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르주 프랑주 Georges Franju

주연
조르주 위베르....나레이터
Georges Hubert....Récitant/Narrator
니콜 라드미랄....나레이터
Nicole Ladmiral....Récitante/Narrator

'Le Sang des bêtes'

[짐승의 피]의 장르는 스너프 필름입니다. 이건 피비 부페식 과장법이 아닙니다. 조르주 프랑주의 이 다큐멘터리의 무대는 파리 근교에 있는 한 도살장이거든요. 카메라가 돌아가는 동안 수많은 가축들이 이 건물로 끌려들어와 머리에 구멍이 뚫리고 목이 잘려 죽습니다. 아직 팔다리가 꿈틀거리는 동안 이들의 머리는 잘려나가고 몸은 우리의 저녁거리가 되기 위해 토막납니다.

프랑주의 영화는 마치 당의를 뒤집어 쓴 쓴 약과 같습니다. 도입부에서 영화는 다소 감상적인 목소리의 여자 나레이터를 따라 파리 근교의 로맨틱하고 평온한 풍경을 따라갑니다. 그러다 갑자기 엄격하고 무표정한 목소리의 남자 나레이터로 안내자를 바꾸고 도살장의 피투성이 세계로 뛰어드는 거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전혀 성격이 다른 두 나레이터들은 마치 정신사나운 다중인격체들처럼 번갈아 등장하며 도살장과 그 주변을 오갑니다.

표면상으로 영화는 카메라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에게 대해 구체적인 비판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여자 나레이터는 도살장의 끔찍한 학살이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파리 근교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서글퍼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남자 나레이터는 아무런 감정없이 도살장 직원들의 작업 과정을 기술하며 그들의 노련함에 대해 감탄합니다. 표면상 이 영화에서 가장 분명한 주제처럼 보이는 것은 도살장 직원들의 프로페셔널리즘에 대한 예찬입니다.

감독이 무엇을 기대했건, [짐승의 피]는 관객들에게 여러가지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IMDb에 리뷰를 올린 사용자는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채식주의자가 된 모양입니다. 당시 프랑스 관객들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가축들을 보고 제2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의 악몽을 떠올렸고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잔인하고 고통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속해있을 수밖에 없는 삶의 진실을 솔직하게 보여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관객들이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건, [짐승의 피]는 강렬한 영화입니다. 심지어 어느 선을 넘어서면 아름답기까지도 하죠. 냉정한 리얼리스트의 시점이 피가 튀고 사지가 끊기는 살육을 통과하는 동안 어느 순간부터 정신나간 쉬르레알리스트의 꿈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걸 꿈으로 인식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얼마나 허울뿐인 허상 속에서 살고있는가를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겠지만요. (04/09/01)

DJUNA

기타등등

1. 최근 미국 양계업체인 필그림스 프라이드에서 벌어진 닭 학대 소동과 이 영화를 연결시켜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요... [짐승의 피]는 영화 사상 가장 섬뜩한 동물 학대의 현장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양계업체에서 벌어진 일들과 영화의 무대인 도살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살아있는 닭을 장난감 삼아 집어던지던 필그림스 프라이드의 직원들에 비하면 이 파리 도살장의 전문가들은 아주 신사들이에요.

2. 이 영화가 저를 채식주의자로 만들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앞으로 자발적으로 송아지 고기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