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해준

주연
정재영....남자 김씨
정려원....여자 김씨

남자 김씨

[김씨표류기]는 아이디어만으로도 절반 이상 먹고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그 아이디어라는 건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하려던 남자 김씨가 그만 밤섬에 갇혀버리고 그 안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투쟁을 벌인다는 것이죠. J.G. 발라드(명복을!)의 [콘크리트 섬]이 생각나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발라드의 이야기보다는 느긋한 코미디에 가깝고 서울 특유의 지리적 개성도 잘 반영되어 있지요. 대도시 코 앞에서 벌어지는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 신선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밤섬에서 벌이는 생존 투쟁만으로는 이야기를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영화는 두 번째 캐릭터를 끌어들입니다. 3년 째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고 있는 여자 김씨죠. 달 사진을 찍는 것이 취미인 이 처자는 우연히 남자 김씨를 발견하고 그와 서툴게 소통을 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부터 밤섬과 한강변의 아파트로 구성된 현실 세계의 물리적 공간에서 벌어지는 원거리 로맨스는 인터넷 공간의 소통을 모방하게 되지요.

이런 종류의 하이 컨셉 코미디들이 대부분 그렇듯, [김씨표류기]도 어처구니 없는 설정을 설명하는 초반부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믿을만하지는 않지만 재미있어요. 시치미를 뚝 떼고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당연하다고 우기는 태도 자체가 더 재미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하지만 비교적 평범한 은둔형 외톨이 이야기인 여자 김씨의 이야기는 컨셉 면에서 남자 김씨의 이야기에 밀리며 이 캐릭터가 소개되는 순간부터 영화가 조금씩 늘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로맨스도 괜찮긴 하지만 거기서부터는 초반 설정의 아이디어가 어느 정도 소진된 흔적이 보여요.

캐스팅은 그럴싸합니다. 정재영은 장진 코미디로 단련된 몸이라,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 속에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진지한 척 코미디 연기를 하는 데 도가 텄죠. 너무 살을 빼서 정말로 아프고 우울해보이는 정려원은 그런 정재영과 일종의 연기적 대구를 이루고요. 단지 정려원이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는 인물이라는 설정은 못 믿겠더군요. 이마에 화상 분장을 넣는다고 연예인 외모가 사라지는 건 아니죠.

로맨스도 나쁘지 않고 소통의 테마도 좋지만, 전 여전히 '밤섬에 갇힌 남자의 조난기'라는 설정에 집중적으로 매달렸어야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주제에 대한 예의죠. 지금은 조금 타협한 듯한 느낌이에요. 이런 괴팍한 '일본식' 멜로드라마의 나른한 심심함도 즐길만은 합니다만. (09/04/28)

DJUNA

기타등등

은둔형 외톨이 주제는 한국 영화에 들어올 때마다 도쿄에서 날아온 블링블링한 최신 유행 대접을 받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