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엘 슈마처 Joel Schumacher

주연
조지 클루니....배트맨/브루스 웨인
George Clooney....Batman/Bruce Wayne
크리스 오도넬....딕 그레이슨/로빈
Chris O'Donnell....Dick Grayson/Robin
우마 서먼....포이즌 아이비/파멜라 아이슬리 박사
Uma Thurman....Poison Ivy/Dr. Pamela Isley
알리시아 실버스톤....배트걸/바바라 윌슨
Alicia Silverstone....Batgirl/Barbara Wilson
아놀드 슈왈제네거....미스터 프리즈/빅터 프라이스 박사
Arnold Schwarzenegger....Mr. Freeze/Dr. Victor Fries
마이클 고프....알프레드 페니워스
Michael Gough....Alfred Pennyworth
팻 힝글....고든 국장
Pat Hingle....Commissioner Gordon
존 글로버....제이슨 우드루 박사
John Glover....Dr. Jason Woodrue
엘 맥퍼슨....줄리 매디슨
Elle Macpherson....Julie Madison
비비카 A. 폭스....미즈 B. 해븐
Vivica A. Fox....Ms. B. Haven
벤델라 커시봄....노라 프라이스
Vendela Kirsebom....Nora Fries

1.

[배트맨과 로빈]은 길면서도 짧습니다. 액션 영화치고는 꽤 긴 작품이지만 이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모두 담기엔 또 너무 짧죠. 이 영화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나오고 너무 많은 사건들이 있으며 너무 많은 행동 동기들이 있고 너무 많은 세트와 가제트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득 찬 방에 들어가 한참 동안 탁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헥헥거리다가 나온 기분이에요.

2.

이번 편의 악당들은 우마 서먼이 연기한 포이즌 아이비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연기한 미스터 프리즈입니다. 동료에게 살해당했다 다시 살아나 악당이 된 포이즌 아이비는 인류를 멸망시키고 지구를 식물 세상으로 만들려 하네요. 미스터 프리즈는 고담시를 협박해, 병에 걸린 아내를 치료할 10억 달러를 뜯어내려 하고요.

유감스럽게도 아키바 골드먼의 스크립트는 악역들의 캐릭터 구축에 그렇게 신경을 쓰고 있지 않습니다. 악역과 주인공간의 파워 게임도 대충 대충 넘어가고요. 그 때문에 악역들이 아무리 요란한 대사를 읊으며 돌아다녀도 그들이 전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며 긴장감도 느낄 수 없는 데다가 동감할 수도 없습니다.

특히 손해 본 사람은 포이즌 아이비입니다. 미스터 프리즈야 아내를 살린다는 동기나 있죠. 하지만 포이즌 아이비가 '순전히 그냥' 악역이 되었다는 상황은 설득력이 부족하고 행동도 갈팡질팡이라 스토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더 슬픈 건 포이즌 아이비에게 독키스와 최음제 이외에 어떤 무기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이슬리 박사가 인조 식충식물을 만드느라 그렇게 공을 들인 걸 생각해보면, 포이즌 아이비의 식물 군단 정도는 등장해도 되었을텐데 말이에요. 이 영화에는 미치광이 환경론자라는 포이즌 아이비라는 캐릭터가 매우 무신경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배우들과 시각적 효과입니다. 여기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아까와는 달리 포이즌 아이비입니다. 일단 포이즌 아이비 복장을 한 우마 서먼이 아주 예쁘군요. 시각적으로도 본전을 따고 넘어가는데, 감독은 서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꽤 공을 들입니다. 마를레네 디트리히 팬이라면 서먼이 [금발의 비너스]의 디트리히의 등장 장면을 흉내내는 부분을 보고 웃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포이즌 아이비의 탄생 장면도 어딘지 모르게 보티첼리를 연상시키는군요. 서먼은 당연히 요란한 오버 액팅을 하는데, 이게 포이즌 아이비라는 갈팡질팡하고 맛이 간 캐릭터에 꽤 잘 맞습니다. 나쁜 각본이 따라와 주지 않아서 그렇지, 서먼은 이 영화에서 가장 큰 구경거리입니다.

아놀드는 언제나처럼 연기를 못합니다만 이제 그의 못하는 연기도 하나의 스타일이 되어서 이제는 익숙해져버렸습니다. 하지만 "처음엔 고담, 다음은 세계!"라고 외치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했습니다. 미스터 프리즈라는 캐릭터가 그에겐 잘 맞을지도 모르지만 몸으로 먹고 사는 연기자를 그렇게 갑갑한 갑옷 안에 가두고 둔하게 움직이게 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아놀드라는 스타가 등장해 각본가가 미스터 프리즈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묘사한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봅니다. 놀랍게도 이 영화에서는 두 악당 모두 '죽지 않습니다.' 성숙한 결말이어서가 아니라 아놀드를 차마 죽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죠. 악역에게 너무 관대해지니 액션이 약해지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조지 클루니는 투명합니다. 배트맨 옷을 입었을 때는 그냥 배트맨이고 옷을 벗었을 때는 그냥 클루니입니다. 이제 배트맨 역은 아무나 해도 되는 역인 것 같습니다.

브루스 웨인에게는 이제 고뇌가 사라졌습니다. 하긴 이런 스크립트에 그런 게 들어 있으면 오히려 문제였겠지요. 하지만 그는 몇몇 부분에서 참으로 지독한 위선자로 보입니다. 천문대에서 아이슬리 박사가 웨인 기업의 환경 파괴를 비난하자, 웨인은 엉성하고 피상적인 답변을 늘어놓은 뒤, '순전히 미스터 프리즈를 꼬시기 위해 계획한' 열대 우림 보존을 위한 자선 경매에 아이슬리 박사를 초대하죠. 그 때 그의 대사 '나도 환경을 생각합니다'는 정말로 역겨웠습니다.

크리스 오도넬의 로빈은 대충 어울립니다. 적당히 바보같고 적당히 순진하며 적당히 로빈입니다.

로빈이 입고 나오는 갑옷에 달린 젖꼭지들을 보면 이 캐릭터가 늘 호모섹슈얼 판타지의 대상이었다는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습니다. 이 캐릭터를 완전히 게이로 만들었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알리시아 실버스톤은 다이어트가 좀 부족했습니다. 액션 영화에 출연할 생각이라면 몸 다듬기에 신경을 좀 더 써야 하는 게 아닌가 싶네요. 하여간 실버스톤의 캐릭터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습니다. 순전히 포이즌 아이비를 잡기 위해 끼워넣은 게 아닌가 싶어요. 차마 남자 손에 여자 악당을 맡길 수가 없어서? 자상도 하여라. 하지만 배트걸과 포이즌 아이비를 페미니스트와 요부로 구분하고 배트걸에게 연설을 시키는 장면은 참으로 뭐랄까... 순진해 보였습니다. 골드먼이란 이 남자, 이게 먹힐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참, 바바라가 고든 국장의 딸이 아니라 알프레드의 조카라는 게 조금 뜻밖이군요.

마이클 고프는 앓아 눕느라고 이전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막강 수퍼 파워 집사 역할을 많이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의 부재는 알프레드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말했지만 알프레드야 말로 이 시리즈의 진짜 수퍼 히어로입니다. 알프레드가 어린 시절의 판타지를 실현하려고 브루스를 뒤에서 조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낭비되는 배우가 셋 있는데, 이 사람들은 도대체 왜 나오는 지 모르겠더군요. 비비카 폭스는 미스터 프리즈와 말 몇마디만 나누고 사라지고 엘 맥퍼슨이 연기한 줄리는 전혀 쓸모없는 캐릭터이며 반델라 커쉬봄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물 속에서 잠만 자고 있습니다.

3.

아키바 골드먼의 스크립트는 요란한 농담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타이틀 시퀀스입니다. 온갖 똥폼을 잡으며 두 주인공이 등장하자 로빈이 입을 엽니다. "나도 차 하나 줘요! 여자애들은 차를 좋아한단 말이에요!" 배트맨 가라사대: "수퍼맨이 혼자 일하는 이유를 알겠다."

이런 것들이 수도 없습니다. 배트맨과 로빈이 박물관에서 미스터 프리즈의 부하들과 하키를 하는 장면도 지독한 농담이지요. 생각해보니 아키바 골드먼은 [배트맨과 로빈]을 쓰면서 아무 생각없이 신나게 장난이나 한 번 치고 싶었나 봅니다. 영화는 시리즈의 그 어떤 작품들보다도 만화같고 요란하며 바보같습니다. 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죠. 이런 배트맨 영화가 만들어져서는 안된다는 법도 없으니까. 사실 이 바보같은 농담들과 푼수같은 유머를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짜증나는 부분은 골드먼이 '액션'과 '드라마'를 짜넣는 방식입니다. 너무 적은 액션에 너무 많은 설명, 너무 무개성적인 사건들 때문에 스토리는 늘어지고 따분합니다. '액션 영화'가 따분하다면 문제가 아닙니까?

4.

바바라 윙의 이번 프로덕션 디자인에는 [배트맨 포에버]보다 훨씬 많은 수의 덩치 큰 남자 조각상들이 등장합니다. 이게 슈마처의 호모 섹슈얼 판타지인지 바바라 윙의 헤테로 섹슈얼 판타지인지는 모르겠군요. 참, 배트걸의 박쥐가 모두 '빨강'이란 걸 아세요? 뒤집어지는 줄 알았어요.

조엘 슈마처의 요란한 연출은 솔직히 어지럽습니다. 지나치게 단 사탕 같아서 너무 쉽게 물리는군요.

엘리엇 골든소어의 음악은 가끔 너무 노골적이어서 상당히 '웃깁니다.' (97/08/03)

D&P

기타등등

뱀다리를 덧붙이자면, 저희로서는 왜 미스터 프리즈가 그 능력과 테크놀로지를 겨우 도시를 협박하는데 쓰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더군요. 고담을 얼리는 대신 그걸로 지구 온난화를 막으면 오죽 좋아요? 아니면 다이아몬드를 이용한 무공해 에너지로 떼돈을 벌거나요. 10억이 아니라 수천억은 벌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