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요제프 폰 스턴버그 Josef von Sternberg

주연
마를레네 디트리히....헬렌 패러데이
Marlene Dietrich....Helen Faraday
허버트 마샬....네드 패러데이
Herbert Marshall....Ned Faraday
캐리 그랜트....닉 타운젠드
Cary Grant....Nick Townsend
디키 무어....조니 패러데이
Dickie Moore....Johnny Faraday
진 모건....벤 스미스
Gene Morgan....Ben Smith
리타 라 로리....택시 벨 후퍼
Rita La Roy....Taxi Belle Hooper
로버트 에메트 오코너....댄 오코너
Robert Emmett O'Connor....Dan O'Connor
시드니 톨러....윌슨 형사
Sidney Toler....Det. Wilson
모건 월레스....피어스 박사
Morgan Wallace....Dr. Pierce

헬렌

[금발의 비너스]는 암만 봐도 마를레네 디트리히 버전 [선녀와 나무꾼]입니다. 도입부는 거의 동일해요. 독일에 여행을 온 미국인 학생들이 근처 호수에서 수영하는 독일인 여자 배우들을 발견합니다. 이들은 남자들 때문에 밖에 나오지 못하는 여자들에게 반쯤 협박 섞인 추파를 주고 받고 그러다 눈맞은 한 쌍이 결혼해서 미국으로 건너옵니다. 물론 여자는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캐릭터 헬렌이고 남자는 허버트 마샬의 캐릭터인 화학자 네드죠.

아들 하나 낳고 몇 년 동안 그럭저럭 행복하게 살던 이들 부부에게 위기가 닥칩니다. 실험 중 발생한 방사능 노출로 네드가 죽게 된 거죠. 그를 치료할 의사가 독일에 한 명 있긴 한데, 그러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헬렌은 돈을 구하기 위해 다시 연예계에 진출하고 그러다 백만장자 닉 타운젠드를 만납니다. 물론 닉은 캐리 그랜트고요. 타운젠드에게 돈을 받아 남편을 보낸 헬렌은 그와 몇 달간을 같이 보냅니다. 하지만 조금 일찍 온 남편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들통나고 말아요. 네드가 아들 조니를 빼앗겠다고 선언하자, 헬렌은 조니와 함께 달아납니다.

한 시간 반밖에 안 되는 영화지만 굉장히 많은 이야기들이 우르르 일어나죠. 여자주인공의 위치도 계속 바뀌고요. 신비스러운 물의 요정에서 평범한 가정주부, 연예계의 화려한 스타, 부정한 요부, 아들에게 집착하는 엄마, 가난한 노숙자... 만약 보다 전형적인 할리우드 배우가 이 역을 연기했다면 보기가 무척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를레네 디트리히에게 역이 넘어가자 사정은 완전히 달라졌죠. 디트리히는 헬렌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별다른 갈등이나 고민없이 시원스럽게 해치웁니다. 영화 역시 심리묘사에 불필요한 에너지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요. 그 때문에 관객들은 주인공에게 몰입하거나 감정이입하는 대신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아주 인간은 아닌 어떤 존재가 우리의 우주를 휙 스쳐간다는 느낌을 받으며 이 소동을 관전하게 됩니다. 이 영화 드라마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기존 디트리히의 이미지와 영화가 요구하는 캐릭터가 충돌하는 부분에서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영화에서 기억하는 것은 드라마 외적인 부분들입니다. 'Hot Voodoo'에서 고릴라 분장을 하고 있다가 정체를 드러내거나, 파리 장면에서 하얀 연미복을 입고 관객들을 유혹하는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모습 말이에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 장면들과 영화 내용을 연결시키지도 못해요. 스턴버그의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영화의 부분들은 전체의 합보다 더 재미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더 사람들을 잡아 끄는 건 무심한 여신과도 같은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존재감이지만요. (06/06/14)

DJUNA

기타등등

후반부 뉴 올리언즈 장면에서 해티 맥다니엘이 헬렌의 하녀로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