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모이라 암스트롱 Moira Armstrong

주연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브리엘 수녀/안나 깁슨
Kristin Scott Thomas....Sister Gabriel/Anna Gibson
트레이시 키팅....도미닉 수녀
Tracy Keating....Sister Dominic
마들레인 크리스티....고드릭 수녀
Madeleine Christie....Sister Godric
게리 메이어즈....할
Gary Mavers....Hal
아만다 레드먼....린 깁슨
Amanda Redman....Lynn Gibson
존 보우....다니엘 스턴
John Bowe....Daniel Stern

1.

16년 동안 수녀로 지내왔던 가브리엘 수녀/안나 깁슨은 자살한 오빠의 가족들을 도우려 수녀원에서 잠시 나왔다가, 엉겁결에 망해가는 오빠의 공장까지 떠안게 됩니다. 공장을 다시 세우려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동안 안나는 점점 수녀로서의 자신의 존재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2.

어떤 사람이 지금 보는 비디오가 뭐냐고 하길래, 무심코 쉽게 대답했답니다.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 수녀로 나오는 미니 시리즈인데 제목은 [육체와 영혼]이에요." 그랬더니 그 사람 말하기를, "아, 수녀가 연애하는 영화인가요?"

정말 [육체와 영혼]에는 수녀가 연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생각해보니, 수녀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오면 십중팔구 그 수녀가 어떤 남자랑 연애하다가 고뇌하는 스토리로 흘러가고 말더군요.

왜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수녀원이나 절이 실연당한 사람들만 들어가는 도피처도 아니고, 적어도 수녀라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라면 그래도 상당한 소명감을 느끼는 사람들일텐데, 어찌 영화 속의 수녀들은 (그리고 비구니들은) 그리 마음이 약하단 말입니까?

그래서인지 연애같은 걸 전혀 안하는 수녀 이야기(예를 들면 [떼레즈]같은 영화)들이 저희에겐 훨씬 신선하게 보입니다. 생각해보면 프레드 진네먼의 [수녀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도 오드리 헵번이 피터 핀치와 연애를 해서 수녀를 그만 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육체와 영혼]은 어떨까요? 안나는 공장 직원인 할과 사랑에 빠지고 결국 잠자리까지 같이 합니다. 이 섹스신은 분명 안나가 수녀원에서 나온 뒤에 나오지만 아직까지 정식으로 허가장이 나온 상태는 아니었으니 결국 수녀가 연애하고 섹스하는 내용까지 나오는 작품이 되어버린 셈이죠.

그러나 안나가 할 때문에 수녀원에서 나온 게 아니란 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할과 안나의 관계는 뚜렷해지지 않습니다. 잠자리를 같이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의 관계는 여전히 어설픈 현재형입니다. 실제로 할과의 섹스는 로맨스의 절정으로보다는 안나가 가브리엘 수녀로서의 자신을 포기하는 상징적인 요소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낫겠지요.

안나의 변심은 그래도 꽤 복잡한 편입니다. 실제로 [육체와 영혼]에서 안나의 갈등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부분은, 안나가 비즈니스 우먼이나 엔지니어일 때입니다. 안나가 수녀복을 (의도적으로) 포기하는 동기도 그녀가 비즈니스 우먼으로서의 모습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이었죠.

[육체와 영혼]을 여성성의 인식이라는 익숙한 내용을 다룬 작품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여기서 '여성'은 보다 복합적인 존재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전단계로 가브리엘 수녀를 향한 도미닉 수녀의 열광적인 애정(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의 영화에서는 꽤 자주 나오는 상황이지만)을 끼워넣는 건 조금 불만이군요. 왜 (플라토닉하건 아니건)동성애는 꼭 미숙한 전단계로 묘사되어야 하는 건지. 그리고 왜 이런 이야기는 늘 여자들 이야기에서만 나타나는 건지.

3.

[육체와 영혼]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부분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의 노출도입니다. 안나 깁슨/가브리엘 수녀가 욕실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나체를 빤히 바라보는 꽤 유명한 장면이 있지요. 이 장면에서 카메라는 뭐 특별히 가릴 것도 없이 안나의 몸을 다 보여줍니다.

후반부에 나오는 안나와 할의 섹스 신도 그렇게 에로틱하게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노출도는 상당히 심해요. 최후의 마지노선(?)인 남자 성기 노출만 없을 뿐이죠. 이 나라에서라면 영화관에서라도 잘리거나 안개가 끼었을 겁니다. 그런데 영국(아마도 미국에서도)에서는 이게 공중파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었단 말입니다. 이 장면을 보고 저 나라는 저런 것도 되는구나... 하고 신기해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나는군요!

4.

이 작품을 끌어가는 원동력은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가 연기하는 안나 깁슨/가브리엘 수녀라는 캐릭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조금 뻔하지만 재미있는 설정이에요. 가브리엘 수녀는 그 불편한 수녀복을 입고 전혀 안 어울릴 것 같은 공장이나 경매장에 뛰어드는데, 그 충돌이 꽤 재미있습니다. 스코트 토머스는 그 사람 특유의 약간 메마른 듯한 유머를 곁들여서 물떠난 물고기 신세인 가브리엘 수녀를 재치있게 묘사해냅니다.

안나가 서서히 '물을 떠나는' 과정들도 아주 정교해요.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안나가 수녀복을 잠시 벗어버리고 비즈니스 우먼으로 '변장'했을 때입니다. 마치 적진에 잠입한 어설픈 카톨릭 스파이 같은 안나의 행동(보통 사람처럼 보이려고 잡지를 골라잡았는데 하필이면 그게 무술 잡지입니다. :->)은 아주 희극적이기도 하지만 꽤 미묘한 부분도 있습니다. 특히 스턴이 안나의 반지를 보고 결혼했느냐고 물을 때가 그렇지요. 안나는 허겁지겁 별거중이라고 대답하는데 따지고 보면 그건 거짓말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 질문과 답변은 안나의 죄의식을 내리쳐서 그녀를 간부처럼 느끼게 만듭니다. 적어도 우리는 엉망이 된 스코트 토머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지요.

5.

[육체와 영혼]은 5시간 넘게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의 연기 패턴에 푹 빠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추천할 작품입니다. 마스터피스 시어터 물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편하게 보실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들 특유의 얌전하기만 한 연출에 나른해지는 사람들도 꽤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 (97/12/06)

D&P

기타등등

크리스틴 스코트 토머스는 [육체와 영혼]으로 93년 시카고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