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올리버 파커 Oliver Parker

주연
케이트 블란쳇....거트루드
Cate Blanchett....Gertrud
미니 드라이버....메이블
Minnie Driver....Mabel
루퍼트 에버레트....아서 고링
Rupert Everett....Arthur Goring
줄리안 무어....치블리 부인
Julianne Moore....Mrs. Cheveley
제레미 노덤....로버트 칠튼 경
Jeremy Northam....Sir Robert Chiltern
존 우드....캐버셤 경
John Wood....Lord Caversham
피터 본....핍스
Peter Vaughan....Phipps

1.

로버트 칠튼 경은 런던 사교계에서 '이상적인 남편'으로 여겨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정치가로서 경력은 완벽하고 아내 거트루드에게 헌신적이며 재산도 꽤 되지요.

그러나 그에게는 철없던 젊은 날 저질렀던 음습한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명 높은 치블리 부인이 그 작은 비밀을 미끼로 그를 협박하자, 칠튼의 완벽한 삶은 박살날 위기에 처합니다.

해결책은? 칠튼은 책임감 없는 쾌락주의자로 악명 높은 친구 아서 고링 경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고링은 칠튼을 도우려 뛰지만 그 역시 사건과 관련된 세 여자 모두에 말려들어 정신 사나운 며칠 간을 보낼 수밖에 없죠.

2.

오스카 와일드의 [이상적인 남편]은 대충 그의 [레이디 윈더미어의 부채]와 [착실함의 중요성]의 중간 쯤 위치한 작품입니다. [레이디 윈더미어의 부채]처럼 스캔들과 파탄 일보직전의 가정을 다룬 멜로드라마이기도 하고 [착실함의 중요성]처럼 오해와 음모가 바글거리는 코미디이기도 하죠. 분위기를 감 잡으셨을 거예요. 예절바른 태도와 천박하고 원초적인 동기가 교묘하게 결합된 설정 속에서 주인공들이 우왕좌왕하는 동안 와일드 특유의 기지 넘치는 대사들이 와르르 쏟아지는 그런 작품 말입니다. 정말 재미있는 희곡입니다.

그런데 왜 와일드의 희곡은 성공적인 각색물들이 그렇게 적은 걸까요? 그의 명성을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습니까? [착실함의 중요성]이나 [이상적인 남편] 모두 여러 차례 각색된 작품이지만 영화사에 길이남는 작품들은 없습니다.

그건 원래부터 희곡이란 영화화하기 어려운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모양이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희곡 각색이 아주 수월하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소설이 훨씬 각색하기 쉽습니다. 희곡은 대부분 제한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대로 영화화하면 아주 갑갑하고 수다스러운 작품이 되고 맙니다.

게다가 대사 쓰기도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만약 여러분이 디킨즈의 소설을 각색한다면 별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멋대로 대사들을 다 고쳐쓸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을 영화화하는데 와일드의 대사를 고쳐 쓴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의 대사가 빠진다면 그 각색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와일드의 연극을 보러 가는 진짜 이유는 결국 그의 역설로 가득 찬 대사들인데 말입니다.

[이상적인 남편]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칠튼과 고링의 집 안에서만 일어납니다. 특히 제3막은 전형적인 '문 닫히는 소리내는 코미디'죠.

파커는 당연히 이 갇힌 공간을 뚫었습니다. 여전히 캐릭터들은 와일드의 대사들을 늘어놓지만, 무대는 극장, 공원, 하원 의사당 등으로 넓어졌습니다. 원작의 사건은 이틀만에 해결되지만 영화는 훨씬 더 긴 시간을 잡아먹는 것 같고요.

결과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아주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원작의 꽉 짜여진 느낌이 상당히 헐거워졌어요. 몇몇 장면은 연극적인 요소의 삭제 때문에 특유의 긴장감도 잃어버렸고요. 특히 3막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고정된 무대에서야 제대로 힘을 발휘하는 종류거든요.

다리를 놓기 위해 파커가 삽입한 장면들도 아주 좋지는 않습니다. 칠튼의 하원 연설 장면을 보세요. 원작에서 이 장면은 신문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파커는 칠튼의 대사와 고링이 벌이는 소동 상당수를 새로 써야 했습니다. 결과는? 와일드의 발랄한 경박함과 연설의 심각함이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결과는 어색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래도 파커는 아주 좋은 배우들을 거느리고 있고, 그들에게서 가능성을 완벽하게 뽑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과 미니 드라이버는 거트루드와 메이블 역으로 처음 떠올릴만한 배우들은 아니지만, 파커는 그들을 멋지게 캐릭터 안에 밀어넣고 있습니다. 줄리안 무어나 제레미 노덤은 원래부터 참 잘 맞는 캐릭터고요.

가장 완벽하게 영화에 맞는 사람은 역시 고링 역의 루퍼트 에버레트입니다. 이 사람 특유의 우아함과 뺀질거림이 결합된 결과는 너무 그럴싸해서, 그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키들키들 웃음이 나옵니다. 최근에 그가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잘 어울리는 역이었어요. (00/12/13)

DJUNA

기타등등

와일드 팬들이라면 이 영화에 숨어있는 몇몇 농담들로 꽤 즐거웠을 겁니다. 영화 중간에 상영되는 연극은 [착실함의 중요성]입니다. 초연인지 와일드 자신이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고요. 중간에 나오는 이름없는 단역 번버리(감독인 올리버 파커가 직접 연기했습니다)는 [착실함의 중요성]에 나오는 앨저넌의 가짜 친구입니다. 첫번째 파티 장면에는 윈더미어 경이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나이를 따져보면 [레이디 윈더미어의 부채]에 나오는 윈더미어 경이 아니라 [아서 새빌 경의 범죄]에 나오는 레이디 윈더미어의 남편 같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