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대승

주연
차승원....원규
박용우....인권
지성....두호
윤세아....소연
최지나....만신
천호진....강객주
오현경....김치성 대감
최종원....최차사
유해진....독기
정규수....장호방
박철민....조달령

원규

[혈의 누]는 존 딕슨 카와 엘리스 피터스를 부모 삼아 태어나 움베르토 에코에 의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역사추리물의 장르에 속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은 19세기초의 조선이고 이 장르가 대부분 그런 것처럼 소재로 삼고 있는 연쇄살인사건과 그 수사 과정은 당시의 역사적 흐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제지소가 있는 외딴 섬에서 벌어진 방화와 연쇄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천주교 신자라는 모함을 받고 죽은 강객주와 가족의 복수를 노리는 듯한 범인은 죽은 사람들이 당했던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모함자들을 처단합니다. 죽은 사람들과 모함자들의 머리 수가 똑같은 건 편리한 우연의 일치겠죠.

형식적인 면에서 이 영화는 조선시대를 무대로 한 [김전일] + [세븐]입니다. 적어도 관객들은 이 두 제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복수를 위한 연쇄살인이 [김전일]에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소네트처럼 엄격한 규칙을 따르는 연쇄살인범을 [세븐]이 창조한 것도 아니지만, 아마 만든 사람들도 이 작품들을 벤치마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영화에서 역사는 상당히 큰 역할을 합니다. 영화의 각본은 19세기 초의 조선시대라는 시대와 공간에서 범죄와 비극의 동기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범행방법에서부터 수사관의 직업 묘사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디테일도 풍부하고요.

이 영화의 역사는 두 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연쇄살인과 그를 포함한 비극은 조선시대 후반의 사회적 모순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당연히 영화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던 당시의 신분사회에 대해 냉정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속에 은근한 자존심을 숨겨놓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분명한 사회적 모순과 부패에도 불구하고 당시는 엄격한 과학수사와 이성적인 철학이 존재하는 세련된 문화국가였다는 거죠. 전자는 내수용이고 후자는 대외용일 겁니다.

영화는 교과서처럼 계급 갈등으로 선악을 가르지는 않습니다. 인간혐오와 개인적인 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는 살인의 동기는 오히려 사사롭죠.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인자가 지나치게 교조적이 되어 요새 관객들의 감상에 호소한다면 재미가 없죠. 사실성도 떨어지고. 전체적으로 이 영화의 살인사건은 잘 짜여진 편입니다. 적당히 멜로드라마틱하고 충분히 극적이며 설득력 있는 역사적 디테일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풀어가는 수사과정은 살인사건 자체보다는 재미가 없습니다. 지나치게 고전적인 퍼즐 미스터리의 공식에 의존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퍼즐 미스터리의 힘이 터져나오기엔 복선과 반전이 약하고요. 잔인한 살인장면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다소 얌전한 스토리 전개는 극장용 장편보다는 텔레비전 미스터리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차승원의 갑작스러운 연기 변신에 걱정했던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 안심했을 겁니다. 적어도 그의 모습엔 이전 코미디의 느낌은 없으니 말이죠. 하지만 르콕 풍의 성실한 민완 수사관이어야 할 원규 역과는 조금 맞지 않는다는 느낌도 약간 듭니다. 조금 더 관객들에게 마음을 열어보일만한 평범한 외모의 배우가 더 어울렸을 겁니다. (05/05/04)

DJUNA

기타등등

중반에 갑자기 터져나온 라흐마니노프의 멜로디에 깜짝 놀랐습니다. 그 뒤에 나올 때마다 집중이 되지 않더군요. 차라리 처음부터 나왔다면 그러려니 했을텐데요.

영화의 제목과 스토리를 고려해보면 지금과 같이 채도를 낮춘 화면보다는 아르젠토 풍의 현란한 컬러가 더 맞았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