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우디 앨런 Woody Allen

주연
제이슨 빅스....제리 포크
Jason Biggs....Jerry Falk
크리스티나 리치....아만다
Christina Ricci....Amanda
우디 앨런....데이빗 도벨
Woody Allen....David Dobel
스토커드 채닝....폴라
Stockard Channing....Paula
대니 드비토....하비
Danny DeVito....Harvey
케이디 스트릭랜드....브룩
KaDee Strickland....Brooke
지미 팔론....밥
Jimmy Fallon....Bob
다이애나 크랠....자기 자신
Diana Krall....Herself
윌리엄 힐....정신분석의
William Hill....Psychiatrist
데이빗 콘라드....리드 박사
David Conrad....Dr. Reed
에리카 리어슨....코니
Erica Leerhsen....Connie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리와 도벨

드림웍스에서 [애니씽 엘스]의 예고편을 만들었을 때 그들은 조금 엉뚱한 장난을 쳤습니다. 주연배우인 제이슨 빅스와 크리스티나 리치만 전면에 내세우고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감독 겸 주연배우 우디 앨런의 존재를 거의 지워버렸지요. 처음엔 빅스와 리치가 나오는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은 마지막 크레딧에서 앨런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라게 됩니다.

왜 그랬던 걸까요? 영화광들을 위한 깜짝쇼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빅스와 리치의 이름을 내세워 일반 관객들을 끌어들이려는 음모였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리고 그건 아마 앨런의 음모이기도 했을 거예요. 아무리 앨런의 영화들에 자기반영적인 측면이 강해도 언제나 감독의 나이만을 따라갈 수는 없죠. 앨런 역시 보다 넓은 관객층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을 겁니다. 빅스와 리치의 캐스팅은 그를 위한 도구일 수 있겠죠.

젊은 주연배우들을 잠시 잊는다면, [애니씽 엘스]의 이야기는 앨런의 기존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빅스가 연기한 제리는 20년 전만 해도 앨런 자신이 연기했을 법한 캐릭터입니다. 정신분석을 받는 예민한 유태계 코미디언으로 죽음에 집착하고 있고 여자관계는 엉망이죠. 제리는 리치가 연기하는 아만다라는 여자친구와 동거 중인데, 아만다는 예쁘고 매력적이지만 구제불능일 정도로 이기적이고 성질도 고약합니다. 여기에 우디 앨런이 직접 연기한 데이빗 도벨이라는 인물이 끼여듭니다. 코미디 대본을 쓰는 공립학교 교사인 도벨은 인생을 망치려고 하는 제리에게 괴팍하지만 쓸만한 조언을 해줍니다.

이 영화에서 [맨하탄]이나 [애니 홀] 같은 중기 걸작들의 깊이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제리와 아만다는 아이작 데이비스나 메리 윌키와 같은 캐릭터들에서 차원을 하나 뺀 버전 같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건 캐릭터들 자체의 개성과 드라마가 아니라 단순화된 문제와 해결책입니다. 극단적으로 단순화한다면 [애니씽 엘스]는 교훈극입니다. 영화가 주는 교훈은 살면서 맺고 끊는 게 분명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정이 깊고 의리가 징하다고 해도요.

영화는 시간여행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도벨은 제리의 나이 든 버전이나 다름없습니다. 제리처럼 신경질적인 유태인 뉴요커인 그는 제리가 거치거나 앞으로 거칠게 뻔한 실수들을 모두 직접 겪었습니다. 그 때문에 도벨의 행동은 30년 전의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실수를 막으려는 시간여행자의 처절한 시도처럼 보이죠. 아니, 정말 미래에서 온 제리일지도 몰라요. 그는 지나가는 말투로 시공연속체와 양자역학에 대해 언급하고 제리의 문제가 해결되자마자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리니까요.

도벨의 정체가 무엇이건 이 영화는 제리와 아만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제리와 도벨의 이야기입니다. 나이 든 우디 앨런이 곧 우디 앨런이 될 젊은이에게 제발 자기처럼 되지 말라고 하는 거죠.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처럼 되되, 자기가 저지른 실수들까지 되풀이하지는 말라고 하는 겁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이야기지만 제2의 [맨하탄]을 만들만한 소재는 아닙니다. 제리와 도벨의 관계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편이지만 결국 비슷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이들의 관계는 어쩔 수 없는 드라마의 한계 속에 갇혀버리고 말아요. 제리와 아만다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 아만다는 인간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제리에게 문제를 안겨주기 위해 창조된 도구이니 말이죠. 여전히 앨런 풍의 이야기지만 앨런은 이들의 이야기에 온 몸을 담그는 대신 어리석은 젊은이들을 바라보는 노인네처럼 외부에서 방관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여전히 우디 앨런식의 매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자막이 반도 따라잡지 못하는 유려하고 반짝거리는 대사들의 상호작용과 근사하게 캐스팅된 배우들 같은 것 말입니다. 단지 새로움이나 깊이가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전성기를 넘긴 시트콤의 에피소드처럼 그냥 유려하고 친숙한 느낌만 주기도 해요. 앨런의 팬들이라면 이걸 단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겠지만요. (05/01/24)

DJUNA

기타등등

화면비율이 2.35:1인 두 번째 앨런 영화입니다. 첫번째 영화는 [맨하탄]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