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카롤리 마크 Károly Makk

주연
야드비가 얀코프스카-키에슬라크....에바
Jadwiga Jankowska-Cieslak....Eva
그라지나 자폴로프스카....리비아
Grazyna Szapolowska....Livia
페테르 안도라이....돈지
Péter Andorai....Donzie
요세프 크로네르....에르도스
Jozef Króner....Erdos
가보르 레비츠키....피알라
Gábor Reviczky....Fiala

1.

[또 다른 길]의 시대 배경은 헝가리의 자유화 물결이 실패로 끝났던 50년대 말 또는 60년대 초입니다. 대충 계산으로는 58년이 맞는 것 같은데, '50년대'를 과거로 언급하는 부분이 나오니 그보다 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건 헝가리 사람들한테 결코 편한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서서히 다시 자기 궤도로 돌아오고 있었지만 희망은 사라졌고 자존심은 구겨졌으며 무기력과 우울증이 판치고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에바도 예외는 아닙니다. 필화로 쫓겨났다가 2년만에 간신히 신문사에 복직하기는 했는데, 도대체 타협이란 걸 모르는 이 정직한 저널리스트가 살아남기엔 세상이 너무 더러웠습니다. 에바의 유일한 무기는 냉소지만, 솔직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녀는 그것도 그렇게 잘 하지 못합니다. 정말 세상을 힘들게 사는 사람이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에바의 연애담도 그렇게 예쁘게 흘러가지는 않습니다. 에바는 사무실을 같이 쓰는 리비아와 사랑에 빠지지만, 50년대 말 헝가리는 커밍 아웃한 동성애자한테도 별로 좋은 곳은 아니었죠. 세상은 양쪽에서 에바를 덮쳐누르고 에바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오로지 하나 뿐이었습니다...

2.

[또 다른 길]은 기네스적인 의미에서 기념비적인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동구권 유럽에서 제작된 최초의 동성애 영화입니다. 80년대 초반의 공산국가에서는 굉장히 대담한 시도였을 겁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에르즈베트 갈고치가 쓴 [Torvenyen Belul]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입니다. 과연 에바와 리비아 어느 쪽으로 자서전적인지는 모르겠어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너무 어둡고 결말도 비극적이어서 온전한 정신으로 소설을 쓸만한 생존자가 나왔을 것 같지 않습니다.

민족 스테레오 타입에 매달리기는 싫지만, [또 다른 길]은 정말 헝가리식으로 우울한 영화입니다. 술집 피아니스트가 되풀이해서 치는 [우울한 일요일] 만큼이나 마자르식 멜랑콜리가 넘쳐 흐릅니다. 아무래도 문화적 전통인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울증을 술 대신 마십니다. 모두 어떻게 하면 자신과 상대방을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만약에 에바나 리비아가 조금이라도 앞일을 계산하고 미래의 동반자처럼 굴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겠죠. 하지만 그들은 작정하고 함정에 빠집니다. 결과는 당연히 치명적이고요.

하긴 그건 당시 사람들의 절망감이 그렇게 심했다는 말이겠지요. [또 다른 길]의 동성애는 동성애 자체로보다는 정치적인 은유로 더 잘 먹힙니다. 리비아의 장교 남편까지 이야기에 끌어들인다면 더 그럴싸한 모양이 만들어지죠. 이 영화의 폭력적 결말을 56년 사태의 비극적인 결말과 연결시키지 않고 영화를 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3.

[또 다른 길]은 매우 거친 영화입니다. 제가 본 비디오 버전의 화질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어서 그런 거친 인상이 더 강해졌는지도 모르지만, 그걸 고려해도 할리우드 영화처럼 '잘'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죠. 스토리의 흐름은 가끔 방향을 잃고 언론 탄압과 동성애라는 두 이야기 축은 종종 따로 놉니다. 러브 스토리로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에바와 리비아의 심리 변화가 충분히 묘사되지 않기 때문에 종종 관객들은 그들을 이해하는 데 애를 먹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영화가 주는 인상은 여전히 강하군요. 그건 호연을 보여준 두 배우들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영화가 품고 있는 어두컴컴한 정서가 지독하게 강해서일 겁니다. (00/05/27)

DJUNA

기타등등

[또 다른 길]은 82년 칸느에서 심사위원상과 여우주연상(야드비가 얀코프스카-키에슬라크)을 수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