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Pedro Almodóvar

주연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앙헬/후안/자하라
Gael García Bernal....Ángel/Juan/Zahara
펠레 마르티네스....엔리케 고데드
Fele Martínez....Enrique Goded
다니엘 히메네스 카초....마놀로 신부
Daniel Giménez Cacho....Father Manolo
나초 페레스....어린 이그나시오
Nacho Pérez....Young Ignacio
라울 가르시아 포르네이로....어린 엔리케
Raúl García Forneiro....Young Enrique
후안 페르난데스....마르틴
Juan Fernández....Martín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엔리케와 앙헬

[나쁜 교육]은 두 가지 영화적 뿌리에서 출발합니다. 하나는 히치콕의 [현기증]이고 다른 하나는 팜므 파탈이 등장하는 필름 느와르죠. 알모도바르는 영화 내에서 두 가지 뿌리를 모두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버나드 허먼과 솔 바스를 흉내낸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는 노골적인 [현기증]의 인용이고 중요한 음모 장면에서 두 공모자들은 필름 느와르 영화들을 상영하는 동네 극장에 들어가니까요.

영화는 1980년, 엔리케 고데드라는 젊은 영화 감독이 지금은 앙헬이라는 예명을 쓰며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옛 친구 이그나시오의 방문을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이그나시오는 자신이 직접 쓴 소설 [방문객]을 그에게 전해주는데, 어린 시절 자기를 추행했던 신부에게 복수한다는 그 단편의 내용은 이그나시오 자신의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었죠. 엔리케는 소설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하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 이그나시오에게 의심의 눈길을 던집니다.

[나쁜 교육]의 구성은 [와일드 씽]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규칙적으로 새로운 진상이 튀어나와 하나의 사건에 또다른 관점을 제공하는 식이죠. 단지 이 영화에서 진실의 위계등급은 보기만큼 간단하지 않습니다. 일단 우리가 보는 [방문객]의 내용은 이그나시오가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픽션으로 옮기고 엔리케가 그걸 다시 각색한 영화의 장면들인 걸요. 최종 진상으로 등장하는 마놀로 신부의 회상 역시 절대적인 진실이라기보다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또다른 관점의 제공에 가깝습니다.

이그나시오는 어떻게 보면 퀴어 버전 레베카와 같은 인물입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이지만 단 한 번도 자신의 모습 그대로 등장하지 않죠. 대신 그는 주변 사람들에 의해 인용되고 모사되고 변형되고 회상됩니다. 여기엔 이그나시오 자신도 무죄는 아니죠. 그가 쓴 소설 [방문객]은 논픽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모델로 해서 쓴 픽션이니, 소설 속의 이그나시오는 이그나시오 자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예술적 창작 과정을 거친 이차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이그나시오는 꿈이고 이상이고 미화된 과거의 환영입니다. [현기증]의 마들레인이 그런 것처럼요.

이그나시오가 물리적 실체 없는 욕망의 대상으로 떠도는 동안 지상에서는 차가운 음모들이 벌어집니다. 이 지상 세계에서 이그나시오는 불량 채권처럼 기능합니다. 이 세계의 남자들은 그의 이름과 이미지를 미끼로 이용해 다른 사람들을 협박하고 사기치고 자신의 살인에 가담시킵니다. 이그나시오는 여기서도 무죄가 아닙니다. 아니, 이 모든 문제들을 일으킨 건 그 자신이죠. 마놀로 신부의 원죄를 잠시 잊는다면 말입니다.

[나쁜 교육]은 차가운 영화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모도바르 영화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멜로드라마틱한 과장은 거의 없죠. 달콤한 회상 뒤에는 항상 차갑고 흉한 현실이 버티고 있고 그 어떤 욕망도 로맨틱하게 미화되지 않습니다. [나쁜 교육]의 멜로드라마는 뇌 속에 각인된 한줌의 낡은 이미지를 움켜쥔 남자들이 벌이는 파워 게임입니다.

알모도바르가 이처럼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나쁜 교육]이 그의 전작들과는 달리 자신의 내면과 사생활에 훨씬 밀착되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이야기에서 자기 연민과 미화는 스토리의 진실성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크죠. 예술가로서 그가 가장 솔직할 수 있는 방법은 소재를 될 수 있는 한 건조하게 다루는 것밖엔 없었을 겁니다.

이건 게이 남성 예술가들에게 보편적인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화려하고 멜로드라마틱한 여자 주인공에 자신을 간접적으로 투영하던 남자들이 정작 자신이 속한 동성애자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 멜로드라마의 장막을 지워버리는 건 흔한 일이잖아요. 알모도바르의 팬들이 [나쁜 교육]에 실망한다면 그 사람들이 사랑했던 건 그 위장과 장막이라는 말이겠죠. 그렇다고 그들을 비난할 이유는 조금도 없지만 말입니다. (04/09/27)

DJUNA

기타등등

[그녀에게]의 두 주연 배우들이 카메오로 출연합니다. 베니그노 역의 하비에르 카마라는 자하라의 친구로, 알리시아 역의 레오노르 와틀링은 분장사 모니카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