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Alejandro González Iñárritu

주연
브래드 피트....리처드
Brad Pitt....Richard
케이트 블란쳇....수잔
Cate Blanchett....Susan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산티아고
Gael García Bernal....Santiago
야쿠쇼 코지....야스지로
Kôji Yakusho....Yasujiro
아드리아나 바라자....아멜리아
Adriana Barraza....Amelia
키쿠치 린코....치에코
Rinko Kikuchi....Chieko
붑케르 아이트 엘 사이드....유세프
Boubker Ait El Caid....Yussef
사이드 타르차니....아흐메드
Said Tarchani....Ahmed
무스타파 라치디....압둘라
Mustapha Rachidi....Abdullah
압델카데르 바라....하산
Abdelkader Bara....Hassan
엘 패닝....데비
Elle Fanning....Debbie
네이산 갬블....마이크
Nathan Gamble....Mike
모하메드 아크하잠....안와르
Mohamed Akhzam....Anwar

수잔과 리처드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기예르모 아리아가는 [아모레스 페로스]와 [21그램]에서 시간과 공간을 단절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시도를 해왔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바벨]은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바벨]은 이들의 세 영화들 중 가장 규모가 큽니다. 모로코, 미국, 멕시코, 일본을 커버하는 지리적 배경은 전세계적이죠. 사용되는 언어는 그보다 더 많고요.

영화의 동기를 제공해주는 건 모로코에서 일어난 총격사건입니다. 두 명의 양치기 소년이 아빠가 산 사냥총을 가지고 놀다가 그만 관광버스를 타고 가는 미국인 여자를 명중시키고 말죠. 여자와 남편은 공포에 떨면서 구조를 기다리고 그 바보 같은 장난 때문에 어마어마한 외교적 문제를 일으킨 두 소년들도 그에 걸맞는 엄청난 대가를 치릅니다. 한편 그 미국부부의 두 아이들을 돌보던 베이비시터는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멕시코 국경을 넘고 일본에서는 청각장애가 있는 한 소녀가 아버지를 찾는 형사의 방문을 받습니다.

[바벨]의 구성은 그렇게까지 짜임새 있는 편이 아닙니다. 모로코에서 운 나쁘게 만난 두 가족의 이야기는 하나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요. 하지만 보모와 아이들이 주인공인 멕시코 에피소드는 총에 맞은 여자의 아이들이 말려든 사건이라는 걸 제외하면 모로코 에피소드와 거의 상관이 없죠. 일본 에피소드는 어설프게 다른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긴 하지만 내용상 전혀 상관이 없고요.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멕시코 에피소드는 작가와 감독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삽입되었을 거고... 일본 에피소드는 순전히 기예르모 아리아가가 '나도 일본 소설을 하나 써볼 거야!'라고 다짐하고 쓴 게 아닌가 싶군요.

그 때문에 에피소드의 질이나 성취도도 오락가락합니다. 멕시코 에피소드는 작가/감독의 감정이 반영되었기 때문인지 오히려 밋밋해요. 일본 에피소드는 따로 떼어놓고 보면 가장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이야기와는 거의 연결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생뚱맞고요. 모로코의 두 에피소드들도 다른 이야기들과 러닝타임을 공유하는 통에 조금 가벼워진 구석이 있어요.

영화의 주제에 대해서는 확신은 서지 않는군요. 전 [바벨]이라는 제목 때문에 다양한 언어를 쓰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북적거리다 소통의 가능성을 날려버리거나 잡는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문제점이 거의 없어요. 미국인 부부에겐 훌륭한 통역이 있고 멕시코인들은 충분히 자기 방어를 할 수 있을만큼 영어를 할 줄 알고 일본인들은 외국인들을 전혀 만나지 않죠. 오히려 이 영화는 '역 바벨'에 가깝습니다. 언어 때문에 흩어지거나 분열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전에 같았다면 만났을 리도 없는 사람들이 현대 문명이 만든 새로운 링크를 통해 다른 언어를 쓰는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지요.

이들의 연결이 조금 짜임새 있었다면 그 주제는 훨씬 와닿았을 겁니다. 지금은 전체적인 하나의 영화보다는 개별 에피소드나 그 에피소드를 구성하는 부분부분이 더 좋은 영화지만요. 네, 배우들도 좋아요. 그만큼이나 연기지도도 좋고요. 원래 곤잘레스 이냐리투는 배우들의 연기를 근사하게 뽑아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지만, 지금처럼 몇 개 국어가 날아다니고 아마추어와 프로가 엉망으로 뒤섞여 있는 상황 속에서 이 정도 연기를 뽑아냈다면 그건 대단한 실력인 거죠.

전 [바벨]에 대한 일반적인 악평이 '잘난 척 하는 아트 하우스 영화'라는 말을 듣고, 이 영화가 사람들간의 소통 가능성에 대한 추상적이고 거창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철학적인 작품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보니, 영화의 주제는 무척이나 현실적이더군요. 곤잘레스 이냐리투나 아리아가가 뭐라건, 전 [바벨]이 다소 모자란 주인공들이 벌이는 한심한 모험담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음과 같은 상식적이고 유익한 교훈들을 주는 작품이라고 믿습니다. 어린애들에게 총 같은 위험한 물건을 맡기지 말아라, 아무에게나 총을 선물로 주지 말아라, 음주운전 하지 말아라, 경찰에겐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어린아이가 용의자와 같은 차에 타고 있을 때엔 일단 조심하고 봐라, 어른이 떠나 있을 때는 맘대로 사막을 방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거기 어린이! 제발 누나 옷 벗는 걸 훔쳐보지 말란 말이야! 인터넷 야설 쓰니? (07/02/07)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