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최호

주연
류승범....이상도
황정민....도 경장
김희라....이택조
추자현....지영
이도경....장철
온주완....유성근
신정근....고 계장
정우....김 형사
이얼....최 형사
이수현....최 형사 부인
신현국....검사
민도기....정구

이상도와 도경장

[사생결단]의 무대는 90년대 말 부산. 90년대를 시대배경으로 잡은 건 IMF 사태와 마약 범죄를 연결시키기 위해서죠. 나름대로 의미있는 작업이지만 꼭 그렇게 대놓고 IMF를 들먹일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그러느라 주제가 약화되고 축소되었다는 느낌이 강해요. 그러지 않아도 다들 알아서 찾아낼 텐데 말입니다.

우리의 주인공들도 IMF가 그들의 삶에 끼친 영향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유는 없습니다. 둘 다 사느라 바쁘죠. 자칭 벤처 기업가인 마약중개상 이상도는 3만명의 고객들을 관리하고 돈을 모으느라, 도경장은 마약범을 잡고 흠있는 사람들로부터 돈을 뜯느라.

만나지 않았다면 다들 그럭저럭 나쁘지 않게 살 수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도경장이 이상도를, 거물들을 잡기 위한 정보책으로 쓰면서 일이 얽힙니다. 체포하려던 마약범이 도주 중에 사망한 것이죠. 이상도는 체포되고 도경장은 정직됩니다. 간신히 둘 다 자기 자리로 돌아간 뒤에도 이들의 악연은 쉽게 끊기지 않습니다. 도경장은 4년 전에 동료를 죽음으로 몰고 간 마약범 장철을 잡기 위해 여전히 이상도를 이용하려 하고 있거든요.

이들의 관계는 결코 감상적인 의리나 인정으로 얽혀있지 않습니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이거죠. 쓸데없는 감상주의로 이 지저분한 수컷들을 미화하지 않는다는 것. 둘 다 엄청난 악당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좋은 인간들도 아닙니다. 다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하찮은 인간들이죠.

그러나 [사생결단]은 여전히 이들에 매료되어 있는 영화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저지르는 폭력과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유에 매료되어 있는 거죠. 영화는 아닌 척하면서 욕설, 마약, 섹스, 살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수컷들의 세계를 탐구합니다. 더럽고 추악하지만 여전히 재미있고 가끔은 부럽기도 한 거죠. 사실 아닌 척하며 온갖 구차한 것들을 다 보여주기 때문에 더 재미있기도 합니다. 괜히 같잖은 싸나이의 의리를 깔며 폼을 잡았다면 영화가 토해내는 쾌락주의의 상당부분이 날아가버렸을 거예요.

그와 함께 영화가 더 복잡해졌고 깊이도 생겼습니다. [사생결단]은 단순한 장르의 공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아니, 따르긴 합니다. 단지 이들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인 액션 영화가 아니라 70년대에 유행했던 지저분하고 사실적인 폭력물들인 게 다를 뿐이죠. 그 결과 영화는 조금 더 비전형적이 됩니다. 보통 일반 공식이 최종 폭력의 무대로 제공해주는 몇몇 설정은 중간에 거의 허망하게 날아가 버리고 캐릭터들이 맞지 않는 옷이라도 입은 것처럼 불편해 하는 동안 설정들은 조금씩 붕괴됩니다. 여전히 수많은 장르 클리셰들이 모여있지만 아귀가 그렇게까지 잘 맞아떨어지는 건 아닙니다. 이 영화에서는 좋은 거죠.

이 영화의 캐릭터들에서 재미있는 건 감정이입과 객관적 관찰의 균형입니다. 이상도는 우리가 인간쓰레기라고 부를만한 친구지만 예상외로 몰입하고 동조하기가 쉽습니다. 그렇다고 관객들이 이상도에게 지나치게 감정이입해서 균형을 잃는 일도 없고요. 그가 영화 속의 단독 주인공이 아니라 도경장과 대결구도라는 점도 이런 면에서 도움이 됩니다. 만약 Q님이 제안하셨던 것처럼 이상도만으로 이야기를 끌어갔다면 영화가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흘렀을 거예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도경장의 캐릭터가 종종 종속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요.

[바이 준]이나 [후아유]와 같은 감상적이고 정적인 영화들로 알려진 최호의 필모그래피 속에서 [사생결단]은 무척 예외적인 작품입니다. 그 때문에 조금 의심의 눈으로 영화를 보게 되기도 해요. 전체적으로 그의 스타일은 이곳저곳에서 빌려온 것 같은 느낌이 나고 마지막 한 방을 치는 고유의 힘이 조금 부족합니다. 하지만 영화의 페이스는 훌륭하고 캐릭터는 인상적으로 그려졌으며 전체적으로 재미있어요. 이 정도면 빠진 구석이 없죠. (06/04/19)

DJUNA

기타등등

후카사쿠 긴지의 영향을 받았다고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게 따로 2페이지짜리 보도 자료를 만들어 배포해야 할 정보인 건지? 그냥 감독이 인터뷰에서 밝히는 정도로는 모자랐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