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코트 맥기 Scott McGehee
데이빗 시겔 David Siegel

주연
리처드 기어....솔
Richard Gere....Saul
줄리에트 비노쉬....미리엄
Juliette Binoche....Miriam
플로라 크로스....일라이자
Flora Cross....Eliza
막스 밍겔라....애런
Max Minghella....Aaron
케이트 보스워스....찰리
Kate Bosworth....Chali

일라이자

영어권의 철자법 대회는 우리 문화에 쉽게 이식될 수 없는 행사입니다. 언어의 차이 때문이죠. 우리라고 모국어의 철자법에 특별히 더 능한 건 아니지만, 한자어가 많고 발음과 철자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 우리에겐 이런 대회가 별 도움이 되지는 않지요.

영어권에서는 사정이 다릅니다. 철자를 구별하고 말하는 것만으로 단어 속에 숨어 있는 역사와 의미와 기원이 살아나지요. 이 대회에 집중하다 보면 단순히 어휘를 많이 익히는 것 이상의 차원으로 넘어가기도 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철자는 단어의 의미를 넘어선 독자적인 의미를 획득하고 그 단계를 넘어서면 거의 수학적이기까지 한 자체적인 질서까지 얻게 되지요.

[다섯 번째 계절]은 초등학교 6학년생인 주인공 일라이자가 참가한 철자법 대회를 카발라 신비주의와 결합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대학에서 유대 신학을 가르치는 대학 교수인 아버지 솔 때문이지요. 그는 지금까지 그가 눈치채지 못한 딸의 재능에 감탄하며 그걸 자신의 전공과 결합시키려 합니다. 여기서부터 아이들의 어휘력을 측정하는 단순한 행사가 우주의 질서를 회복하고 신과 소통하는 신비주의적인 도구로 변질됩니다.

일라이자의 재능에 대한 솔의 집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린 보다 현실적인 가족 드라마와 접하게 됩니다. 철자법 대회는 솔의 학구적 탐색과 엇물려 이 가족 드라마에 또다른 국면 전환을 가져오죠.

얼핏 보면, 솔과 생물학자인 아내 미리엄, 일라이자, 일라이자의 오빠 애런으로 구성된 이 가족은 거의 완벽해 보입니다. 좋은 유전자를 물려 받고 좋은 환경 속에서 자란, 똑똑하고 잘 생기고 취미도 좋은 사람들이죠. 하지만 한꺼풀만 걷어보면 이 가족은 정신적으로 붕괴 직전입니다.

아무리 봐도 가장인 솔의 책임이 가장 커요. 그가 가족에게 행사하는 지적인 영향력은 상당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수평적인 의사소통 능력은 거의 제로에 가깝죠. 둘 중 하나만 없었다고 해도 다들 편했을 텐데, 이 둘이 결합되자 광기와 어리석음이 침범할 수 있는 완벽한 문이 만들어집니다.

당연히 이 영화에서 철자법 대회는 배경과 도구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마지막 대회를 제외하면 일라이자는 그냥 승승장구를 거듭하는 걸요. 진짜 드라마는 그 행사가 아슬아슬한 평화를 유지하고 있던 가족의 정신적 균형을 뒤흔드는 과정입니다.

영화는 이 붕괴 과정을 막는 해결책을 찾아냈을까요? 글쎄요. 일라이자는 하나의 해결책을 찾긴 합니다. 그게 얼마나 의미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사실 영화 전체가 그렇습니다. 카발라 신비주의와 철자법을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는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하지만 영화가 그걸 얼마나 커버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면 소설을 읽고 싶어집니다. 분명 영화가 다루지 못한 무언가가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으로서는 개념과 시놉시스만 간신히 챙긴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영화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고 그 설정에서 기대 이상을 끌어낼 줄 아는 훌륭한 배우들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일라이자 역의 플로라 크로스는 인상적이에요. 거의 이상적인 아마추어 아역 배우입니다. 불필요한 기교에 휘말리지도 않고 아이다움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 조숙하고 특별한 아이를 완벽하게 표현해내고 있지요. 원래는 다코타 패닝이 캐스팅될 뻔했다가 크로스 쪽으로 방향을 바꾼 모양인데, 정말 다행이에요. 패닝은 훌륭한 전문 배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크로스의 풋풋한 맛이 훨씬 잘 어울리니까요. (06/02/21)

DJUNA

기타등등

막스 밍겔라는 안소니 밍겔라의 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