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두비 (2009) * * *
감독
신동일
주연
마붑 알엄 펄럽....카림
백진희....민서
이일화....은주
박혁권....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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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두비]의 시대배경은 2008년 여름. 구체적으로 날짜를 언급하는 건 아니지만
다른 어떤 시기일 수가 없죠. 주인공 민서는 가방에 촛불소녀 배지를 달고 다니고
잊을만하면 튀어나오는 조선일보 소품이 당시 이슈를 알려주고 있으니까요.
이들은 단순히 시대를 알려주는 소품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사는 리버럴한 한국
남자의 관점을 보여주죠. 이 영화에 나오는 거의 모든 소도구들은 그의 증오,
혐오, 멸시, 조롱, 약간의 자기 연민, 희망, 정치적 선언의 반영입니다.
보면 재미있어요. 소품과 엑스트라를 이렇게 작정하고 욕설과 고함으로 이용하는 영화는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요. 결코 이상적인 '예술적'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웃깁니다. 사실적이기도 하죠. 2008년 한국의 여름을 비정치적으로
그리는 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니까.
그럼 민서는 촛불소녀일까요? 글쎄요. 민서는 그렇게 정치적인 아이는 아닙니다. 아마 촛불을 몇 번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걔의 성격을 고려해보면 거기에 깊은 생각이 있었을 리가 없죠. 적어도 영화 초반에 민서는 원어민 영어 과외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평범한 아이입니다. 아니, 평범하지는 않군요. 이 친구는 약간 위험합니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있는 행동 방어막이 민서에겐 없어요. 그 때문에 민서는 종종 막 나갑니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남들이 꿈도 꾸지 못하는 행동을 거리낌없이 할 수 있는 아이죠.
민서는 어느 날 외국인 이주노동자 카림을 만납니다. 카림이 버스에 떨어뜨린 지갑을 줍고 시치미를 떼려 했다가 그만 들켜버렸어요. 민서는 엉겁결에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고, 카림은 자기 옛날 사장으로부터 떼어먹은 돈을 받아달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결국 사장의 집을 찾아나서는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그 목표는 한 동안 의미를 잃습니다. 그보다 민서와 카림이 쌓는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는지가 더 중요해지지요.
카림은 민서와 거의 정반대의 인물입니다. 훨씬 책임감이 있고 어른이지요. 이 성격 차이는 영화가 의도한 캐릭터 코미디의 역학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큽니다. 카림은 민서와는 달리 이미 정치적으로 각성한 인물이에요.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외부인이고요. 민서는 정치와 아무 상관 없는 이유로 카림을 만나지만 그와 교류를 나누는 동안 점점 정치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책을 읽거나 남들이 하는 말들 들으면서 그 생각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인간적인 경험을 통해 성숙해가는 거죠. 물론 그 성숙에서 나오는 행동이 남의 집에서 깽판치는 것이니 진짜 어른이 되려면 멀고 멀었지만 아마 수많은 어른들이 그 단순하고 깨끗한 열정을 부러워하겠죠.
코미디와 정치의 조합은 이미 신동일의 전작 [방문자]에서도 시도되었죠. 이야기 구조도 비슷해요. 괴팍한 주인공이 과묵하고 심각한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반두비]엔 [방문자]의 솔직한 자연스러움은 부족합니다. 주인공 때문인 것 같아요. [방문자]의 주인공 호준은 감독 자신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라 그의 입으로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자연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민서는 미래의 희망에 가까운 사람이라 같은 접근법이 불가능해요. 호준의 경우와는 달리 민서의 각성은 리버럴한 지식인 어른이 미리 짜놓은 가이드라인을 조심스럽게 따라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무리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놔도 그렇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카림 역시 주인공의 정치적 각성을 위해 일차적으로 디자인된 인물이라 종종 지나치게 깔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가 그리는 이주노동자들의 세계도 [로니를 찾아서]의 사실성과 생기를 찾기 어렵습니다. 너무 예의바르죠. 이주노동자들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오히려 헛발질을 하는 경우도 군데군데 있고요. 민서가 영어선생 하인츠를 카림에게 소개시켜 주는 장면이나 카림의 송별 파티 장면 같은 건 주제가 드라마나 코미디보다 앞서는 경우로 결과가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반두비]는 여전히 좋은 신동일 코미디입니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서와 카림은 좋은 캐릭터이며 둘은 우리에게 할 이야기가 아주 많습니다. 그것은 배꼽 빠지는 코미디이기도 하고 서글픈 드라마이기도 하며 경계가 불분명한 아슬아슬한 로맨스이기도 하죠. 의미있는 연기 경험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는 두 배우들의 연기와 앙상블도 아주 좋아요. (09/06/17)
DJUNA
기타등등
등급문제 때문에 신동일 감독은 화가 잔뜩 났더군요. 이해해요.
하지만 영진위 사람들에 대한 몇몇 날이 선 공격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원래 복수와 농담은 차가운 머리로 해야 하는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