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곽재용

주연
손예진....지혜/주희
조승우....준하
조인성....상민
이기우....태수
서영희....나희
이상인....수경
양현태....석우
임예진....매점언니

주희와 준하

[클래식]은 곽재용이 지금까지 만든 영화들 중 가장 뻔뻔스러운 사기입니다. 그 시도가 너무 순수해서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질 정도죠. 맨 앞에 쓴 문장을 부정하지 않고서도, 전 [클래식]이 가장 정직한 곽재용 영화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2대가 얽힌 [시라노 드 베르주락]입니다. 대학생인 지혜는 연극반의 상민을 짝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를 먼저 찜한 친구 수경 때문에 자기 감정을 고백하지 못하고 상민에게 보내는 수경의 러브레터나 대필해주고 있죠. 그러는 동안 지혜는 해외 여행을 떠난 엄마 주희가 몇 십년 동안 보관해온 러브레터를 읽으면서 엄마의 옛 연애담에 빠져듭니다. 주희는 68년 여름방학 때 시골에 놀러갔다가 준하를 만나는데, 하필이면 그는 집안에서 사윗감으로 약속한 태수의 단짝 친구였죠. 수원의 집으로 돌아간 준하는 태수 대신 주희에게 러브레터를 대필하면서 서서히 주희에게 빠져들고요. 물론 태수에 대한 의무감 때문에 둘의 관계는 그렇게까지 편하게 흐르지는 못합니다.

[클래식]은 굉장히 인공적인 영화입니다. 플롯 마디마디에 숨어 있는 작위적인 우연의 일치, [소나기]나 [어페어 투 리멤버]를 뻔뻔스럽게 표절한 멜로드라마적 장치, 관객들에게 '운명의 반전'을 안겨주기 위해 노골적인 기만을 서슴지 않는 서술방식들은 너무나 인공적이라, 영화는 신파 공장에서 막 조립되어 나온 태엽 장치 기계같아 보입니다. 물론 이 장치들은 곽재용의 모든 영화에 질펀하게 내리는 비에 흠뻑 젖어있습니다.

재미있는 건, 영화가 이 모든 가짜들에 굉장히 진지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아마 이 영화의 의도와도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70년대 고등학생들에게나 먹혔을 법한 노골적인 키치 정서에 '클래식'이라는 딱지를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게 영화의 목적이니 말이에요. 이건 일종의 커밍 아웃이기도 합니다. 이 냉소적인 시대에 '촌티'라는 단어 속에 묻혀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당당하게 꺼내 펼쳐보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아무리 복고풍이 유행이라고 해도요.

그러나 아무리 [클래식]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진지해지려고 해도 키치는 여전히 키치이고, 신파는 여전히 신파입니다. 감정을 진실된 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엔 기계적인 설정의 힘이 너무 강해요. 영화의 예쁘장한 장식적 느낌들은 오히려 무대가 되는 시대 분위기를 눌러버릴 지경이고요. 손예진이 연기한 지혜와 주희가 거의 구별이 가지 않는 비슷비슷한 인물들인 것도 예쁘장해져야 할 의무감에 갇혀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인물이 로맨스의 주변에 밀려 있는 준하의 친구 태수인 것도 그 때문일 거고요.

곽재용의 전작 [엽기적인 그녀]처럼, [클래식]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비평적 성과가 더 좋은 작품입니다.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없이 이 영화를 보는 대부분의 해외관객들에게 [클래식]은 고전적인 할리우드 멜로드라마처럼 직설적이고 순수한 오락물처럼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그게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도 하고요. 그러나 전 아무리 노력해도 이 영화를 그렇게 맑고 순수하게만 보지는 못하겠더군요. 그건 이 영화의 한계일 뿐만 아니라 저의 한계이기도 하죠. (04/05/10)

DJUNA

기타등등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까 마우스로 긁어보세요!) 지혜는 엄마 주희와 똑같이 생겼는데 왜 상민은 아빠랑 똑같이 생기지 않은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