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제즈 버터워스 Jez Butterworth

주연
니콜 키드먼....나디아
Nicole Kidman....Nadia
벤 채플린....존
Ben Chaplin....John
뱅상 카셀....알렉세이
Vincent Cassel....Alexei
마티유 카소비츠....유리
Mathieu Kassovitz....Yuri
케이트 린 에번즈....클레어
Kate Lynn Evans....Clare
앨리잰더 암스트롱....로버트 모즐리
Alexander Armstrong....Robert Moseley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존과 나디아

[버스데이 걸]의 주인공인 은행원 존은 [From Russia with Love]라는 인터넷 알선업체를 통해 나디아라는 러시아 여자를 미래의 아내감으로 주문합니다. 시작부터 우린 우리의 주인공을 얕잡아보게 되고 그가 무슨 일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존이 한 행동은 결코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죠. 아무리 외로움에 지친 소극적인 남자라고 이해를 하려해도 이런 식의 우편 주문엔 사람을 물건이나 애완동물 취급하는 느낌이 깔려있지 않나요?

하여간 존은 나디아를 마중하러 공항에 나갔다가 자기가 주문한 물품에 심각한 하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나디아는 영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골초였단 말이에요. 존은 반품처리하려 하지만 두 번쯤 나디아에게 반겁탈 당한 뒤로는 조용히 포기하고 맙니다. 말은 여전히 안 통하지만 꼭 브루넷 버전 니콜 키드먼처럼 생긴 러시아 여자와 하는 섹스가 아주 나쁠 수는 없었던 거겠죠. 게다가 존의 포르노를 챙겨본 나디아는 그가 벽장 속에 꼭꼭 숨겨놓았던 본디지 페티시를 만족시켜주기도 합니다.

당연히 여러분은 여기서부터 일이 틀어질 거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존은 이런 태평스럽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길만한 주인공이 아니거든요. 당연히 나디아의 사촌과 그의 친구라고 우기는 두 러시아 남자들이 그의 삶에 뛰어들고 그가 10여년 동안 쌓아왔던 삶의 기반은 완전히 박살납니다.

[버스데이 걸]은 소프트 코어 포르노의 설정이 필름 느와르로 변했다가 로맨틱 코미디로 끝나는 영화입니다. 이 장르 변환엔 나름대로 논리가 서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말도 안되는 희망을 품고 러시아 신부를 구입한 존은 중반의 필름 느와르 부분에서 그 어리석음의 대가를 치릅니다. 그 과정 중 '다시 태어난' 그는 신기루를 지워버린 진짜 사람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합니다.

[버스데이 걸]은 무척 영국적인 작품입니다. 존은 아주 영국적인 주인공 또는 사람들이 영국적이라고 믿고 있는 스테레오타입화를 극단적으로 몰아붙인 남자입니다. 예절과 수줍음 속에 욕망과 환상을 묻고 있는 희미한 남자 말이에요. 영화는 그런 그의 환상을 충족시켜준 척하다가 박살내고 놀려준 뒤 그 보상으로 조금 다른 것을 안겨줍니다.

영화는 존을 신나게 놀려대긴 하지만 여전히 그에게 동조하고 있고 그 때문에 그를 아주 잔인하게 대하지는 못합니다. 아마 이 영화가 흐릿하게 느껴지는 것도 감독/작가인 버터워스 형제가 그에게 너무 관대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들이 선물로 제공한 로맨스는 필름 느와르의 뒷맛이 너무 강한 터라 그렇게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요. 그래도 그 과정 중 존과 나디아의 위치가 거의 완벽하게, 아니 그보다 더 심하게 역전되는 건 흥미롭습니다. "당신은 기린인가요?" "네." :-) (03/10/14)

DJUNA

기타등등

[버스데이 걸]은 저예산 영국 영화지만 나디아 역에 니콜 키드먼이라는 거물급 스타를 캐스팅하고 있습니다. 마티유 카소비츠와 뱅상 카셀이 러시아인 악당들로 나오고요. 캐스팅은 그럴싸하기도 하지만 위태롭기도 해요. 이들의 대사 반 이상은 러시아어인데, 모두 러시아어를 한마디도 못하니 말이에요. 러시아인 관객들에겐 이 영화가 아주 곤혹스러울 겁니다. 제즈 버터워스는 그들이 만난 러시아 배우들의 영어 실력이 문제였다고 말하지만 과연 그게 정말 문제였을까요?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러시아 배우를 넣어주는 게 좋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