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상진

주연
이성재....노마크
유오성....무대포
강성진....딴따라
유지태....뻬인트
박영규....주유소 사장
정준....건빵
이정호....샌님
이요원....깔치

1.

네 명의 날건달들이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다 말고 예전에 한 번 턴 적 있던 주유소를 털러갑니다. 예전에는 돈만 들고 나오면 끝났던 주유소 털이였지만 돈을 숨겨 놓고 내놓지 않으려는 주유소 사장 때문에 점유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그러는 동안 온갖 사람들이 주유소에 들어와 소동은 점점 커지는데...

2.

[주유소 습격 사건]의 모든 액션은 한밤중의 주유소라는 단일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진행됩니다. 거의 삼일치를 지키는 고전극을 연상시킬 정도지요.

이런 이야기는 만들기 쉽지 않습니다. 단일한 시공간이라는 제약은 스토리와 캐릭터의 발전을 시작부터 제약하니까요. 이런 모양으로 영화를 꾸려내려면 상당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단 만들어 놓으면 결과는 대부분 좋습니다. 압축된 모양 때문에 쉽게 늘어지지 않고 제한된 구성에 신경 쓰는 동안 플롯 역시 훨씬 잘 짜여지기 마련이니까요.

[주유소 습격 사건]도 예외는 아닙니다. 각본가들은 '주유소 습격'을 극복해야 할 대상 쯤으로 생각하고 있겠지만, 사실 이 영화는 이 엄격한 소재에서 여러 덕을 보고 있습니다.

그 결과는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꽤 긴 시간을 끄는 동안 다양한 액션과 캐릭터들이 얽혀드는 영화이면서 이렇게 다듬어진 모양으로 태어난 것도 이 때문이거든요. 오히려 공간의 제한 때문에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무리없이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3.

[주유소 습격 사건]은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전 영화를 보는 동안 꽤 많이 웃었고 별로 지루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꽤 잘 만든 영화이기도 합니다. 상당히 많은 배우들이 섞여 있는 영화인데도 전체적인 배우질은 좋습니다. 종종 지나치게 흉내낸 듯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빠른 편집과 꽤 재치있는 촬영도 있습니다. 아까 말했지만 각본도 비교적 우수하고요.

그런데 전 이 영화를 별로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이 영화엔 뭔가 빠진 것 같습니다. 특히 영화가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는 '코믹 통쾌'의 측면에서요.

수많은 자극적인 농담이 있는데도 영화는 충분히 '코믹'하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유머는 억지로 몰고가는 듯한 작위성 때문에 늘 중간에서 주저앉고 맙니다.

설정의 작위성에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극도로 작위적인 설정으로도 훌륭한 코미디가 나올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전 [주유소 습격 사건]이 거부감이 들 정도로 작위적인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그 유머를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방식입니다. [주유소 습격 사건]이 가장 약한 부분이 바로 여기입니다.

도입부부터 징조가 보입니다. 갑작스럽게 튀어 나온 자막은 "왜 주유소를 터는가?"라고 묻습니다. 답은? "그냥."

그네들이 정말 '그냥' 주유소를 털었다면, 영화는 그 '그냥'이라는 답을 보여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는 거짓말이 탄로날까봐 허둥대는 서툰 사기꾼처럼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가짜 답을 내뱉습니다.

이 영화의 많은 유머가 이런 가짜 답과 같습니다. 그 때문에 상당한 자극적인 농담들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들이 흉내처럼 보이는 거죠.

주유소 사인방의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에 이르면 코미디는 무너져 신파로 변질됩니다. 각본의 가장 큰 흠이지요. 코미디는 망가지고 드라마도 발생하지 않으니까요. 게다가 '그냥'이라는 가짜 답의 허세까지 폭로하고 말았어요.

영화는 충분히 '통쾌'하지도 않습니다. 역시 영화가 그렇게 자신의 자유를 충분히 확보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지요.

영화는 '그냥'을 내세운 영화치고는 상당히 심각하게 사회 비판을 깔고 있습니다. 이 사기꾼 같은 영화는 주유소를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 잡고 있습니다. 이걸 알아내려고 꼭 머리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모든 게 노골적일 정도로 분명하니까요.

사회비판 자체가 '코믹'이나 '통쾌'에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좋은 무기 중 하나지요.

그러나 영화는 '통쾌'하지 않습니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엔 이 모든 사건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고 뻔합니다.

깡패들이 깽판을 치는 영화로 카타르시스를 얻으려면 관객들이 보다 엄격하게 짜여지고 상식과 정도가 통하는 사회에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그렇습니까? 우리나라는 다양한 깡패집단과 윤리로 구성되어 있는 떼거리 깡패국가이고 우리의 깡패성은 결코 은밀하지 않습니다.

코미디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변형입니다. 하지만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 발생하는 액션들은 '희화'된 것으로 보기엔 너무 실제 세계와 닮아 있습니다. 코미디가 될 수가 없는 것이죠.

그 위에 깡패 넷을 올린다고 뭐 달라질까? 역시 통쾌해지지는 않습니다. 같은 노래를 한 옥타브 높여서 부르는 것과 다를 게 없죠. 게다가 우린 이런 일도 이미 여러 차례 겪었어요. 보면서 생각해봤는데, 박정희가 살아서 이 영화를 보았으면 남몰래 참 좋아했을 겁니다.

4.

[주유소 습격 사건]은 잘 만든 영화입니다. 하지만 마땅히 올라야 할 어떤 단계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그 주변만 빙빙 도는군요. 아무래도 이런 영화를 만들기엔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너무 평범했던 모양입니다. (99/10/19)

DJUNA

기타등등

보면서 가끔 아찔했습니다. 주유소는 그런 장난을 쳐도 될만큼 안전한 곳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