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으로 가다 (2000) * *
감독
김인수
주연
김현정....남경
양동근....재승
이정진....상태
이세은....영우
이현균....원일
진태성....정민
이승채....유나
김민선....도연
이은주....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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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으로 가다]는 2000년에 나온 한국 호러 영화들 중 가장 '정파'입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장르 표현의 확장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보였던 [가위]와는 달리
[해변으로 가다]는 거의 아무런 의심도 없이
우직하게 한 길만 갑니다. 그리고 그 길의 종착지는 [13일의 금요일]이 문을 연
80년대식 슬래셔 무비입니다.
스토리는 전형적입니다. 천리안 바다동 회원인 여덟명의 젊은이들이 해변 별장으로 여행을 왔는데, 그들이 전에 탈퇴시켰던 샌드맨sandmanzz이라는 회원이 한 명씩 그들을 살해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고립된 별장 안에서 공포에 떠는 동안, 그들은 범인이 자기네들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 극도로 모범적인 슬래셔 무비의 공식에 어느 정도 차별성을 부여하는 것은 통신 동호회라는 2000년 한국의 설정입니다. 아마 바로 이 설정 때문에 이 영화의 충성스러운 장르 추종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추상적인 장르 형식과 현실 세계의 고민이 결합하면 종종 독특한 느낌이 나는 영화가 만들어지니 말입니다.
[해변으로 가다]는 그 가능성을 충분히 탐구했을까요? 한가지는 확실히 챙깁니다. 인터넷과 통신이 위험한 스토킹과 폭력적인 집단 따돌림의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영화는 상당히 긴 시간을 들여 그 폭력과 집착의 방식을 기술하고 그에 대해 어느 정도 생각도 해봅니다. 그 때문에 영화 초반이 늘어지는 걸 각오하고 말이에요.
영화는 통신 세계의 또다른 측면을 스토리 전개의 도구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아주 친하게 지낸 사람이라도 서로의 얼굴을 모를 수 있다는 것 말이에요. 슬프게도 영화는 아주 기초적인 설정만 이용할 뿐, 이를 보다 풍요롭게 발전시키지는 못합니다. 이들은 친숙한 사람의 낯선 얼굴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그냥 오랜 친구들처럼 행동할 뿐이거든요. 굉장히 좋은 공포 효과의 가능성이 날아가버린 거죠.
슬래셔 무비로 볼 때 [해변으로 가다]는 그렇게까지 튀지 않습니다. 이건 장르 성격을 고려해보더라도 문제가 많아요. 잔인함이 [13일의 금요일]류 할리우드 영화보다 떨어지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색다른 살인 방법의 고안은 이 장르의 의무이기도 하잖아요. 영화는 그냥 선배들이 다른 영화에서 고안한 몇몇 살인장면을 무개성적으로 반복할 뿐입니다.
장르 자체의 장기가 충분히 발휘되지 못했기 때문에 각본의 치밀하지 못한 구조가 유달리 눈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들이 살해당하는 해변은 그렇게까지 고립된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이들은 차가 두 대나 있지요. 사방으로 흩어져 비명만 질러대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어요. 인물들간의 관계도 설명이 부족해서 관객들은 영화와 함께 종종 방황합니다.
인물들의 개성이 약하고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기력 역시 그렇게까지 대단치 않다는 것 역시 문제입니다. 어떤 캐릭터들은 거의 비정상적일 정도로 방치되는 데도 눈치채기 힘들 정도거든요.
이들 중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잘못 활용되었습니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김민선은 [스크림]의 전통에 따라 초반에 살해당하는데, 이 사람은 차라리 주연 쪽에 배치하는 게 나았을 겁니다. 드루 배리모어가 죽어도 코트니 콕스와 네브 캠벨이 남는 [스크림]과는 달리 [해변으로 가다]엔 김민선 정도의 개성과 연기력을 가진 여자 배우가 전무하니 말이에요. 무리에서 살짝 떨어져 자기만의 생각을 내뱉는 철학과 학생을 연기하는 양동근은 그럭저럭 자신의 이질적인 이미지를 살리는 편입니다만 중반 이후 슬래셔 영화의 공식에 말려들면서 자동적으로 낭비됩니다. 그 뒤에 우리는 얼굴도 쉽게 기억하기 힘든 나머지 배우들에게 감정이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정말 쉽지가 않아요.
처음부터 정통적인 장르 영화가 되려고 했던 [해변으로 가다]의 시도 자체를 경멸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2000년 한국에서 그런 순수성이 과연 얼마나 먹힐 수 있었을까요? 영화를 만든 사람들은 이미 [스크림]을 거친 관객들이 그들의 작품을 어떤 눈으로 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요? (04/02/09)
DJUNA
기타등등
1. 재미있는 건 도연이 살해당하는 영화의 도입부가 다리오 아르젠토의 [슬립리스]의 도입부와 이상할 정도로 닮았다는 것입니다. 표절이나 인용은 아닙니다. [슬립리스]가 나중에 나왔으니까요. 아마 김인수는 나중에 이걸 자랑스럽게 생각할지도 모르겠군요. :-)
2. 보내는이 sender를 sandmanzz과 연결시키는 건 좀 억지스러운 말장난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3. 이 영화에서 살해당하는 여자들은 모두 죽기 직전에 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이는 여성 흡연에 대한 굉장히 유치찬란한 경고처럼 보인답니다.
4. 마지막에 카메오로 잠깐 나오는 사람은 이은주입니다.
5. 다음 주에 다룰 2000년 한국 호러 영화는 [하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