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허버트 로스 Herbert Ross

주연
우피 골드버그....제인
Whoopi Goldberg....Jane
메리-루이즈 파커....로빈
Mary-Louise Parker....Robin
드루 배리모어....홀리
Drew Barrymore....Holly
매튜 매커너헤이....에이브 링컨
Matthew McConaughey....Abe Lincoln
빌리 워드....닉
Billy Wirth....Nick
에스텔 파슨즈....루이즈
Estelle Parsons....Louise

1. 소프트 버전

허버트 로스의 영화들을 보다보면 '분명히 이런 줄거리의 영화를 전에 보았는데...'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혹시나해서 한 번 생각해보면 정말로 그런 영화들이 있습니다! 로스가 두 여인의 기나긴 우정에 대한 영화인 [터닝 포인트]를 만들던 당시에는 진네만의 [줄리아]가 있었습니다. 로스가 [철목련]으로 불치병에 걸린 딸과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얼마 전에는 제임스 브룩스가 [애정의 조건]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이즈 온 더 사이드] 이전에는 [델마와 루이즈]와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가 있습니다.

로스를 비꼬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재미있지요? 더 재미있는 것은 '오리지널(?!)'의 주제가 로스의 영화로 옮겨지면서 변해가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거치면 원래 영화의 강함은 퇴색되고 모든 것이 보다 일반인들의 입맛에 맞게 변합니다.

로스는 생각이 매우 평범한 사람이며 언제나 안전한 길을 따릅니다. 그의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영화광이나 정치적 급진주의자가 아닙니다. 감독이나 관객이나 결코 일상적인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고로 로스의 영화는 [줄리아]나 [델마와 루이즈]같은, 헐리우드 영화치고는 꽤 강한(?) 표현을 하는 영화들을 어떻게 헐리우드의 평범한 감독과 관객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고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2. 여성 영화

로스의 영화는 일반적으로 '여성 영화'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그렇다고해서 로스의 영화가 페미니즘 영화라는 뜻은 아닙니다. 로스의 '여성 영화'는 조지 쿠커의 '여성 영화'와 같은 의미의 여성 영화입니다. 여성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등장인물 위주의 멜로 드라마를 말하는 거죠(쿠커의 영화들에게 대해서는 언젠가 한번 따로 이야기하고 싶군요.)

하지만, 쿠커의 시대와 현대의 여성 관객들은 같지 않습니다. 경제적, 사회적 지위는 상승했고 생각 역시 쿠커의 시대와는 다릅니다. 따라서 관객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는 같은 장르라도 영화의 내용과 인물은 조금씩 바뀌기 마련입니다.

[보이즈 온 더 사이드]의 주인공들은 지금까지 헐리우드 영화에서 다루었던 캐릭터들에서 약간씩 벗어나 있습니다. 에이즈 환자야 요새는 신기하지도 않다고 치더라도, 제인과 같은 레즈비언 캐릭터를 이 정도까지 긍정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아직까지도 드뭅니다. 내용을 보아도 역시 새로운 시선이 꽤 보입니다.

그러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전형적인 쿠커 식 영화입니다. 제인이 아무리 긍정적으로 묘사되는 레즈비언이라고 하더라도 그녀와 로빈과의 관계는 성적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나쁘게 생각해 보면, 제인이 로빈을 유혹하지 않았기 때문에 '긍정적'이 된 것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로빈을 좋아하는 바텐더나 홀리의 애인 에이브와 같은 남자 등장인물들이 고명처럼 등장하는 것 그리고 하필이면 중심인물이 '둘'이 아니라 '셋'인 점 역시 실수로라도 이 영화를 레즈비언 영화로 오해없기를 바라는 감독과 각본가의 배려에서 나온 것입니다. 어쩌다 실수로 들어온 남성 관객들을 소외시키지 않으려는 의도도 보입니다. 그 의도는 대부분 드루 배리모어에 의해서 구체화됩니다.

[보이즈 온 더 사이드]는 게이 무브먼트와 페미니즘의 영향을 살짝 받은(또는 그것들을 이용하는) 상업적인 '여성 영화'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빈정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상업적이고 비개성적이라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면일지도 모르니까요. 이런 소재나 주제들이 주류 내의 일반적인 남성감독과 남성 작가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는 점은 세상이 그래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테니까요. 최근에 개봉되었던 또다른 '여성 영화'인 [뮤리엘의 웨딩]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3. [보이즈 온 더 사이드]

[보이즈 온 더 사이드]는 세 여자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레즈비언 가수인 제인은 뉴욕을 떠나 LA로 떠나려 하는데, 샌디애고로 같이 자동차 여행을 할 친구를 찾는 부동산 중개업자인 로빈을 만납니다. 그들은 가는 길에 피츠버그에서 제인의 친구 홀리를 방문합니다. 홀리는 자신을 폭행하려는 남자친구를 묶어놓고 그들과 동행하게 되는데, 그만 그 남자친구가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켜 죽습니다. 여기까지는 [델마와 루이즈]의 표절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요?

한 영화만 너무 베끼는 게 미안했는지, 각본가 돈 루스는 또다른 영화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를 끌어들입니다. 애리조나의 투손에서 에이즈 환자인 로빈이 병에 걸리는 통에 로드 무비는 중간에서 갑자기 끝나고 시한부 인생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멜로 드라마가 시작되는 거죠. 앞의 에피소드에서 연결된 홀리의 체포와 재판 역시 절묘하게 [프라이드 그린 토마토]식으로 전환됩니다. 특히 재판 장면과 로빈의 죽음은 [프라이드...]와 너무나 닮아있어서 혹시 [프라이드...]의 영화 클립을 그대로 따서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배우들 역시 자신들의 기존의 이미지를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우피 골드버그의 흑인 가수 이미지는 [시스터 액트]의 조금 진지한 판과 같습니다. 드루 배리모어의 바람둥이 이미지도 그 사람이 예전에 수없이 써먹었지요. 불쌍해보이는 외모 때문인지 언제나 가엾은 역만을 도맡아 하는 메리-루이즈 파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파커가 연기한 로빈은 [프라이드...]의 루스의 쌍둥이 자매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결국 이 영화는 기존 영화들과 캐릭터를 짜맞춘 콜라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영화가 늘 그렇듯이 짜맞춘 부분이 가끔가다 맞지 않아서 좀 덜컹거리는 편입니다.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지나치게 자상한([철목련]이 그 극한이었죠) 로스의 버릇이 여기서도 도져서 영화는 종종 중심을 잃습니다. 가끔가다 순전히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집어넣은 시퀀스도 나오고 다소 억지처럼 보이는 감정 대립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스의 장점 역시 단점만큼 잘 나타납니다. 세 배우들은 그 들의 최고의 연기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무척이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줍니다. 집단 묘사에 능한 감독의 영화답게 투손 시의 묘사는 따뜻하고 정감이 넘칩니다. 구성은 덜컹거리고 상황은 진부하지만 각 개별 장면들에는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적어도 [보이즈 온 더 사이드]는 자기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멜로 드라마입니다.

이미 매스컴을 통해 여러번 소개된 장면이기는 하지만, 로빈이 힘겹게 '컨트'라고 말하는 장면과, 제인이 로빈의 뒤를 이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홀리의 아이...:-) 로스의 다른 '여성 영화'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음 세대들은 계속 태어나 주인공들의 뒤를 잇습니다. 그들의 세상은 어떤 것일까요? (95/06/17)

D&P

기타등등

생각해보니 저희는 그 뒤로 이 영화를 꽤 자주 보았습니다. 비디오로 나온 뒤에도 보았고 케이블에서 할 때도 자주 보았고 이번 KBS 방영 때도 놓치지 않고 보았으니까요.

아무래도 저희가 이 영화를 좋아하나 봅니다. 계속 반복해서 보다보니 그 수많은 흠집들(쓸데없이 많은 대리 변명과 '이성 게이에 대한 글짓기 대회' 출품작에서 발췌한 것 같은 순진한 합리화, 다른 영화 베껴먹기)에 대한 냉소주의가 사라지고 세 배우의 정감 어린 연기와 같은 장점들은 더욱 힘을 얻는군요. 여전히 걸작이라는 말은 못하겠지만 꼭 그런 딱지를 붙이지 않더라도 좋아하고 싶은 영화들은 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