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스티븐 달드리 Stephen Daldry

주연
제이미 벨....빌리 엘리어트
Jamie Bell....Billy Elliot
줄리 워터즈....윌킨슨 부인
Julie Walters....Mrs. Wilkinson
게리 루이스....재키 엘리어트
Gary Lewis....Jackie Elliot
제이미 드레이븐....토니 엘리어트
Jamie Draven....Tony Elliot
스튜어트 웰즈....마이클
Stuart Wells....Michael
진 헤이우드....할머니
Jean Heywood....Grandma
마이크 엘리어트....조지 왓슨
Mike Elliot....George Watson
재닌 버켓....빌리의 엄마
Janine Birkett....Billy's Mum
니콜라 블랙웰....데비 윌킨슨
Nicola Blackwell....Debbie Wilkinson
빌리 페인....브레이스웨이트 씨
Billy Fane....Mr. Braithwaite
콜린 맥라클랜....윌킨슨 씨
Colin MacLachlan....Mr. Wilkinson

왜 남자 발레 무용수들이 '계집애 같다는' 소리를 듣는지 모르겠어요. 발레는 운동량도 굉장히 많고 역동적인 장르입니다. 남자 무용수들 역시 강건하고 건장한 사람들이고요. (사람 집어드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잖아요.) 언젠가 모 대학에서 가장 육체적/정신적으로 힘이 드는 스포츠로 발레를 뽑았다는 기사를 읽은 적 있어요. 리더스 다이제스트 사람들은 그게 신기했는지 스포츠 유머란에 그 이야기를 실었지만, 발레가 야구 따위보다 훨씬 힘든 '스포츠'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수치와 계산을 들이밀고 떠들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발레를 '계집애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 [빌리 엘리어트]의 무대인 북부 영국의 탄광촌 사람들은 더욱 그렇게 생각하고요. 이런 걸 보면 과연 지난 세기가 남성 무용수의 시대긴 했던 건지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덕택에 발레 무용수가 되려는 남자 아이들은 종종 주변 사람들의 미심쩍은 시선이나 조롱과 싸워야 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남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발레 이야기들을 위한 고정된 틀이 형성될 수밖에 없죠. 이 영화에서 빌리 엘리어트가 걸었던 길은 이미 오래 전에 수많은 발레 이야기의 남자 주인공들이 걸어왔던 길입니다. 빌리 엘리어트의 선배 리스트에는 심지어 바트 심슨의 이름도 올라와 있습니다. 바트가 잠시 발레에 빠졌던 에피소드를 기억하세요?

[빌리 엘리어트]의 가장 큰 약점은 이야기가 새로울 게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게 이전에 공식으로 만들어졌으니까요. 빌리가 겪는 수난과 성공은 시작부터 예고되어 있습니다. 보나마나 빌리는 우연히 눈썰미 있는 발레 교사에게 발탁되어서 몰래 발레 레슨을 시작하겠지요. 그러다 발레 배운다는 게 들통난 뒤로 아빠랑 툭탁거리며 싸우겠죠? 하지만 아빠는 결국 아들을 이해할 거고, 클라이맥스는 오디션 장면이 차지하겠죠. 결말까지 다 알게 되었다고 투덜거리지 마세요. 여러분도 이 영화의 줄거리가 이렇다는 건 다 알고 있습니다.

배경이 되는 80년대 탄광촌의 켄 로치식 묘사 역시 그렇게 예외적이지 않습니다. 이런 예술가 성공담 주인공들 상당수는 우리의 빌리처럼 노동자 계급 출신입니다. 그래야 이들의 장래 선택이 더 흥미롭고 성과 역시 더 달콤하기 때문이죠. 이 영화에 부정적인 평을 한 소수의 평론가들이 감점의 이유로 내세운 것도 이 영화가 지나치게 공식에 충실하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리 엘리어트]를 진부한 공식 영화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엔 참 힘센 영화거든요. 진부하다고 보기엔 캐릭터의 개성이 너무 분명하고 이들이 뿜어대는 감정이 너무 진솔합니다.

생각해보면 진부한 이야기라는 것도 단점만은 아닌 듯 합니다. 자식들에게 더 나은 미래를 마련해주려고 하는 아버지의 노력이야 우리가 아는 세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있어왔겠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의 절실함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기본 줄거리가 새로우냐, 공식이 될 정도로 익숙하냐가 아니라 그 줄거리를 얼마나 진실되게 이야기 하느냐입니다.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진실성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그건 제이미 벨이나 줄리 워터즈, 게리 루이스와 같은 배우들의 호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 자체가 이 뻔한 관습적인 이야기에서 아직 살아 숨쉬는 진실의 조각들을 찾아낼 줄 알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빌리 엘리어트의 춤입니다. 제이미 벨의 열정적이지만 닦여지지 않아 투박한 춤은 이런 종류의 댄스 영화에서 아주 드문 구경거리입니다. 여기서 영화는 관습적인 완벽함에서 벗어나 꼭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풋내기의 살아 숨쉬는 삶 속으로 뛰어듭니다. 결과는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들통난 빌리가 아버지 앞에서 추는 커밍 아웃 댄스를 한 번 보세요.

'커밍 아웃'이라고 말했나요? 실제로 [빌리 엘리어트]는 전형적인 게이 커밍 아웃 스토리의 구조를 따르고 있기도 합니다. 주인공이 동성애자가 아니면서도 작년에 나온 가장 인기있는 게이 영화 중 하나로 뽑혔던 데도 이유가 있죠. 어린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며 혼란에 빠지고, 자길 이해 못하는 주변 사람들과 싸우고... 게다가 빌리의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클은 장래의 동성애자가 아닌가요? 마이클에게 튀튀를 입히고 같이 춤을 추는 장면은 정말 누가 봐도 오해하기 딱 좋죠.

이런 설정 때문에 빌리의 이야기가 더욱 풍요로워지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빌리 자신도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있는 듯 합니다. 빌리가 'Poof'라는 단어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툭 하면 공격적으로 그 단어들을 뱉어대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해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AMP의 [백조의 호수] 역시 그런 느낌을 강조하기도 하죠.

그러나 이 이야기를 꼭 동성애에 대한 비유로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AMP의 [백조의 호수] 역시 다른 의미로 읽을 수 있죠. 말 그대로 빌리 엘리어트는 탄광촌의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가 된 것입니다(알아요, 알아요. 안데르센의 동화는 언제나 게이 취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넘어가기로 하죠.) 이건 탄광촌의 어두운 현실만큼이나 분명한 소망 충족의 환상이지만, 우린 언제나 이런 이야기 속에서 우리의 이루지 못한 꿈들을 되새기며 눈물을 훌쩍이곤 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그냥 현실 속에 엉거주춤 주저앉고 말았지만, 빌리처럼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의 이야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꿈은 충분히 위로받으니까요. (01/02/19)

DJUNA

기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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