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프라차야 핀카엡 Prachya Pinkaew

주연
지자 야닌....젠
JeeJa Yanin....Zen
아베 히로시....마사시
Hiroshi Abe....Masashi
암마라 시리퐁....진
Ammara Siripong....Zin
퐁파트 와치라번종....넘버 8
Pongpat Wachirabunjong....No. 8

젠

태국 갱단과 일본 야쿠자가 한 판 붙습니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태국 갱단 보스의 여자친구와 야쿠자 중간 보스가 눈이 맞았으니 이건 태국 액션 영화 버전 [로미오와 줄리엣]인 거죠. 남자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여자는 암흑가를 떠나 딸을 낳습니다. 하지만 딸은 자폐증 환자이고 스토킹의 정도가 심각해진 보스는 툭하면 시비를 걸면서 여자를 괴롭히죠. 게다가 막판엔 암에도 걸린 것 같더군요. 인생 참 더럽게 꼬였어요.

여자는 딸에게 젠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극중에서 일본 이름이냐고 놀리는 걸 보면 禪이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Zen이라고 쓰면 대부분 외국인들은 그렇게 이해하겠죠. 이 아이는 놀라운 아이디어의 산물입니다. 아직 우직하고 단순한 태국 액션 영화 시장에서 이런 캐릭터가 나왔다는 게 조금 놀랍죠. 한 마디로 요약정리하면 젠은 무술 천재인 자폐증 환자입니다.

프라차야 핀카엡의 [초콜렛]에는 은근히 SF적인 감수성이 흐릅니다. 그리 정치적으로 공정한 비유는 아닐지 몰라도 젠의 이야기는 고전적인 인간형 로봇 이야기의 공식에 상당히 가까워요. 전 가장 먼저 [다릴]이 생각나더군요. 다른 이야기도 많겠죠. 하여간 이 아이디어를 따라가다보면 정말로 신기한 구경거리를 접하게 됩니다. 얘는 어떤 무술 동작이건 한 번만 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아이죠. 상대방이 어떤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나와도 순식간에 따라한단 말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은근히 영화광스럽습니다. 젠은 어떻게 보면 무술영화광의 백일몽과 같은 존재예요. 텔레비전에서 본 무술영화를 온 몸으로 재현하는 아이죠.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젠은 이소룡, 성룡 그리고 물론 토니 자와 같은 액션 스타들의 테크닉을 마치 돼지저금통에 동전 모으듯 흡수해 갑니다. 그리고 그걸 진짜 세계에서 써먹는 것이죠.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서처럼 영화 속의 환상이 젠이라는 마법을 거쳐 현실이 되는 거예요.

젠은 그 자체로 재미있는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무술은 훌륭했지만 캐릭터는 따분했던 [옹박]의 주인공보다 훨씬 매력적이에요. 이 아이는 신비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익살스러운 구석이 있습니다. 아픈 데를 한 대 더 때리는 악동 같달까요. 이미 자기에게 한참 얻어터진 최종 보스를 한 대 더 때리려고 길을 막는 부하들을 낙엽 쓸 듯 두들겨 패며 지나가는 젠의 조그만 모습에는 정말 괴상한 귀여움이 있습니다.

영화스타로서 평점을 매긴다면 전 토니 자보다 지자 야닌 쪽에 더 점수를 주겠습니다. 일단 연기 테크닉이 더 나아요. 물론 더스틴 호프먼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런 영화에서 [레인 맨] 연기가 나오면 더 어색하겠죠. 작고 가녀린 지자 야닌은 토니 자처럼 위협적인 느낌은 덜하지만 캐릭터와 자신의 매력을 액션에 훨씬 잘 담아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토니 자의 뻣뻣한 자기 과시는 없어요.

영화는 [옹박]보다는 세련된 편이지만 여전히 투박합니다. 결국 중요한 건 자자 야닌의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니 잘 짜여진 각본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이디어가 신선한 편이니 그걸 담기 위해 조금 더 공을 들였어도 괜찮았을 겁니다. 스토리 배분에 조금만 공을 들여도 개선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요. '진검승부'임을 보여주기 위해 잔재주없이 무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좋지만 그래도 액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감독이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거죠. (09/07/20)

DJUNA

기타등등

1. 격투기 선수 임수정씨가 나오죠. 후반에 나오는 여자 악당들 중 한 명인 것 같은데 얼굴을 잘 구별 못 하겠더군요.

2. 지자 야닌도 잘 하지만 그 사람에게 나가떨어지는 스턴트 더블들은 정말 존경스럽더군요. 제대로 된 안전장치는 갖추고 일을 하는지 걱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