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살생부

과연 어떤 사람들이 죽고 어떤 사람들이 살아남을까요? 평범한 장르 영화에서는 이런 것처럼 예측하기 쉬운 것은 없습니다. 특히 공포 영화 같이 고도로 규격화된 장르일수록 그렇죠.

왜일까요? 이유야 많겠지만 대충 두 가지가 떠오르는군요. 하나는 관객의 정서적 만족도입니다. 만약 영화가 관객들이 전혀 관심없어 하거나 정반대로 아주 좋아하는 인물을 죽인다면 관객들은 그 죽음에 신경도 쓰지 않거나 반대로 아주 불편해하거나 할 겁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충분히 관심을 가지면서도 캐릭터의 소모성에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범위를 찾아야 하는데, 그 범위가 그렇게 넒은 편이 아닙니다. 고로 반복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클리셰가 되는 거죠.

다른 하나는 실용성입니다. 할리우드 살생부에 이름이 적힌 불운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플롯 진행의 최단 거리를 이어주는 캐릭터들입니다. 이런 캐릭터들이 죽으면 스토리에 힘이 붙고 또 전개도 손쉬워집니다. 이 경우도 범위가 그렇게 넓지 않으므로 안이하게 다루면 클리셰가 되죠.

대충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며 이야기를 계속해보기로 합시다.

1. 죽는 사람들

주인공의 친구
많은 액션 영화에서 이 클리셰를 쓰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블랙 레인]...) 주인공의 친구를 죽이면 일단 실용적인 이득이 많습니다. 어느 정도 호감이 가는 인물이면서도 소모성이 예상되므로 극적 전환을 주면서도 관객들을 크게 불안하게 하지 않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친구가 죽으면 복수라는 동기가 붙으므로 주인공의 폭력을 강화시킬 수 있습니다. 폭력이 강화되면 그만큼 관객들의 카타르시스가 증대되므로 결과적으로 친구의 죽음은 후반부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사전 준비인 것입니다.

개심한 악당들
개심한 악당들 역시 위태롭습니다. 이 역시 관객들의 괴상한 도덕률에 따른 것입니다. 관객들은 그 캐릭터들이 살아 남아서 감옥에 가는 것을 그 자리에서 죽는 것보다 더 큰 벌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소모성 '미녀들'
성과 폭력이 결합하면 이 서글픈 기성품 희생자들이 생산됩니다. [스크림]의 주인공 시드니가 초반부에 언급한 적 있는 '현관으로 도망치면 될텐데 2층으로 올라가는 가슴 큰 여자들'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유는? 사디즘과 위선적인 도덕률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일단 관객들의 성적 호기심/만족을 충족시키는 임무를 완수한 이 소모품들은 바로 그런 헤픈 태도 때문에 죽어도 싸거나 또는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관객들의 이런 생각은 종종 그 영화 속의 미치광이 살인마의 동기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입니다.

괜히 남자 앞에 뛰어 들어 대신 총맞아 죽는 바보 같은 여자들
세상에서 저희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입니다. 도대체 뇌를 어디다 두었길래 저런 쓸데없는 희생을 하는 걸까요? 이런 바보들의 존재 이유는 너절한 로맨티시즘입니다.

제임스 본드와 섹스한 여자들
마찬가지로 역겨운 클리셰입니다. 이 여자들은 티슈같은 일회용 섹스 도구로 낭비되고 있죠.

불신자들
"해왕성에서 온 벌레 눈을 한 괴물? 그런 게 와서 레이저 총으로 지구를 정복하려고 든단 말이지? 애야, 어른을 놀리면 못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자기 사형집행장에 서명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SF 공포 영화에서 불신자가 되는 것은 살인보다 끔찍한 죄악입니다. 그 벌로 이 친구들은 대부분 외계인들의 레이저 총을 맞고 바베큐가 되거나 괴물들의 점심식사가 되기 마련이죠.

바보들
넓게 보면 불신자들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대충 보기에도 '넌 죽을 거야'라는 생각이 드는 바보들이 있습니다. [잃어버린 세계]의 카터가 대표적인 예죠. 고의는 아니더라도 실수로 다른 사람들을 위태롭게 만드는 사람들은 악당보다 더 짜증이 나기 마련입니다.

액션의 방해물들
필요없는 사람들은 쉽게 제거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볼케이노]의 레이첼이죠. 레이첼이 죽는 이유는 토미 리 존스와 앤 헤이시의 캐릭터만으로 액션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일종의 재고정리라고 할 수 있죠. 레이첼이 살아남았다면 각본가는 별 도움도 안되는 이 캐릭터에게 대사를 붙여주느라 애를 먹었을 겁니다.

삼각 관계 정리
액션 영화에서 삼각 관계의 구석에 위치한 캐릭터들은 위태롭습니다. 삼각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작가들은 종종 그들을 희생시키기 때문입니다.

부수적 악당들
영화의 안티프로타고니스트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악당으로 나오면 죽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작가는 처벌을 핑계로 그들을 [에일리언 2], [킹콩], [타워링]... 끝도 없습니다.

비 백인 캐릭터들
할리우드 영화에선 이 사람들의 목숨들도 위태롭습니다. 요새는 좀 나아지고 있는 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비슷한 비중의 백인 캐릭터와 유색 인종 캐릭터 중 죽일 대상을 선택하라고 작가에게 시키면 대부분 유색인종을 죽이기 마련이었죠. 특히 삼각관계에서 유색 인종 캐릭터가 끼어들었을 경우 그 결과는 더 치명적이었습니다.

노인네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이니 마음 편히 죽이나 봅니다. [데이라잇], [단테즈 피크] 등등을 보세요.

2. 생존자들

개와 아이들
이미 [그래도 개는 산다]에서 한 번 다룬 적 있죠? 아이들의 경우에도 그 때와 거의 같은 논리를 전개시킬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들 주변에는 일종의 심리적 마지노 선이 그어져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꽤 조심해서 다루는 게 좋습니다.

종종 이 마지노 선을 침투하는 영화들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영화들도 상당수가 의식적으로 이런 클리셰로부터 관객들이 받는 안전한 느낌을 의식적으로 역이용하고 있습니다. 역시 아주 독창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최근의 예는 [미믹]이었던 것 같군요.

미치광이 살인마들
공포 영화의 인기 있는 괴물들은 잘 안 죽기 마련입니다. 속편의 여지를 마련해주어야 하니까요.

주인공
주인공이 사는 건 당연하지 않냐고요? 그렇긴 합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주인공의 생사가 그렇게까지 분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소위 장엄한 죽음이라는 것도 있었지요.

하지만 요새는 주인공의 죽음이 갈수록 부인되고 있습니다. 영화 속의 폭력이 점점 강화되는 현실을 생각하면 뭔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문에 설정도 점점 엉망이 되고요. 절대로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던 불구덩이에서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미믹]의 남자 주인공을 보세요.

어릿광대
주인공 주변을 얼쩡거리면서 웃기는 짓을 해대는 사람들 역시 잘 죽지 않습니다. 어릿광대를 죽이면 뒷맛이 불쾌하니까요. (99/02/23)

DJUNA