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피터 로드 & 닉 파크
Peter Lord & Nick Park

주연
줄리아 사왈라....진저
Julia Sawalha....Ginger
멜 깁슨....로키 로즈
Mel Gibson....Rocky Rhodes
미란다 리처드슨....트위디 부인
Miranda Richardson....Mrs. Tweedy
토니 헤이가스....트위디 씨
Tony Haygarth....Mr. Tweedy
제인 호록스....뱁스
Jane Horrocks....Babs
린 퍼거슨....맥
Lynn Ferguson....Mac
벤자민 위트로....파울러
Benjamin Whitrow....Fowler
이멜라 스턴튼....번티
Imelda Staunton....Bunty
티모시 스팔....닉
Timothy Spall....Nick
필 대니얼즈....패처
Phil Daniels....Fetcher

무대는 1950년대 쯤으로 보이는 요크셔의 작은 농장. 농장에 사는 암탉들은 그룹의 브레인인 진저의 지휘 아래 필사적으로 농장을 탈출하려 시도하는 중입니다. 그들은 온갖 걸 다 해봤습니다. 땅굴도 파봤고, 울타리 아래로 기어나오려고도 해봤고, 농장 주인인 트위디 부인으로 위장해 개들을 따돌리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늘 실패. 언제나 진저는 독방에 갇히고 '아무도 트위디 농장을 빠져나오지 못해!'라는 트위디 씨의 으름장이 농장의 회색 하늘 아래 메아리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 출신의 서커스 닭인 로키가 구세주처럼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로키는 암탉들에게 하늘을 나는 방법을 가르쳐주겠다고 허풍을 떨고, 트위디 농장은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찹니다. 이제는 더 이상 뒤로 갈 수도 없죠. 달걀 수입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트위디 부인이 무시무시한 자동 치킨 파이 기계를 사 들였으니까요. 며칠만 늦으면 트위디 농장의 암탉들은 모두 치킨 파이가 될 판입니다.

[치킨 런]의 기본 개념은 장르 패러디입니다. 한마디로 닭들을 주인공으로 한 포로 수용소 영화지요. 영화는 [대탈주]에서 [제17 포로 수용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포로 수용소 영화 인용들로 가득합니다.

영화광들이라면 이런 것들을 하나씩 골라내면서 유쾌한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냥 넘어가면 심심하니 저도 한 번 해보죠. 자, 닭들이 탈출 계획을 위해 모이는 제17번 오두막은 분명 [제17 포로 수용소]의 언급입니다. 닭농장의 전체 닭이 탈출하려는 계획은 [대탈주]의 계획과 같죠. 매번 탈출에 실패해 독방에 던져지는 진저의 모습에서 우린 쉽게 [대탈주]의 스티브 맥퀸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닭들의 괴상한 행동을 보면서도 어쩔 줄 몰라하는 트위디 씨는 [호건의 영웅들]의 한스 슐츠 상사와 똑같지 않습니까? 결정적으로 영화의 마지막 결말은 [The Birdmen(이 영화의 국내 방영제목이 무엇이었는지 기억 나시는 분 계십니까? [17인의 독수리]나 뭐 그 비슷한 제목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에요)]을 장엄하게 확대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치킨 런]을 보고 있으면 이 영화는 유명한 옛 영화들을 뒤틀어 인용하며 자족하는 코미디 이상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순한 코미디로 보기엔 상당히 어둡기도 하죠. 이 영화에서는 진짜로 목이 잘려 죽는 캐릭터도 나오고, 이야기는 디킨즈 풍의 음산한 배경 속에서 전개됩니다. [치킨 런]은 단순한 포로 수용소 패러디 영화가 아니라 진지한 포로 수용소 탈출 영화입니다.

패러디를 이용한 농담도 많지만 이 영화의 핵심은 드라마입니다. 그것도 아주 보편적인 드라마지요. 이 영화의 닭들이 벌이는 탈출담은 출애굽기 이후 끊임없이 되풀이 되어 왔던 이야기입니다. 물론 출애굽기 이전에도 결코 없지는 않았겠지요. 구속된 이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을테니까요. 오래된 만큼이나 강렬하게 어필하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그 결과 [치킨 런]은 자유를 위한 투쟁과 창조적인 정신에 대한 장엄한 예찬이 됩니다.

어떻게 보면 다소 전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치킨 런]의 스토리도 그런 보편성을 강화시키는 도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인간 배우들에 의해 끝도 없이 반복되던 그런 갈등들을 고스란히 재현했기 때문에, 관객들이 진흙으로 만들어진 이 괴상한 인형들에게 그처럼 강한 인간적인 느낌을 받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런 설정은 패러디의 도구로도 쓰이고 이런 상황의 익숙함을 역으로 이용하는 코미디의 도구로 쓰이기도 합니다. 이런 농담들의 상당수가 지역적이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영국 사회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에게만 차별적으로 더 잘 먹힌다는 한계가 있지만요. [치킨 런]을 100 퍼센트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요크셔 사투리의 그 은밀한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고, 도둑쥐들의 전형적인 코크니다운 행동에 배꼽잡을 수 있으며,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아처 가족] 주제가에 향수 섞인 묘한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 주둔 하며 으스대던 미군들과 당시 영국 아줌마들 사이의 우스꽝스러운 관계를 회상할 줄도 알아야 할 겁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관객들인 아이들은 결코 이해 못할 운명인 것이죠.

그러나 이런 지엽적인 디테일을 잊더라도, [치킨 런]의 영국식 유머가 주는 힘은 강합니다. 가끔은 잔인할 정도로 건조하고 가끔은 정신나갈 정도로 괴팍한 그런 유머 말입니다. 이버트가 지적했듯이, 과거의 일링 영화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그런 적당히 괴상하고 사랑스러운 영국 코미디의 느낌이 [치킨 런]에도 묻어 있습니다. 다들 제가 아주 좋아하는 것들이고 또 그래서 제가 이 영화에 약간 향수섞인 애정을 고집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피터 로드와 닉 파크는 이 영화를 통해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을까요?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월레스와 그로밋]은 분명 세계 관객들에게 클레이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가능성을 선보인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매번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는 법은 없습니다. 그들도 슬슬 기존의 안정된 방식으로 보다 안정된 영화를 만들 기회를 잡아야 하죠. 바로 [치킨 런]에서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치킨 런]은 [월레스와 그로밋]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도 많이 가지고 있는 작품입니다. 스케일은 커졌고, 이야기도 지적인 장르 게임의 수준을 넘어섰으며, 전작들이 가지지 못했던 감정의 깊이도 있습니다. 새로운 비주얼을 창출해내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기술적으로는 여전히 훌륭하고요.

스타 배우들의 성우 기용도 적절한 효과를 냅니다. 멜 깁슨의 능글맞은 연기도 괜찮았지만, 정말로 귀에 뚜렷하게 들려오는 명연은 주로 영국 배우들의 몫입니다. [AbFab]의 사피인 줄리아 사왈라가 연기하는 열정적이고 이상적인 암탉 진저, 역시 [AbFab]의 버블이었던 제인 호록스의 맹한 암탉 뱁스, 그리고 미란다 리처드슨이 매섭게 연기한 트위디 부인이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하겠지요. 그밖에도 잘 훈련된 좋은 성우들이 그득한 영화입니다. 스타들을 잔뜩 쓰기는 했지만 어떤 개성도 찾을 수 없었던 [타이탄 AE]와 비교해보면 그 질의 차이를 알 수 있죠.

[치킨 런]은 스케일로 보나, 완성도로 보나, 아드만사의 기량을 최대한 발휘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이 눈에 차지 않는다면 여러분에게 [월레스와 그로밋]의 첫인상이 정말로 강했다는 말이겠지요. (00/12/18)

DJUNA

기타등등

엔드 크레딧 끝에 쿠키가 있습니다. 꽤 긴 데 번역이 안 되어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