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사라 문 Sarah Moon

주연
크리스틴 베르나르
Christine Bernard
필립 샤를
Philippe Charles
베르나르 드팔
Bernard Depalle
아이메 되데
Aimé Deudé
레아 라신
Léa Racine

잔

[서커스]는 사라 문이 감독한 15분짜리 단편영화입니다. 내용은 한스 크리스찬 아네르센(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에서 테마를 따왔습니다. 서커스단 창시자인 나스타샤가 중국인 애인과 달아나자 서커스단은 망하고 곡예사의 둘째 딸은 잔은 성냥을 팔러 도시로 나갔다가... 여기서부터는 [성냥팔이 소녀]와 스토리 전개가 같습니다. 단지 소녀가 보는 환상의 재료가 서커스와 곡예사들이라는 게 다를 뿐이죠.

이 영화를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패키지의 일부라고 보는 게 옳을 거예요. [서커스]라는 제목으로 만든 포토스토리의 부록이라고 할까요. 영화관보다는 미술관이 더 잘 어울리는 작품이고 실제로도 미술관에서 비디오로 상영됩니다.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트는 건 상상하기 어렵군요.

영화 자체도 일반적인 영화의 기준과 규칙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분명 스토리가 있고 그에 얽힌 인물들이 나오는 드라마지만 이 영화에서 배우와 연기의 존재감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심지어 연기라고 하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미지의 재료일 뿐입니다. 가끔 배우들이 스스로 움직이기도 하고 노래도 한 번인가 부르지만 하지만 사라 문이 이미 찍어놓은 스틸 사진에 약간의 화면 조작을 한 장면들이 더 많아요. 저글링을 하는 곡예사를 보여주고 싶으면 미리 찍은 스틸 사진을 또다시 카메라로 찍는데 그러는 동안 약간 흔들어서 공이 움직이는 효과를 내는 식이죠. [성냥팔이 소녀]에 기반을 둔 스토리 역시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요. 이 포토 스토리와 영화를 구성하는 사진들 중 상당수는 그냥 내용 없이 서커스를 찍은 사진들입니다. 거기에 대충 핑계를 만들어 스토리 안에 추가한 것이죠.

감정이입이 제거된 나른한 나레이션에 따라 흘러가는 그 이미지들은 매혹적입니다. 필름 인화와 디지털 처리 과정 중 발생한 노이즈가 잔뜩 낀 아주 가끔만 컬러인 흑백 사진들은 마치 사라 문 자신의 꿈을 카메라를 통해 노출시키는 것 같지요. 서구인들이 서커스에 대해 품고 있는 쇠락한 과거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어떻게 보면 가장 전통적인 방식으로 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09/10/07)

DJUNA

기타등등

이 영화의 제목이 무엇인지는 확신할 수 없군요. IMDb에서는 [Circuss]라고 나와있고 서커스 천막에도 그렇게 써 있습니다. 하지만 사라 만이 낸 사진집 제목은 [Circus]예요. 전 그냥 IMDb를 따랐습니다. 주인공 소녀도 포토스토리에서는 제인이지만 영화에서는 잔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