캐릭터들의 존재감들 때문입니다. 물론 플레이보이 지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체코 교환 학생 (조상구의 안이한 번역은 꽤 중요한 이 정보를 완전히 잘라버립니다) 나디아가 등장할 때면 사정은 꽤 달라지긴 합니다만.

심지어 이 영화는 주인공들 중 한 명의 아버지를 드라마 깊숙이 개입시키기까지 합니다! 유진 레비가 연기한 짐의 아버지가 그 사람입니다. 아들에게 포르노 잡지를 사주고 다양한 충고를 해주는, 너무 사려 깊으려고 노력해서 오히려 귀찮기까지 한 이 캐릭터는 재미있으면서도 참신한 인물입니다.

어쩌다 이렇게 건전한 영화가 나왔을까요? 역시 [메리에게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영향이 아닌가 싶어요. [메리...]역시 자극적인 농담들을 지워버리면 무척 소박하고 따뜻한 러브 스토리였잖아요. [아메리칸 파이]도 같은 걸 하고 있습니다. 거의 50년대 풍일 정도로 얌전한 이야기에 90년대식 천박한 농담을 입히는 것 말이에요. 이 영화에서 정말로 재미있는 것은 이 이질적인 두 요소의 충돌입니다.

아직 이런 영화들이 많지 않아서, [아메리칸 파이]는, 그렇게 신선하지 못한 소재와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무척 참신해보입니다. 이런 참신함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겠지만요.

3.

이 영화의 배우들 명단 중 그렇게 큰 이름들은 없습니다. 특히 남자 배우들은 초반에 얼굴을 기억하기가 상당히 힘들 지경입니다. 하지만 괜찮아요. 그럭저럭 잘 다듬어져 있는 캐릭터 때문에 영화가 끝날 때 쯤엔 얼굴이 남으니까요.

어느 정도 이름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버피]의 윌로우인 앨리스 해니건이 윌로우식 맹한 코미디를 선보이고, 제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배우인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와 [비벌리 힐즈의 아우성]의 주인공인 나타샤 리온 역시 그 사람 특유의 엉뚱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베테랑 유진 레비의 귀찮은 아버지 역도 좋고요.

이런 종류의 코미디엔 필수적인(?) 야한 눈요깃거리는 섀넌 엘리자베스가 제공합니다. 아, 그러고보니 생각나는데, 이 사람의 오피셜 홈페이지가 어딘가에 있더군요. 영화에서처럼 자위 행위 생중계 따위는 하지 않겠지만요.

4.

[아메리칸 파이]는 결코 기념비적인 걸작은 아닙니다. 농담은 종종 도가 지나칠 정도로 더러워지고요. 하지만 섹스 코미디로서 충분히 자기 일을 해내고 있고, 냉소섞이지 않은 성실한 유머와 꽤 어필하는 캐릭터들 때문에 영화관에서 나오는 기분은 무척 좋습니다. (99/10/07)

DJUNA

기타등등

셔먼 역의 크리스 오웬은 어쩜 그렇게 [다리아]의 업척과 닮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