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신정원

주연
엄태웅....김순경
정유미....변수련
장항선....천일만
윤제문....백만배
박혁권....신형사

김순경과 변조교

그러니까 여러분은 봉준호의 [괴물]이 아트하우스 영화의 '예술성'과 '주제의식'을 고집하는 통에 괴물영화의 단순통쾌한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리고 훨씬 야심없어 보이는 신정원의 [차우]가 그 단순통쾌한 대안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거고요?

착각도 이런 착각이 있나. [차우]는 결코 그렇게 단순한 영화가 아닙니다. 예술 영화는 절대로 아니고 뭔가 엄청난 의미를 숨긴 작품도 아니며 잘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지만 정상적인 장르 영화는 절대로 아니에요. 그 근처에도 안 갑니다.

시놉시스만 보면 이 영화는 평범해보입니다. 스필버그의 [죠스]에서 기본 설정과 스토리를 그대로 가져왔죠. 평범한 작은 마을에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죠스]에서는 상어였지만 이 영화에서는 멧돼지죠. 마을의 힘있는 사람들은 한철 장사를 망치기 싫어서 쉬쉬하려 하지만 희생자는 늘어만 가죠. 그러다 사냥꾼들이 멧돼지 한 마리를 잡고 사람들은 잔치를 벌이지만 진짜 살인 멧돼지는 여전히 살아있었던 겁니다. 결국 괴물을 잡기 위한 5인의 특공대가 조직되는데, 그 구성원은 경찰관, 사냥꾼, 생물학자입니다. 단지, 이 영화에서는 경찰관과 사냥꾼이 각각 두 명씩입니다. 심지어 어설프게 USS 인디애너폴리스 연설을 흉내낸 장면도 나온답니다.

흉내낸 건 [죠스]만이 아닙니다. 스필버그의 다른 영화들에서 빌려온 장치들도 여기저기 보여요. 어떤 것은 [쥬라기 공원] 시리즈에서 가져왔고 어떤 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에서 가져왔습니다. 심지어 [프레데터]나 [에일리언] 시리즈에서 빌려온 장면들도 보여요. [차우]는 괴물 영화들의 부품들을 모아 떨이로 파는 싸구려 고물상 같습니다.

기술적으로 그렇게 좋은 액션물은 아닙니다. 적어도 '웰메이드'는 절대로 아니죠. 편집은 지나치게 성급하고 순수하게 액션을 노린 장면들은 기껏해야 평범한 편입니다. 장면 연결의 논리와 등장인물들의 동기가 분명히 그려지지 않아서 설득력이 떨어지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게다가 무시무시한 괴물이어야 할 멧돼지의 위력이 그렇게 잘 그려진 편이 아니에요. 특수효과는 그럭저럭 통하는 정도지만 "와, 구경 한 번 잘했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는 절대로 아니고. 전 나름 전문가인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무력하고 무능한 것도 걸렸습니다. 전문가답게 행동하는 것은 영화 주인공들의 의무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여기까지만 들으면 그냥 평범하게 만들어진 B급 괴물영화 같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사실 이 영화에서 '괴물 액션'은 그렇게 큰 부분을 차지하지도 않아요. 기껏해야 4분의 1 정도? 이 영화에서 멧돼지가 나오는 장면들을 지워내면 오로지 코미디만 남습니다. 그리고 그 코미디가 어떤 종류의 코미디냐... 여러분은 슬슬 불길한 생각이 드실 겁니다. 맞아요. 신정원은 [시실리 2km]의 감독이었던 겁니다.

코미디 작가/감독으로서 신정원은 진화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더 좋은 코미디 작가로 진화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냥 더 신정원다운 신정원으로 진화한 것이죠. 그게 도대체 뭐냐고요? 저도 영화를 보기 전에는 확신이 안 섰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본 뒤엔 알겠더군요. 그의 코미디는 [개그 콘서트]에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단순한 장치들이 아니에요. 뭔가 어색하고 생뚱맞고 신경질이고 폭력적이고 괴상합니다. 암만 봐도 앞뒤가 맞지가 않고 경우가 없어요.

파헤쳐진 무덤이 발견되는 도입부 장면부터 그렇습니다. 경찰들은 무덤이 있는 경사로를 내려가는 중입니다. 경찰서장이 넘어져 데굴데굴 무덤까지 굴러갑니다. 촌스럽지만 한 번 써먹을만한 슬랩스틱이죠.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설프게 우왕좌왕하는 동안 경사로를 기어올라가던 모든 경찰관들이 미끄러지고 넘어지고 굴러갑니다... 이게 60억을 들였다는 대규모 액션 영화의 시작인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나쁜 농담을 지나치게 늘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계속 더 나갑니다. 어떤 농담들은 이것보다 훨씬 나쁩니다. 어떤 농담들은 이것보다 훨씬 재미있고요. 어떤 농담은 너무 갑작스럽고 뜬금없어서 이게 농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어떤 농담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어두운 분위기가 너무 강합니다. 어떤 것은 그냥 어이없을 정도로 초현실적이라 여기서부터 '감독이 드디어 넋이 나가 예술을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이 농담들 뒤에는 다소 우울한 현실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전작 [시실리 2km]에서도 그랬지만 [차우]에는 대한민국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졸렬함과 저열함, 비겁함, 어리석음에 대해 차갑게 냉소적입니다. [시실리 2km]에서는 차라리 그런 놈들보다 조폭이 낫다고 주장해 점수를 까먹었습니다. (농담합니까? 조폭들이야말로 그런 평범한 악의 결정인 겁니다.) 하지만 [차우]에서는 그런 장애가 없습니다. 전 괴물 멧돼지가 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도 영화가 사람들을 너무 조금 죽인 것이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라고 생각하지요. 네, 이 영화의 멧돼지는 너무 착합니다. 머리 위 어딘가에 후광이라도 걸려 있는 줄 알았어요.

다행스럽게도 영화에 나오는 배우들은 이 우울한 세계를 보다 흥겹게 극복한 것 같습니다. 고생은 죽어라했겠지만 그래도 그들은 영화 내내 에너지가 넘치고 즐거워보여요. 몇몇 농담들은 말도 안 되는 설정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배우들의 재능만으로 성공했습니다. 정유미와 윤제문이 간식을 나눠먹는 장면 같은 건 설정만 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가 싶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 빵과 우유를 나눠먹기 시작하면 키들키들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차우]의 흥행 결과에 대해서는 전 전혀 예측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선호도가 갈릴 거라는 건 분명해요. 결코 정상적인 영화도 아니고 정상적으로 잘 만들어진 영화도 아니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하지만 분명 재미있게 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데... 전 이들의 입소문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람들은 재미있게는 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면 욕먹을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09/07/08)

DJUNA

기타등등

살아남은 마을 사람들은 [차우 2]에서 다 잡아먹히길 기도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