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임필성

주연
송강호....최도형
유지태....김민재
김경익....양근찬
박희순....이영민
윤제문....김성훈
최덕문....서재경
강혜정....유진

도형과 민재

[남극일기]의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현실 속의 지리적 공간인 남극대륙에서 시작됩니다. 여섯 명으로 구성된 한국 남극탐험대원들이 남위 82'08분 동경 54'58분에 위치한 도달불능점으로 떠납니다. 남극점보다 훨씬 정복하기 힘든 곳이지만 그래도 이들의 탐험은 아문센이나 스콧의 도전처럼 외롭지는 않습니다. 남극은 여전히 험악한 미개척지지만, 이들은 여전히 인터넷과 무선통신, ELT로 문명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구조신호를 보내 비행기나 헬기를 불러올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영화 초반부에 80년 묵은 영국 남극탐험대의 일기가 발견된 뒤로, 이들은 서서히 현실세계의 남극에서 벗어나 에드가 앨런 포와 H.P. 러브크래프트의 영역으로 들어갑니다. 통신은 두절되고, 대원들은 걸릴 수 없는 병에 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람들이 실종되고... 그러는 동안 대장 최도형은 모비 딕을 추적하는 에이허브 선장처럼 서서히 자기 광기의 희생자가 됩니다.

[남극일기]는 묵직한 영화입니다. 야심도 크고 주제도 크며 드라마도 큽니다. 영화는 그 무게만으로도 어느 정도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합니다. 영화 내내 대원들이 겪는 고통과 두려움이 허연 화면에서 줄줄 흘러나와요. [남극일기]는 춥고 고통스러운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영화를 보는 동안 무감각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영화는 상당한 점수를 땄습니다.

[남극일기]는 보이는 것 이상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분명한 장르물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가 다루는 주제와 소재는 일반적인 탐험물이나 호러물보다 훨씬 넓습니다. 물론 작정한다면 이 여섯 명의 한국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한국 가부장제도나 현대사의 은유를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니 여러분이 직접해보시길.

하지만 [남극일기]는 지적할 단점이 장점보다 많은 영화입니다. 들고 있는 덩어리는 크지만 정작 그 덩어리를 다루는 테크닉은 그걸 커버할 정도는 아니거든요.

가장 쉽게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은 이 영화의 호러 장치들입니다. [남극일기]는 관습적인 호러물이 아니기 때문에 꼭 작정하고 무서울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런 장치들이 쓰이는 장면에서 호러 장르의 기형적인 미학은 구현되어야 했죠. 하지만 이 영화에서 그 장치들은 하나도 먹히지 않습니다. 무섭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력도 떨어져요. 대부분 그냥 실패한 깜짝쇼처럼 보입니다. 아쉬워요. 다루는 아이디어들에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영화는 초현실주의를 다루는 데에도 익숙하지 못합니다. 초현실적인 재료들과 현실적인 탐험 이야기의 요소들은 적절하게 배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개별 에피소드마다 뚝뚝 끊겨져 있기 때문에 유려하게 흐르지 못합니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충분한 꿈의 논리를 확보하고 있지 못합니다.

[남극일기]는 여전히 손아귀 안에 많은 걸 움켜쥐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임필성이 조금 더 경험을 쌓은 뒤 이 기획에 도전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드는군요. 이 영화의 탐사대원들이 남극 안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 역시 이 황량한 이야기 안에서 통제력을 잃고 방황하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05/05/10)

DJUNA

기타등등

이 사람들은 왜 남극일기를 그렇게 막 다루는 걸까요? 아문젠과 스코트가 1911년에 남극점을 정복했으니 1922년에 실종된 남극탐사대는 남극 역사의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었을 겁니다. 인터넷으로 조금만 검색해도 금방 알아낼 수 있을 정도겠죠. 그 사람들이 쓴 80년 묵은 일기라면 단순히 이베이에서 비싸게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중요한 사료란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