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크리스 콜롬버스 Chris Columbus

주연
로빈 윌리엄즈....앤드루
Robin Williams....Andrew
엠베스 데이비츠....리틀 미스/포샤
Embeth Davidtz....Little Miss/Portia
할리 케이트 아이젠버그....리틀 미스 (7살)
Hallie Kate Eisenberg....Little Miss, 7 years old
샘 닐....마틴 씨
Sam Neill....Sir
웬디 크류슨...마틴 부인
Wendy Crewson....Ma'am
올리버 플랫....루퍼트 번즈
Oliver Platt....Rupert Burns
스티븐 루트....데니스 맨스키
Stephen Root....Dennis Mansky
브래들리 위트포드....로이드
Bradley Whitford....Lloyd
키어스틴 워렌....갈라테아
Kiersten Warren....Galatea

(자잘한 스포일러들이 숨어 있습니다.)

1.

아이작 아시모프를 '위대한' 작가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적어도 '문학적 거장'으로 평가할 인물은 아니죠. 그의 캐릭터는 종이장처럼 얇고 스토리는 뻣뻣하며 소설은 끝없는 말, 말, 말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아시모프의 독자들이 이 작가한테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니, 그건 꼭 욕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단지 엉뚱한 우물에서 헤매는 것일 뿐이죠. 만약 독자들이 캐릭터나 심리 묘사 따위에 신경 쓰지 않고 과학과 인간에 대한 지적인 아이디어를 원한다면 아시모프는 멋있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순전히 작가의 인기만 믿고 아시모프의 소설의 판권을 사들인 헐리웃 사람들에겐 사정이 다릅니다. 책이야 재미있지만 영화로 만드는 건 쉽지 않으니까요. 원작에 충실한 아시모프 영화라면 사방에서 우주전이 일어나는데도 주인공들이 좁은 방에서 끝없이 대화만 나누는 장면만 보여줄 겁니다. [파운데이션] 영화화가 이렇게 늑장을 부리고 있는 건 당연해요.

2.

[바이센테니얼 맨]은 정말 희귀한 아시모프 영화입니다. 앞으로도 희귀할 거예요. 원작인 동명의 중편 소설이 영화화될 수 있었던 것도, 스토리가 작고 짧아서 헐리웃이 다루기가 쉬웠기 때문일 겁니다.

내용은 간단합니다. NA 로봇 회사(원작에서는 US 로봇 회사)의 가정부 로봇 앤드루는 다른 가정부 로봇과는 달리 인간적인 면을 잔뜩 가지고 있습니다. 예술 작품을 만들고 즐거움과 같은 감정에 대해서도 알고요. 앤드루는 이백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점점 인간을 닮아가고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찾아갑니다.

영화는 비교적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갑니다. 적어도 앤드루가 인조피부를 이식받기 전까지는요. 그 뒤부터는 '리틀 미스'의 손녀인 포샤와의 로맨스가 삽입됩니다. 앤드류가 인간으로 인정받으려는 권리를 찾으려는 이유도 포샤와의 사랑 때문이고요.

많은 비평가들이 이 부분을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건 영화 전체에 대한 비판과 연결됩니다. [바이센테니얼 맨]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 영화가 아시모프의 철학적 비전을 헐리웃식 당의정을 입힌 연애 영화로 뜯어고쳤다고 생각합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할 겁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가면 대책없이 감상적으로 빠지는 것 역시 사실이고요.

3.

하지만 전 그런 부분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답니다. 사실 전 이 영화를 꽤 즐겁게 보았습니다. 아마 그건 아시모프의 원작 중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헐리웃 영화가 로봇 3원칙, 양전자두뇌와 같은 아시모프의 언어를 토해내는 걸 보는 건 재미있습니다. 우리의 오랜 친구인 앤드루 마틴이 로빈 윌리엄즈의 몸을 빌어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것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감동적입니다. 스토리가 늘어지고 평면적이며 감상적이라지만, 그건 원래 아시모프의 소설도 마찬가지고, 우린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들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영화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심지어 연애담도 용서해줄 수 있답니다. 원작을 그대로 살렸다면 영화는 정말 건조했을 거예요. 게다가 앤드루의 연애담은 영화에 나름대로 새로운 측면을 부여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아시모프가 직접 그 연애담을 썼으면 영화보다 훨씬 떨어졌을 거예요. 로맨스 묘사엔 재주가 없는 남자였으니까요.

믿거나 말거나 [바이센테니얼 맨]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원작에 충실했고, 아시모프 영감의 정신도 종종 꽤 잘 잡아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최악의 영화로 뽑았지만, 결코 그렇게까지 나쁜 영화는 아닙니다. 적어도 저희는 [미세스 다웃파이어]보다 좋게 봤답니다.

4.

불만스러운 부분은 지엽적인 디테일들입니다. 니콜라스 카잔은 아시모프 소설의 줄거리와 기본 개념들은 잘 따왔지만, 아시모프 세계에 충분히 익숙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의 앤드루 마틴 묘사는 원작엔 있었던 연역적 논리가 많이 부족합니다. 몇몇 디테일도 거칩니다. 예를 들어 제2원칙이 제대로 먹혔다면, 앤드루의 장난감 강아지 우피는 훨씬 오랫동안 등장했어야 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갈라테아는 가장 중요한 제1원칙을 까맣게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요.

특수효과는 좋은 편입니다만, 그 정도는 이제 일상적입니다. 오히려 디지탈 시각 효과보다 더 좋은 부분은 노역 분장입니다. 특히 엠베스 데이비츠의 중년 분장과 노역 분장들은 인상적입니다. 겨우 십 여 년 전에 나왔던 [백 투 더 퓨처] 시리즈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죠.

로빈 윌리엄즈는 괜찮지만, 이 영화는 [미세스 다웃파이어]만큼 연기할 거리를 많이 제공해주지 않습니다. 엠베스 데이비츠는 그 사람 전문인 착하디 착한 천사표 여자 주인공 역을 잘 해냈지만, 전 이 사람의 다른 모습도 보고 싶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배우는 리틀 미스를 연기한 '펩시 걸' 할리 케이트 아이젠버그였던 것 같군요. 정말 귀여워서... (00/02/07)

D&P

기타등등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133분입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필름은 1시간 5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아요. 계산이 맞다면 20여분 정도가 잘려나간 걸 겁니다. 트레일러에는 있지만 극장 상영본에 안나오는 장면이 바로 잘려나간 부분일지도 모르죠. 시사회에서 보신 분들은 '마요네즈' 사건을 언급하시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극장에서 본 영화는 엉뚱한 작품이나 다름없겠군요. 2시간이 넘어가니(그래서 잘랐겠지만) 비디오 장사꾼들이 삭제된 러닝타임을 살릴 것 같지도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