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맥완흔 Yan Yan Mak

주연
하초의....플라비아
Josie Ho....Flavia
전원....입
Yuan Tian....Yip
갈민휘....밍
Eric Kot....Ming
진일령....어린 플라비아
Isabel Chan....Young Flavia
장조만....어린 진
Joman Chiang....Young Jin

입과 플라비아

플라비아는 30대 초반의 여학교 교사입니다. 괜찮은 남편과 예쁜 갓난아기 딸을 두고 안락한 중산계급의 삶을 누리던 우리의 주인공은 어느 날 수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쳐먹던 입이라는 젊은 여자를 도와주게 됩니다.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성적 지향성에 솔직한 입에 서서히 끌리던 플라비아는 그러는 동안 10여년 전 자신이 단짝 친구 진과 나누었던 사랑에 대해 되씹어보게 됩니다.

[나비]의 주인공 플라비아는 등장할 때부터 강한 기시감을 남기는 인물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잘 모른 채 이성애 가족 시스템 속에 적응하며 그럭저럭 살다가 갑자기 나타난 사랑에 휘청거리는 여자 주인공 말이에요. 그 이름이 비비안 벨이건, 카밀 베이커이건, 앨리스 조던이건, 라다이건, 루스이건, 이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는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나중에 동창회라도 한 번 잡아주고 싶군요.

이 친숙한 이야기를 나름대로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건 10여 년의 세월을 두고 플라비아가 겪는 두 개의 사랑을 번갈아 보여주는 구조입니다. 어딘지 모르게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와 닮은 형식인데, 과연 감독 맥완흔이나 원작자인 진설이 이 영화를 보았는지 모르겠군요. 원작의 경우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도 모르겠고요.

그 결과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만큼 잘 짜여졌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개별 이야기가 그렇게까지 새로운 것도 아니고 두 이야기들이 그렇게까지 유기적으로 잘 연결된 편도 아니거든요. 영화가 지나치게 많은 걸 담으려고 한다는 느낌도 들어요. 특히 여자 친구를 잃고 자살을 기도하려는 플라비아의 제자 이야기 같은 건 기능성만 강해서 뻣뻣하게 느껴지죠. 그래도 따로따로 떼어내어 이야기했다면 심심했을 이야기들이 회상의 형식을 통해 하나로 합쳐지자 영화는 자기만의 힘을 얻게 됩니다. 역시 아주 새롭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 시도해볼만한 어떤 것이 나온 겁니다.

[나비]의 이야기는 단순한 편이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문제점과 해결책을 단순화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건 아닙니다. 비교적 낙관적으로 끝나는 영화지만, 어쩔 수 없는 불륜을 다룬 영화이고 쉽게 버릴 수 있는 사악한 캐릭터들은 등장하지도 않으니 영화가 끝난 뒤엔 여전히 상처입은 사람들이 생기기 마련이죠. 특히 플라비아의 남편 밍은요. 예쁜 마누라와 딸로 구성된 완벽한 가족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순식간에 박살나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요.

이 영화를 끌어가는 배우는 하초의인데, 전체적으로 만족스럽습니다.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둘만큼 아름답고 이런 종류의 로맨스 영화에 어울리는 풍성한 감정도 잘 잡아내는 편이죠. 남편 역의 갈민휘 역시 연기할 거리가 많은 역을 얻었고 그걸 제대로 활용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입역의 전원은 연기를 한다기 보다는 그냥 자신의 풋풋한 개인적 매력을 과시하는 정도이고 어린 시절의 연인들을 연기한 진일령과 장조만은 몸이 충분히 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전히 지적할만한 자잘한 단점들이 남아있지만 [나비]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로맨스입니다. 다소 일방적이긴 하지만 러브 스토리의 힘은 강하고 심리묘사도 설득력이 있는 편이죠. 이 영화가 더 만족스럽게 보이는 이유는 아마 최근 들어 제대로 만들어진 동성애 소재의 로맨스 영화들이 뜸해졌기 때문이겠지만요. (05/03/17)

DJUNA

기타등등

1. 영화의 크레딧 디자인은 갈민휘의 작품이라는군요.

2. 중국어권 사람들에겐 천안문 사태가 미국의 베트남전이나 케네디 암살처럼 한 시대를 정의하고 캐릭터에 상흔을 남기는 극적 도구가 되어가는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