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임스 카메론 James Cameron

주연
샘 워딩턴....제이크 설리
Sam Worthington....Jake Sully
조이 살다나....네이티리
Zoe Saldana....Neytiri
시고니 위버....그레이스
Sigourney Weaver....Grace
스티븐 랭....마일즈 쿼리치 대령
Stephen Lang....Colonel Miles Quaritch
미셸 로드리게스....트루지 샤콘
Michelle Rodriguez....Trudy Chacon
조바니 리비시....파커 셀프리지
Giovanni Ribisi....Parker Selfridge
조엘 무어....노엄 스펠먼
Joel Moore....Norm Spellman
CCH 파운더....모아트
CCH Pounder....Moat
웨스 스터디....에이투칸
Wes Studi....Eytukan
라스 알론조....쯔테이
Laz Alonso....Tsu'tey

제이크와 네이티리

[아바타]의 무대가 되는 곳은 판도라라는 외계 행성, 보다 정확히 말하면 거대한 목성형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입니다. 판도라가 속해 있는 태양계가 어디에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주인공 제이크 설리의 내레이션에 따르면 지구에서 판도라에 도착할 때까지 우주선 시간으로 5년이 조금 더 걸리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5광년 안쪽이라면 지나치게 가깝고 가감속에 드는 시간도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5년은 아광속 비행 중 압축된 우주선내 시간일 가능성이 커요. 여기에 우주여행의 경제성을 고려해보면 아마 판도라는 10광년에서 20광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야 이치에 맞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미 한 무리의 지구인들이 판도라에 와 있습니다. 이들은 세 부류로 나뉘어요. 첫 번째는 그레이스 어거스틴이라는 과학자가 리더로 있는 과학자 집단으로 이들은 판도라의 생태계에 매료되어 있고 원주민과 평화로운 공존을 원합니다. 두 번째는 탐욕스러운 자본가 집단으로 [에일리언 2]에 나오는 회사 사람들을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들은 판도라에 묻혀 있는 언옵타늄이라는 정체불명의 광물을 파서 지구로 가져가면 돈을 잔뜩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 광물을 무엇에 쓸 생각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광물의 자기장의 힘 때문에 공중에 둥둥 떠 있는 산들이 있다는 설정입니다만. 세 번째 부류는 쿼리치 대령이라는 호전적인 악당이 이끄는 군인들로, 그들은 회사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판도라의 모든 것을 날릴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이들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소속되어 있는 무리에 정의되고 아주 소수의 운 좋은 사람들만이 그 운명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런다고 그들이 특별히 더 입체적인 인물들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일차원적인 기능성 인물들입니다. 특히 쿼리치 대령의 묘사는 어이가 없죠.

물론 판도라에는 인간형의 원주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야 이야기가 되니까요.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족들은 키가 3미터가 넘고 꼬리가 달린 고양이 얼굴의 사냥꾼들입니다. 외계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들은 이상할 정도로 지구인들과 닮았습니다. 단순한 수렴진화라고 보는 게 불가능할 정도죠. 이들의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슐러 르 귄의 해인 유니버스식 설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아마 정말 그 비슷한 설정을 감추고 있는지도 몰라요. 예를 들어 판도라의 대형 동물들은 모두 다리가 여섯 개인데, 나비족만 사지를 가지고 있는 이유는 뭐랍니까? 하지만 영화는 이들의 진화 과정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기능상 외계인이라기보다는 판타지 세계의 요정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럼 주인공 제이크 설리는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그는 전쟁으로 하반신마비가 된 전직해병인데, 판도라에 파견될 예정이었던 쌍둥이 형제가 그만 우주선에 타기 직전에 죽어서 그 대타로 온 것입니다(일반상대성 이론에 의한 쌍둥이 효과를 실험할 수 있었는데 안타깝죠.) 그레이스 어거스틴은 나비족과 지구인의 DNA를 결합해 만든 나비족 몸을 아바타로 이용해 나비족과 교우하려는 프로젝트를 계획 중이었고 설리의 쌍둥이 형제의 아바타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은 그와 유전자가 같은 사람밖에 없었죠.

이게 말이 되냐고요? 로봇 몸에 인간 피부를 입힌 사이보그보다 더 말이 안 되지요. 사실 말이 안 되는 건 한둘이 아닙니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세계의 기술과학수준에 대해서는 계속 의문을 제시할 수밖에 없죠.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인간과 외계인의 유전자를 합성할 수 있고 (왜 그런 걸 해야 하죠!) 항성간 여행이 가능한 세계라면 설리의 장애 같은 건 아주 싼 값에 치료할 수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그냥 안 합니다. 그래야 설리의 드라마가 더 그럴싸해지니까요.

설리가 판도라에서 겪는 이야기들을 요약하는 건 별 재미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일이기도 하고요. 설리의 모험은 이미 할리우드 서부극이나 기타 이국적인 모험담에서 수억 번은 반복되었던 것들입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등장인물들이 등장하자마자 그 역할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죠. 남자주인공의 여자친구가 될 추장의 딸. 남자주인공을 질투하는 젊은 원주민 경쟁자, 위엄있는 추장, 이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무녀. 네, 아까 나비족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지구인들과 닮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할리우드 수정주의 서부극에 나오는 미국 원주민이나 기타 다른 대륙의 '고상한 야만인'을 꼭 닮았어요. 제이크 설리의 역할도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 백인 남자주인공이고요. [말이라 불리운 사나이]나 [작은 거인], [늑대와 춤을] 같은 영화들을 생각해보세요. 무대만 외계 행성으로 바꾸고 재수 없는 군인들을 동원해 베트남전 분위기를 조금 더 추가했는데, 그 때문에 수정주의 서부극 분위기가 더 심해져 버렸어요. 좀 심했습니다. 전 외계 태양계에서는 우리 태양계에서 잘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길 바랍니다. 판도라는 온갖 괴상한 생명체들이 돌아다니고 하늘에는 거대한 가스 행성이 떠 있는 곳이지만 그걸 제외하면 지구와 지나치게 닮았어요. 거주민들이나 거기서 벌어지는 일들이나.

그래도 이 영화에는 재미있는 SF 요소가 있습니다. 외계인 몸을 빌린 아바타가 뻔한 아이디어일 수는 있죠. 하지만 영화는 판도라의 생태계를 조금 더 재미있게 만들어 그 안에 아바타 아이디어를 섞어놓고 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에는 테크놀로지의 비판과 매혹이 동시에 담겨있고 이들은 늘 모순되는 결과물을 창출해내는데, [아바타]도 그렇습니다. 그 결과물이 아주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구인의 테크놀로지와 자연친화적인 외계문명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얼핏 보기에 무지에 기반을 둔 원시종교처럼 보이던 것이 철저한 과학적 설명에 의해 규명되는 과정을 보고 있으면 흐뭇한 미소가 떠오를 지경입니다. 그 종교의 내용이 여전히 자연의 균형과 흐름에 대한 익숙한 이야기를 고루하기 짝이 없는 언어로 표현한 것이라 해도 말이죠. 아바타와 판도라, 지구인의 관계가 제임스 카메론이 실제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사용한 테크놀로지와 흥미로운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야겠군요. [아바타]는 제작 과정의 특수효과가 곧 내용의 일부인 영화입니다.

그 뒤에는 액션 장면이 있습니다. 지구인들의 이족보행병기와 비행기들이 숲을 폭격하는 동안 나비족은 거대한 용처럼 생긴 생명체를 타고 그들을 공격합니다. 수많은 컴퓨터 그래픽 오브젝트들이 날아다니고 폭발과 추락과 죽음이 일어납니다. 잘 연출된 장면들이긴 한데 전 카메론의 이전 액션 장면만큼 이 장면들을 즐기지는 못했습니다. 우선 액션이 너무 복잡해서 이전 카메론 액션을 특징지었던 굵은 액션의 선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리고 편하게 즐기기엔 실제 전쟁의 느낌이 너무 강했죠. 전쟁은 끔찍하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전쟁의 스펙터클에 매료되어 있으니 뭔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 거죠. 할리우드에서는 일상화된 모순이지만.

이 영화의 스펙터클에는 뭔가가 있습니다. 지나치게 안전빵 위주라 새롭거나 도전적이지는 않습니다. (가스 행성 주변을 도는 위성을 무대로 해놓고 기조력의 영향 같은 건 묘사도 않고! 저중력 위성이라면서 중력 묘사도 없고! 게을러 빠졌어, 정말!) 종종 주제와 쾌락이 심하게 충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카메론이 만들어낸 판도라라는 위성은 거의 완벽한 자기 완결성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세계입니다. 하나하나 따지면 말이 안 되는 설정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일단 그 세계가 펼쳐지면 관객들은 그 존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때는 양이 곧 질입니다. 그 엄청난 양이 극도로 세련된 기술을 통해 보여진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결국 기술의 힘입니다. [아바타]는 거의 애니메이션 영화입니다. 3D 캐릭터와 3D 배경의 비중이 실제 배우와 세트보다 훨씬 큰 영화죠. 지금까지 이런 영화들은 많았지만 카메론은 그 기술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특히 인간 배우들의 연기를 3D 캐릭터에 입히기 위해 동원한 이모션 캡쳐는 그냥 실사수준입니다. 이런 영화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배우 연기와 캐릭터 연기 사이의 딜레이가 없어요. 스테레오 화면도 자연스럽기 그지없고 효과도 적절해서 영화 감상의 이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바타]는 굉장한 구경거리입니다. 장황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 영화이고요. 투박하게 그려졌지만 주제는 여전히 의미가 있고 관객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대리만족의 쾌락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체험에 만족하고 극장을 뜰 것이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어비스], [터미네이터 2], [타이타닉]이 그랬던 것처럼 [아바타]가 거둔 기술적 성과는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업적은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이 작품을 카메론 최고 걸작이라고 보느냐? 아뇨.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전 그가 충분한 재료를 양손에 쥐고 있었으면서도 너무 평이한 이야기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참 더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멀리요. 어쩌자고 여기서 멈추었을까요. 아마 그가 젊었을 때부터 품어왔던 아이디어에 충실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거나 관객들의 이해를 위해 중간에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나보죠. 장르팬으로서 저는 여기에 여전히 불만이지만, 결국 이건 선택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09/12/11)

DJUNA

기타등등

1. 큰 극장, 적어도 화면이 크게 보이는 좌석에서 영화를 보시기 바랍니다. 입체시의 효과가 상당히 좋기 때문에 종종 더 넓은 그림이 좁은 프레임의 창 안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2. 다시 검색해보니 판도라는 알파 켄타우르스 C에 있는 모양입니다. 정말 안전한 해결책을 찾은 것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