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빌리 레이 Billy Ray

주연
크리스 쿠퍼....로버트 핸슨
Chris Cooper....Robert Hanssen
라이언 필리피....에릭 오닐
Ryan Phillippe....Eric O'Neill
로라 린니....케이트 버로우스
Laura Linney....Kate Burroughs
캐롤라인 다베르나스....줄리아나 오닐
Caroline Dhavernas....Juliana O'Neill
게리 콜....리치 가시스
Gary Cole....Rich Garces
데니스 헤이스버트....댄 플레삭
Dennis Haysbert....Dan Plesac
캐슬린 퀸란....보니 핸슨
Kathleen Quinlan....Bonnie Hanssen
브루스 데이비슨....존 오닐
Bruce Davison....John O'Neill

오닐과 핸슨

[브리치]는 로버트 핸슨이라는 남자의 몰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80년대부터 20여년간 러시아에 기밀정보를 팔아넘겼던 FBI 요원이죠. 경력 중간에 냉전이 종말을 고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부터 양국이 스파이질을 그만 둔 건 당연히 아니었으니, 핸슨은 그 중간에 끼어 짭잘한 소득을 올렸답니다. 러시아에서 받은 돈 상당부분은 아이들 교육비로 들어갔다고 하더군요. 그 동네나, 이 동네나...

이미 핸슨의 이야기는 한 번 각색된 적 있습니다. 극장용 영화가 아니라 텔레비전 미니 시리즈였지요. [Master Spy: The Robert Hanssen Story]라고요. 이 작품에서는 윌리엄 허트가 로버트 핸슨이었고 메리 루이즈 파커가 아내 보니 핸슨이었답니다. 이 시리즈도 궁금하긴 하네요.

[브리치]는 미니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로버트 핸슨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대신 핸슨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에릭 오닐이라는 FBI 훈련생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지요. 당연히 영화가 다루는 사건도 오닐이 핸슨 사건에 참가한 뒤부터고요. 한 2개월 정도 진행됩니다.

영화가 이런 관점을 취하게 된 이유는? 에릭 오닐 자신이 영화제작에 참여했기 때문이죠. 원래 이건 그의 형제이고 이 영화의 부제작자로 이름을 올린 데이빗 오닐이라는 사람의 아이디어였답니다. 에릭 오닐은 지금 이미 FBI를 떠났지만 그래도 내부에 연줄이 있어서 이 영화는 FBI 건물에서 촬영한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가 되었다고 합니다.

영화는 에릭 오닐이 핸슨 사건에 투입된 뒤부터 핸슨이 체포될 때까지 2개월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닐은 처음엔 핸슨이 인터넷으로 야한 사진을 유포하는 변태라고 알고 그를 감시하다가 결국 그의 경건한 가톨릭 신앙과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고 그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게 되지요. 그러다 상사로부터 그가 국가를 배신한 이중스파이라는 말을 듣고 그를 체포하기 위한 작전에 가담하게 됩니다. 영화의 각본은 비교적 실제 일어난 사건에 충실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각색을 안 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오닐은 작전에 투입될 때부터 핸슨이 배신자라는 걸 알고 있었다네요.

영화를 보다보면 각본가들이 작업하는 과정이 눈에 들어옵니다.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할리우드 장르 영화의 공식에 끼워맞추는 게 보여요. 오닐과 핸슨의 관계묘사부터 그렇죠. 처음부터 오닐이 핸슨의 정체를 알아봤다면 영화를 중반까지 끌어가는 스승과 제자의 묘사 같은 건 넣을 수 없었겠죠? 다 이런 식입니다. 특히 영화가 인공적인 서스펜스를 조성하는 부분에서는 티가 나요. 심지어 그게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 때도 말이죠.

그래도 영화는 꽤 재미있는 편인데, 그건 로버트 핸슨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워낙 흥미진진해서죠. 열성적인 가톨릭 신자이고 오푸스 데이의 회원이며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주의자인 남자가 자기 부부의 섹스 장면을 몰래 찍어 친구와 돌려보는 변태에 이중스파이라잖아요. 그렇다고 그가 그냥 위선자인 것이냐... 그렇게 볼 수도 없단 말이죠. 전 그의 가톨릭 신앙과 보수적인 세계관이 오히려 양심을 억누르는 마취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고요. 하여간 크리스 쿠퍼가 근사하게 연기한 영화 속의 핸슨에겐 이 모순되는 면들이 모두 진짜 같아요. 영화가 끝날 무렵에도 오닐은 끝끝내 핸슨이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에겐 핸슨은 그냥 미스터리에요. 하지만 다행히도 관객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죠. 이 경우 우리가 꼭 답을 알 필요도 없습니다. 답이 그렇게 단순할 리도 없고 안다고 해서 미스터리 자체보다 재미있을 거라는 법도 없으니까요. (07/08/15)

DJUNA

기타등등

핸슨은 지금 상당히 민망하겠어요. 배반자라는 게 들통난 것 때문에 자존심이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겠죠. 하지만 그러는 동안 야한 취미 생활이 적발되어 전세계에 공개되는 건 사정이 다르잖아요. 심지어 그가 캐서린 지타-존스의 팬인 것에 대해서까지 말이 많으니 말이에요. 이중스파이는 지타-존스의 팬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법도 있나? 그래도 아내 동의 없이 섹스 장면을 인터넷에 올리거나 친구와 돌려보는 건 사정이 다르죠. 그것까지 용서했다니 보니 핸슨은 참 사람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