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로제 바댕 Roger Vadim

주연
제인 폰다....바바렐라
Jane Fonda....Barbarella
존 필립 로....파이가
John Phillip Law....Pygar
아니타 팔렌베르크.....블랙 퀸
Anita Pallenberg....Black Queen
마일로 오시....듀란 듀란
Milo O'Shea....Duran Duran
마르셀 마르소....핑 교수
Marcel Marceau....Professor Ping
클로드 도팽....지구 대통령
Claude Dauphin....President of Earth
데이빗 헤밍즈....딜다노
David Hemmings....Dildano

1.

41세기 우주 어느 곳, 우리의 주인공 바바렐라는 지구 대통령의 명령을 받고 실종된 젊은 과학자 듀란 듀란을 찾아나섭니다. 바바렐라는 눈먼 천사 파이가와 한 패가 되어 그를 찾아 독재자 블랙 퀸의 영토로 숨어 들어가죠. 그러다가 듀란듀란의 정체와 음모가 밝혀지고 그로부터 이 우주를 구할 사람은 단 하나...

2.

에헴, 이렇게 써놓고 보니까 꼭 제대로 된 스토리가 있는 것 같군요. 하지만 그렇지가 않답니다. 적어도 제가 본 영화는 위에 적힌 스토리와 별도로 대충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었거든요. 바바렐라, 불시착한다 -- 바바렐라, 정신을 잃고 아이들에게 납치당한다 -- 바바렐라, 흡혈귀 인형들의 고문받다가 또 기절한다(그러는 동안 옷의 일부가 손상된다) -- 어떤 남자가 구해준다 -- 둘은 섹스한다 -- 바바렐라, 행성 지하로 돌진한다 -- 그러다가 또(이유도 없이) 기절한다 -- 다른 남자가 와서 구해준다(그러는 동안 가슴도 좀 만진다) -- 바바렐라, 악당들에게 끌려간다(그러다가 또 옷의 일부가 손상된다) -- 그 남자가 또 구해준다 -- 둘은 섹스한다 -- 바바렐라, 이번에는...

3.

몇년 전 제인 폰다에게 어떤 기자가 물었답니다. "도대체 [바바렐라]를 찍고 있을 때, 당신 머리를 어디다 두고 있었습니까?" 제인 왈, "몰라요, 아마 겨드랑이 어디 쯤?" 하긴 [바바렐라]는 [클루트]와 [줄리아]의 배우에게 결코 자랑스러운 추억은 아니겠지요.

물론 로제 바댕의 이 영화 [바바렐라, 은하계의 여왕]은 [시민 케인]이 되고자 한 영화도, PC하려는 노력을 담은 영화도 아닙니다. 적당한 예산으로 뚝딱 뚝딱 만들어낸 SF로, 생각보다는 괴성에 능한 틴에이저들이 드라이브 인 시어터에 우르르 몰려들어 제인 폰다의 옷이 벗겨질 때마다 고함을 질러대며 본 영화였죠. 벌써 30년의 세월이 흘러 이 작품도 이런 영화들의 고전이 되어 버렸군요. :-)

4.

아까도 말했지만 [바바렐라]는 결코 스토리를 위한 영화가 아닙니다. 영화의 제1목표는 제인 폰다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벗기고, 가끔 위기에 빠트리며, 중간중간에 섹스를 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바바렐라가 무중력 상태에서 우주복을 벗는 유명한 오프닝은 영화 전체를 설명해준다고 하겠습니다. 제인 폰다는 정말 그 장면에서 다 벗습니다. 뽀골뽀골 화면에서 기어나오는 자막들이 교묘하게 가릴 부분만 다 가려서 그렇지.

영화의 진행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스토리는 암만 보아도 어떻게 하면 바바렐라의 옷을 다양한 방식으로 찢어발길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바바렐라가 이 영화 전체를 통해 옷을 얼마나 많이 갈아입는가는 신만이 아십니다. 게다가 하나같이 왜 그리 다 황당무계한 옷들인지! (파코 라반이 디자인한 것들입니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바바렐라의 우주선 컴퓨터는 꼭 파코 라반의 금속판 옷을 잘라서 걸어놓은 것처럼 생겼죠!)

지구식 섹스(신체접촉 대신 약을 먹고 하는 가상 섹스)만 알고 있다가 외계에서 섹스하는 법을 배운다는 설정 역시 이런 영화들의 기본 설정 중 하나겠지요. 레지스탕스 지도자 딜다노가 지구식 섹스를 요청하자 바바렐라가 실망하는 꼴이라니! ("당신네들 전통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하면 어떨까요?") 딜다노와 바바렐라의 섹스신은 영화 중 가장 멍청하게 웃기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데이빗 헤밍즈가 연기한 딜다노는 정말로 정말로 바보 같아요.

맞아요, 그리고 고문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고문은 대충 바바렐라의 옷을 벗기는 쪽으로 진행되지만 (흡혈귀 인형들은 바바렐라의 옷을 이빨로 긁어 자르고, 새장 속에 떨어진 바바렐라에게 새들이 날아와 옷을 찢어 발깁니다) 후반부에 듀란 듀란이 바바렐라를 고문하는 부분은 조금 더 직접적입니다. 듀란 듀란은 바바렐라를 오르간 비슷한 악기 안에 넣고 연주를 시작하는데, 음악이 절정에 다다를수록 그 기계가 바바렐라에게 가하는 오르가즘도 증대됩니다. 물론 듀란 듀란은 오르가즘을 극도로 올려서 바바렐라를 죽이려했던 것이었는데, 바바렐라가 너무 강해서 기계가 먼저 박살나고 말죠 (잊었군요. 그 고문 기계가 맨 처음에 하는 일은 바바렐라의 옷을 벗기는 일입니다.)

5.

제인 폰다 말고 야한 옷을 입고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여성은 블랙 퀸을 연기하는 아니타 팔렌베르크입니다. 바바렐라 주변을 얼쩡거리던 남자 둘을 휙 해치우고 다가와 "Hello, Pretty-pretty"하고 뇌까리는 팔렌베르크의 모습은 정말 구경거리이긴 합니다.유감스럽게도 블랙 퀸은 등장처럼 멋진 악역은 아닙니다. 영화에서 블랙 퀸이 하는 일이라고는 바바렐라를 좀 꼬시고 나중엔 파이가를 조금 꼬시며, 후반부에는 잠을 좀 자다가 결국 바바렐라와 파이가랑 함께 탈출하는 게 끝이지요.

6.

이 영화가 가장 사람을 황당하게 하는 건, 도대체 바바렐라가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바바렐라가 맨처음 아이들에게 잡혔을 때 하는 말이 뭔지 아세요? "도와줘요!!!" 정말 누가 나타나서 도와줍니다. 그 댓가로 바바렐라는 구식 섹스를 해주지요.

도입부만 그러면 말을 안해요. 지구 대통령으로부터 그렇게 많은 무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바바렐라는 단 한 차례밖에 그 무기들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나중에 듀란듀란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네가 이겼다, 바바렐라!"하고 외치지만... 흠... 근데 바바렐라가 무얼했는데 저 남자가 저러는 것일까요?

하긴 60년대 007 영화에서도, 007은 액션 대신 섹스만 죽어라고 해대지요. 아마 그 당시에는 훨씬 관대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액션 영화의 주인공에게 액션을 바라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일까요? 이런 걸 요구하는 데에는 페미니즘도 필요없단 말입니다.

7.

[바바렐라]라는 영화 전체를 장식하는 것은 이런 캠프 클래식 영화 특유의 바보스러움입니다. 바바렐라는 맨 처음 외계 행성에 도착하면 "영어할 줄 아나요?"라고 묻지요. 그게 안 통하면 역시 심각하게 묻습니다. "그럼 불어할 줄 아나요?" 아까도 말했지만 딜다노는 덜떨어지기가 기네스 신기록 감이고 '위대한 독재자' 블랙 퀸은 누군가를 꼬시는 것 이외엔 도대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얼굴하나 안 바꾸고 심각하게 싱거운 농담들을 진지하게 뇌까리고들 있는데, 41세기에 정말 사람들이 저렇게 될까봐 무섭군요. 물론 스크린 너머에서 이런 루틴들을 알고 보면 즐겁지만 말입니다.

8.

[바바렐라]같은 영화는 앞으로 쉽게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이미 이런 식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던 시대는 지나갔거든요. 물론 앞으로도 많은 팬들이 남아 "요새는 저런 엉터리 영화는 못 만들어. 옛날이 좋았지"하고 한숨을 쉬겠지만요.

50, 60년대 싸구려 영화들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에겐 별로 즐거운 영화가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하긴 [외계에서 온 계획 9]을 보고 우주선이 너무 엉성하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도 봤으니, 이런 영화를 보는 데에도 약간의 교육이 필요할지도 모르겠어요.

마르셀 마르소나 데이빗 헤밍즈같이 꽤 유명한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주목하겠고... 팔렌베르크가 누구 애인이었다는 건 다 아시겠고... 왕년의 듀란 듀란이 바로 이 영화의 악당 듀란 듀란에서 이름을 딴 것이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요. (97/11/18)

DJUNA

기타등등

1. 제가 본 건 PG 버전입니다만, 원래는 조금 더 노출이 심한 영화였다고 하더군요.

2. 리메이크 계획이 진행 중입니다. 드루 배리모어가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