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마이클 린지-호그 Michael Lindsay-Hogg
찰스 스터리지 Charles Sturridge

주연
제레미 아이언즈....찰스 라이더
Jeremy Irons....Charles Ryder
안소니 앤드루스....세바스찬 플라이트
Anthony Andrews....Sebastian Flyte
다이애나 퀵....줄리아 플라이트
Diana Quick....Julia Flyte
피비 니콜스....코딜리아 플라이트
Phoebe Nicholls....Cordelia Flyte
클레어 블룸....레이디 마치메인
Claire Bloom....Lady Marchmain
사이먼 존스....브라이즈헤드 플라이트
Simon Jones....Brideshead Flyte
제인 애셔....실리아 라이더
Jane Asher....Celia Ryder
로렌스 올리비에....마치메인경
Laurence Olivier....Lord Marchmain
존 길거드....에드워드 라이더
John Gielgud....Edward Ryder
존 그릴로....샘그라스씨
John Grillo....Mr. Samgrass
찰스 키팅....렉스 모트럼
Charles Keating....Rex Mottram
조나단 코이....쿠르트
Jonathan Coy....Kurt
니콜라스 그레이스....안소니 블란치
Nickolas Grace.... Anthony Blanche
모나 워시본....호킨즈 유모
Mona Washbourne....Nanny Hawkins
스테판느 오드랑....카라
Stéphane Audran....Cara
마이클 고프....그랜트 박사
Michael Gough....Dr. Grant
델리카트슨....알로이시어스
Delicatessen....Aloysius

찰스, 세바스찬, 알로이시어스

종종 작가의 기본 성격과 어긋나는 작품이 그 작가의 대표작이 되는 경우가 있는데, 에블린 워의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도 그런 작품들 중 하나입니다. 냉정한 풍자와 쿨한 위트로 특징지어지는 워의 기존 작품들과는 달리,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는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회상조의 로맨틱한 소설입니다.

하긴 이 소설이 쓰여졌던 2차 세계대전 말기엔 이런 식의 소설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젊은 날의 열정과 매서움을 슬슬 잃어가던 중년의 작가가 전쟁과 군대 체제의 갑갑함 속에 찌들리다 쓴 글이니까요. 보다 관대한 시선으로 과거를 돌이킬 때가 된 것이지요. 게다가 그는 전쟁 직전에 카톨릭으로 개종했으니, 소설에 어느 정도 종교적인 영향이 반영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은 여러차례 영화화가 시도되다가, 1979년에 가서야 오늘 소개할 ITV 미니 시리즈 버전이 제작되기 시작되었습니다. 만들면서 다들 고생 참 많았다고 해요. 중간에 감독이 바뀌고, 파업 때문에 촬영이 중단되고, 6부작으로 계획되었던 게 찍는 동안 두 배로 늘어나고... 다행히도 결과는 좋아서, 11부작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는 영국 방송 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리즈들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화가 출신의 육군 장교 찰스 라이더가 지난 날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옥스포드 시절에 마치메인경의 둘째 아들인 세바스찬 플라이트와 절친한 친구가 되는데, 그 뒤부터 그와 마치메인 가문 사이의 끈적이는 로맨스가 시작됩니다. 젊었을 때는 알콜 중독으로 망가져가는 세바스찬에게 끌려다니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세바스찬의 동생 줄리아의 애인이 되는 식이죠. 그는 종종 필사적으로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늘 마법의 성과 같은 브라이즈헤드 저택으로 끌려가고 맙니다.

작품의 어조는 전체적으로 달콤씁쓸합니다. 라이더가 세바스찬과 함께 보낸 나른하고 관능적인 나날들에 대한 묘사에는 이미 더 이상 자신이 젊은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중년 남자의 회한이 섞여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사랑과 성적 좌절, 알콜 중독, 종교적 갈등 속에 조용히 침잠하는 마치메인 가문의 기록은 당시 서서히 이전의 위치를 잃어가고 있던 대영 제국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는 카톨릭 신앙도 작품에 특별히 밝은 빛을 제공해주지는 못합니다.

에블린 워의 이런 이야기를 화면에 옮기는 과정은 무척 직설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앤드루 데이비스의 고전 각색 시리즈와는 상당히 다릅니다. 데이비스는 고전들을 각색하면서도 늘 자신만의 어조나 접근법을 삽입하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미니 시리즈 버전 [다시 찾은 브라이즈헤드]는 우직할 정도로 원작에 충실합니다. 대충 한 에피소드가 소설의 챕터 하나나 둘을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진행 순서와 대사는 거의 바뀌지 않았고 삭제된 이야기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심지어 소설 속에 묘사된 옷이나 책, 웨이터의 행동까지도 그대로 재현되니까요. 나레이션이 엄청나게 많은 건 당연하고요. 미니 시리즈는 각색물보다는 영화적 편곡 작품처럼 보입니다.

이런 우직함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것 같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 시리즈는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이런 카오스 속에서 제대로 모양 잡힌 시리즈를 만들려면 원작에 충실하는 게 가장 좋은 해결책이었을 거예요. 존 모티머가 쓴 오리지널 각본이 제작 도중 두 배 이상 불어난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겁니다.

다행히도 이 시리즈는 운이 좋았습니다. 에블린 워의 대사들은 양이 적당하고 그대로 옮겨져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습니다. 짜투리 시간을 모두 잘라내도 11시간이 넘어가는 미니 시리즈의 그릇은 내용을 충분히 담을 수 있을 정도로 크고요. 결정적으로 캐스팅이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제레미 아이언즈와 앤소니 앤드루즈는 이상적인 찰스와 세바스찬입니다. 그들은 모두 30대 초반이었으니 시리즈가 시작되는 옥스포드 시절엔 조금 나이들어 보이기도 해요. 하지만 시리즈가 20여년의 긴 시간을 커버한다는 걸 생각해보면 최선의 선택이었을 겁니다. 마치메인 경 역의 로렌스 올리비에, 레이디 마치메인 역의 클레어 블룸, 줄리아 역의 다이애나 퀵 역시 훌륭한 연기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분위기에 완벽하게 맞습니다. 십대 초반부터 성인 여성까지의 시간대를 혼자 연기해야 했던 코딜리아 역의 피비 니콜스도 아주 교묘하게 캐스팅된 배우고요.

배우들이 기나긴 대사들을 끝도 없이 읊어대는 내용이니, 아주 영화적이라고 할 수는 없는 작품이지만, 그래도 마이클 린지-호그와 찰스 스터리지는 상당히 많은 걸 이루어냈습니다. 에블린 워가 의도한 그 우울한 가을의 분위기는 작품에 충실하게 구현되었습니다. 완벽하게 통제된 예절이 성적 욕망을 조용히 억누르고 있는 영국 시리즈의 느낌 역시 강렬합니다. 물론 당시 시청자들을 유혹했던 건 영국 시대극의 호사스러움과 과거에 대한 향수, 동성애적 분위기, 카톨리시즘이 절묘하게 뒤섞여 만들어내는 감각적 즐거움이었겠지만요. 그렇다고 이런 걸 스노비즘이라고 몰아붙일 필요도 없으니, 에블린 워의 의도가 여기서 그렇게까지 크게 벗어나 있다고 믿을 필요도 없기 때문입니다. (02/09/02)

DJUNA

기타등등

1. 원래는 제레미 아이언즈가 세바스찬 플라이트로, 안소니 앤드루스가 찰스 라이더로 캐스팅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두 배우가 서로의 역할에 더 관심을 보이는 바람에 역이 바뀌었다고 해요. 금발인 세바스찬을 뺀 나머지 플라이트 남매들이 모두 검은 머리인 것도 이전 캐스팅에 맞춘 결과가 아닐까요? 하긴 제레미 아이언즈가 테디 베어를 안고 다니며 예쁜 척하는 건 좀 안 어울렸을 거예요.

2. 이 시리즈의 두번째 감독인 찰스 스터리지는 나중에 코딜리아 역의 피비 니콜스와 결혼했답니다. 스터리지의 [걸리버 여행기] 미니 시리즈에서 톰 걸리버로 나오는 토머스 스터리지는 둘의 아들입니다.

3. 브라이즈헤드 저택으로 나오는 하워드 성은 당시 제작사 그라나다 사의 사장이었던 하워드 경의 소유라고 합니다. 사용료를 성 보수비로 썼다고 하는군요. 여기에 공식 사이트가 있습니다.

4. 세바스찬의 테디 베어 알로이시어스 역으로는 델리카트슨이라는 1907년산 테디 베어가 출연하고 있습니다. 지금 델리카트슨은 Teddy Bears of Witney에서 전시되고 있는데요, 여기에 가면 복제 인형을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