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셰라는 것

이 섹션에서는 '클리셰 Cliché'라는 외래어를 제목으로 달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잘 쓰이지 않는 단어라, 설명없이 달아놨더니 꽤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어요. 지금까지 해설없이 버티려고 했지만, 계속 이러다간 일이 더 커질 것 같습니다. 간단하게 구별할 건 구별하고 정의할 건 정의해야겠어요.

우선 클리셰가 학문적 용어가 아니라는 점부터 짚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도 어떤 학술적인 용도로 쓰이고 있지 않고요. 이 단어는 그냥 일상어의 일부입니다. 단지 적절한 번역어를 찾을 수 없어서 그냥 불어 단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일 뿐이에요(어떤 분은 '진부함'을 쓰는 게 어떠냐고 제의하셨지만 아무래도 의미가 축소됩니다. '진부함 사전'이란 말도 어색하고요.) 이 단어가 지독하게 잰 척하는 것처럼 보인다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

어원, 네, 어원부터 짚고 넘어가보죠. 클리셰는 19세기의 인쇄용어에서 출발했습니다. 클리셰는 당시 인쇄공들이 활자판에 쉽게 끼워넣을 수 있도록 미리 만들어놓은 조판이었습니다. 이게 19세기 말부터 보편적인 의미, 그러니까 별로 노력하지 않고 집어넣은 진부한 문구나 생각, 개념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오늘날까지 이른 것이지요.

다시 정리합니다. 현대어에서 클리셰란 무엇일까요? 그건 예전에는 독창적이었고 나름대로 진지한 의미를 지녔으나 지금은 생각없이 반복되고 있는 생각이나 문구, 영화적 트릭, 그 밖의 기타 등등입니다.

반복된다는 것만으로는 클리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원래 우리는 그렇게 독창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전도서의 저자가 말했듯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으니까요. 아직도 수많은 영화와 소설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되풀이된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이혼하지만 그걸 보고 클리셰라고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수없이 보고 들은 내용을 되풀이할 뿐이지만 [밀회]는 얼마나 강렬한 영화인가요.

클리셰의 특징은 '자기 생각없이' 반복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클리셰들이 장르 안에서 반복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부한 작품 속에서는 진짜 정서와 아이디어 대신 공식과 규칙이 돌아다닙니다.

공식과 규칙 자체 때문에 작품이 따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클리셰의 생각없는 차용이 따분한 이유는 그것이 기성품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클리셰의 대부분은 말라붙은 배설물처럼 살아숨쉬는 진실성에서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해서 클리셰가 쓸모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부함에는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으니까요. 많은 장르 영화 관객들은 클리셰를 오히려 매력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종의 제식입니다.

많은 뛰어난 장르 작가들에게도 클리셰는 매력적입니다. 그들은 이 사랑스럽게 진부한 공식들을 멋대로 뜯어고치거나 아니면 극단적으로 충실하게 따라가며 즐깁니다. 놀이터는 충분합니다!

이 페이지에서는 될 수 있는 한 클리셰라는 단어를 넓게 해석하며 대상들을 다룰 겁니다. 어떤 경우에는 애정 섞인 회상이 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구토 증세를 말들로 간신히 옮긴 것이 되겠지요.

그러나 바닥에 숨겨진 공통된 메시지가 있습니다. 클리셰를 독창성으로 착각하지 말고 클리셰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99/10/30)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